내 러시아 할머니의 미제 진공청소기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정영문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1.

 

 

 




할. 머. 니.

 

입안에 이 삼음절이 울리면 제 눈 앞엔 도토리묵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산에서 도토리 주워다 도토리묵 만들어주시고, 좋아하는 곶감 실컷 먹으라며 제 생일날 감나무 두 그루를 심어주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나타난답니다. 외할머니는 제 곁을 떠나셨지만 아직도 외할머니 산소에 가면 저를 위해 심은 감나무 두 그루가 맛있는 홍시를 주렁주렁 달고 있죠. 한 박스를 따다 김치냉장고에 넣어 달달한 홍시 샤베트를 만들어 먹을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할머니라는 어휘의 연관어는 내리사랑과 행복이랍니다.  그래서 제목에서 더 친근함과 행복함, 달달함이 느껴졌는지 몰라요. 게다가 어떻게 보면 적대관계라 할 수 있는 '러시아' 와 '미제' 가 등장하고, 보수,불편함,근면성실, 절약이 생각나는 할머니와 진보,편리함이 생각하는 청소기를 소재로 어떻게 맛깔나게 적었을까 궁금했어요. 더군다나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작가의 자전적소설이라는 문구가 그 궁금증을 더했죠.  

 

 

#2.

 

 

 

 

 

 사진에서 작가의 포스가 느껴지시나요? ^^v

이스라엘 최초의 모샤브(촌락공동체)인 나할랄 출신으로 심리학을 전공하고 라디오와 tv프로그램 제작경험도 있다고 해요. 2006년 <비둘기와 소년>으로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브레너 상을 받았다고도 하네요.

 

 

#3. 한 가족의 가족사이자 이스라엘의 역사

 

  책 앞 부분에는 토니아 할머니에 대한 가족들의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는 만큼 독자가 쉽게 인물들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계도가 제시되어 있어요. 중심인물은 가족 그 누구도 집 안의 샤워실과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손님 접대로 집 밖에서 하는, 일명 청소의 여신으로 불리는 토니야 할머니이지만 그 속에는 어린시절 할머니의 병적 결벽증에 고생했던 작가의 어머니(바트야)와 이모의 이야기, 독립전쟁 때 군에 입대한 이모의 이야기, 독립전쟁 당시 예루살렘에서 나할랄로 피신하여 작가를 낳은 어머니의 이야기, 아하론(즉 작가의 외할아버지)의 형인 예샤야후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이주해 사업가가 되어 큰 돈을 벌어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달러를 보내지만 동생인 아하론은 이중배신자(사회주의자도 시오니스트도 아니라는 점)라며 고스란히 돌려보낸 이야기등이 그려져 있어요,

 

 물론 중심 사건은 형제간(아하론 할아버지와 예사야후 할아버지)의 자존심 싸움 중에 형인 예사야후 할아버지가, 청소의 여왕 토니야 할머니가 꼼짝 못할 미국 일렉트릭 제너럴사가 만든 진공청소기를 보내고 할머니는 '스페이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그것을 돌려보내지 않는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는 결벽증 할머니의 진공청소기 사용기가 아니랍니다. 오히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에 대한 이야기, 즉 동유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대규모 이주한  "알리야" 당시의 사람들과, 최초의 촌락공동체 "나할랄"의 생활을 이야기 하는 듯 했어요.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었답니다.  

 

#4. 토니야 할머니의 진실

 

 

 

 

 

  이 작품은 "사실은 이랬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는 적가의 가족들의 시각으로 쓰여져있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아요. 하지만 청소의 여신으로 불리닌 토니야 할머니야 할머니에 대한 작가의 시각은 사실인 것 같아요. 

 

 나는 그날을 아주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호기심으로 가득차 흥분한 채로 토니아 할머니 뒤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열쇠를 넣어 돌려 문을 열며 "안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지만 그 무엇도 만져서는 안 돼." 하고 말했다.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금지된 방들에 들어갔다. (생략) 희미하고 맑은,서늘한 침묵이 나를 맞았다. 방 안의 공기는 너무도 오랫동안 그곳에 그대로 있었고 그래서 눅눅한 느낌이 들었다. 창문과 차양은 닫혀 있었다. 문손잡이를 보호한 헝겊들은 마치 레이스로 짠 것처럼 세월로 인해 거의 분해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하얗고 분명하고 느슨하고 깨끗했다. 너무도 깨끗해 차양 틈 사이로 들어온 두 줄기 햇빛도 다른 방들에서와는 달리 단 하나의 먼지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p33~34 

"할머니는 진공청소기가 있지만 사용을 안 해요." 내가 설명했다. 

"그것이 할머니 기준에 맞게 일을 잘 못해서요?"

"그보다 더 나쁜 이유로요. 사용하면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죠."

"뭐라고요?!"

"맞아요. 먼지와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그것을 청소해야 하니까요."

"당신이 이겼어요."

"외양간에 있는 훌륭한 샤워실'말인데, 오늘 저녁 거기서 샤워를 해야 할 거에요. 암소들 모두가 당신을 훔쳐볼 거에요. 나도 마찬가지고요."p262~263 

  

 할머니의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하지만 낯설지 않으시죠? 저도 그랬답니다. 토니야 할머니가 6.25전쟁을 고스란히 경험한, 그 와중에 제 어머니를 낳으시고 피난생활도 하셨던 외할머니의 생활습관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었어요. 아마 다른 어느 나라보다 토니야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생소하고 낯선 이스라엘 작가라 제 편협한 독서취향에 맞지 않으면 어떻하지 걱정했었는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따뜻한 봄, 정겨운 우리 할머니의 모습을 되새기고 싶다면 추천해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