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두에게 완자가 1
완자 글.그림 / 재미주의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그리스의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주, 세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면 소크라테스에 와서 "인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됩니다. 20대에 운명적으로 그를 만나게 되는 플라톤은 이후 그의 말을 옮기게 됩니다. <향연>은 그 중 플라톤 사상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시기의 대화편으로 파이드로스,파우사니아스,희곡작가 아리스토파네스,비극작가 아가톤, 디오티마,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가 "에로스" 에 대해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내용입니다.
그 중, 제 시선은 끈 것은 디오티마의 주장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지혜와 무지, 죽음과 불멸 그 사이에 존재한다. 에로스의 탄생설화 아버지 풍요, 어머니 빈곤사이에서 나왔다. 충족과 결핍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 "사람들은 사랑의 이데아가 모르기 때문에 부자의 사랑, 남녀의 사랑, 인류의 사랑처럼 여러가지 사랑의 전체 중 일부분을 때어다 사랑이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 한 단체의 사랑이 되고 한 단체의 사랑이 인류 전체의 사랑되고, 인류 전체의 사랑이 사랑 그 자체가 되는 것. 이 때는 사랑이 순수하게 된다. 그때가 사랑의 이데아가 된다." 라는 부분과 아리스토팔레스의 주장-"원래 인간은 하나의 완전한 존재였어. 힘이 크기 때문에 제우스가 둘로 나눴어. 그래서 우리는 하나씩 자신의 반쪽을 찾는다. 욕망의 시작은 즉, 상실 결핍 소외 부재에서 생긴다. 사랑은 즉 욕망이야." 라고 말하는 욕망론입니다.
이 욕망에 한 가지 의미를 더 부여하자면, 번역의 차이겠지만 저는 플라톤이 '인간은 완전한 A였는데 제우스에 의해 a, a'로 나눠졌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A와 B의 만남이 아니라 a와 a'가 만나 A가 되는 과정" 이라고 .......... 물리적 성격으로 나눈 A와 B의 만남이 아닌 영혼의 분리, a와 a' 의 만남이라고............ 그래서 사랑은 자신의 영혼의 반쪽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 할 경우, 반쪽이 아님을 알고도 겉모습만으로 사랑을 한 경우, 이별이란 아픔을 겪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에게 완자가] 라는 책이야기를 하기보다 플라톤의 <향연>을 먼저 언급한 것은 성 소수자에게 사회적 통념을 깨는 비도덕적 행위라는 비난을 던지는 이에게, 고대라고 불리는 시대부터 "동성애"는 있어왔으며 사랑이라는 이데아에서 사랑의 한 형태로 존중되어졌다는 것을 말하기 위합니다.
영혼의 반쪽이 물리적 성격이 다른 남과 여로 나눠질 수 있지만, 같은 성을 같고 있는 이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원래 하나의 완전한 존재였던 인간이 둘로 나눠져서 자신의 반쪽을 찾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임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향을 따지자면 저는 이성애자지만, [모두에게 완자가]를 읽으며 성 소주자에 대한 논리적 이해가 아닌 감성적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친구로,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호기심이 아닌 나이는 어리지만 당차게 세상을 살아가는 풋풋한 청춘과 술 한잔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습니다.
 |
p.13 | |
|
사람들 틈 속엔 생각보다 많은 성 소수자들이 있지만
세상에는 그들을 외면하거나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한 명이 주위 사람 세명씩에게만 우리를 알리고 이해시켜준다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
 |
p.172 | |
|
"
"나도 바뀌지 않는 신념이 있듯,
너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을테니까.
강요하면 내가 답답한 만큼, 너도 답답하겠지.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싸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