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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말쟁이
E. 록하트 지음, 하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에 대한 잡다한 생각을 두서없이 늘어놓은 글입니다. 줄거리, 주요 장면, 결말 등의 언급이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으니 부디 유의해 주세요!^^)
설 연휴를 맞이하여서 <우리는 거짓말쟁이>를 두번째로 정독하였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때가 작년 봄인가 여름으로 기억하는데요...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야지, 다시 읽어야지 벼르고 있었답니다. 다 아는 내용인지라 처음 접하였을 때처럼은 확실히 반전에 대한 궁금증도 추리 의욕도 없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생각했네요. 여느 분들은 주인공 캐디가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지루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식(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추억, 목가적인 풍경과 화려하고 사랑스러운 시간들에 대한 묘사)으로 질질 끄는 것(?)이 취향이기 때문에 흡족한 마음으로 독서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학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주문해서 읽어본 다음 소장 욕구가 생기면 제 돈을 지불해서 책을 구하는 편인데... 이 책은 알라딘 사은품 때문에(ㅋㅋㅋ) 처음부터 사비로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인데, 실패하지 않아서 너무 기뻤답니다! 아주 큰 기대 없이, 혹은 다른 목적 때문에 샀을 뿐인 책이 읽어보니 취향에 꼭 들어맞는 순간만큼 뿌듯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ㅎㅎ
제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을 아름답고 환상적인 섬과 그곳에서 아이들이 보내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시간에 대한 서술(퍼지 초콜릿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그래프 용지에 그림을 그리고 스크래블 단어 게임을 하고 보트를 타고 독서를 하고) 때문에도 그렇지만, 캐디의 사촌 조니와 미렌 때문이었습니다.ㅠㅠ 주인공 캐디와 캐디를 사랑하고 그녀의 사랑을 받는 겟보다도 조니와 미렌에게 훨씬 매력을 느끼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ㅜㅜ 특히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거짓말쟁이들이 스크래블 게임(이 게임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최근에 읽은 책 <거짓말 규칙>에서도 이 게임 언급이 돼 있었는데... 재밌을 것 같아서 해보고 싶어요.ㅜㅜ 영어도 못하지만ㅋㅋㅋㅜㅜ)을 하는 장면인데요. 캐디가 격언 이야기를 하느라고 단어를 빨리 만들어주지 않자 조니가 답답해하면서 하는 말이 너무 웃겼습니다.ㅋㅋㅋ 조니는 참 유쾌하고 명랑하고 제가 인간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유머감각을 소유하고 있으며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반전을 알게 되었을 때 더더욱 가여웠지요... 물론 미렌도 겟도... 세 아이 모두 잠재력이 있고 훌륭한 친구들이었으니까요. 봄인가 여름에 처음 읽었을 때는 조니가 제일 좋았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까 미렌이 가장 좋더라고요. 원래 이 두 캐릭터를 비등비등하게 좋아하기는 했습니다.ㅋㅋㅋ 미렌, 이름도 너무 예쁘고 마음씨도 아름답지 않나요.ㅜㅜㅜ 사랑스러워요. 책에서는 긴 머리를 올려묶었다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던데,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제가 받아들인 이미지를 사용해서 멋대로 모습을 형성하거든요, 자꾸만 미렌이 웨이브 진 단발머리의 아가씨라고 상상되었습니다. 질투하면서도 진심으로 캐디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미렌의 솔직하고 다정한 속마음이 좋았고 노란 장미 결혼식을 원하는 미렌이 너무나 가여웠어요. 설탕, 호기심, 비, 미렌에게 아주 어울리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디와 겟은 주연 중에서 특히 주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저는 이제 더이상 정의롭지도 순수하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입 다물기를 원하지 않으며 가만히 있는 것을 거부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드는 성격의 겟이 저는 어찌나 초조하게 느껴지던지요. 겟이 백 번 천 번 옳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 자신을 싱클레어 집안의 일원으로 상상하면서 읽고 있으면 그의 쓴소리가 성가시고 불편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역시 저는 얕고 좁고 모자란 인간이 틀림없나 봅니다. 제가 경애하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도 겟 과라고 볼 수가 있겠지요...? 훌륭한 인물을 존경하면서 왜 당최 닮으려는 시도는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제가 캐디라면 재물욕에 눈이 멀고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으로 정신력이 허약해진 할아버지의 농락에 이리저리 놀아나서 가족의 파탄 방향으로 이끌리는 엄마에게 맞설 수 있을까요?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할아버지를 향해 가식적인 애정을 갈구하라는 엄마의 명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감히 거짓말쟁이들과 공모하여 '우리 손으로 일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저희 어머니 아버지를 제외하면 정말 돈이 최고인 것 같아요... 돈만 있으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요. 저희 엄마가 원하시는 미술 교육도 시켜드릴 수 있을 거고 제주도에 집을 지어드릴 수도 있을 거고 아빠가 원하시는 캠핑 카와 오토바이도 사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요즈음 그런 생각들이 특히나 절박해서, 헛된 욕심과 이기심에 분노하는 거짓말쟁이들에게 당연지사라는 듯 공감하기는 힘들었네요. 처음 읽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을지... 캐디의 엄마와 이모들의 허위와 허영심이 아주 이해되지 않지는 않았어요...ㅜㅜ
캐디와 겟은, 초콜릿과 책을 사랑하는 아이들이어서 맘에 들었습니다.ㅎㅎ 책과 초콜릿만큼 환상적인 것은 없을 거예요! 돈을 벌어서 부모님 호강을 시켜드리고나면 저 자신을 위해서는... 캐디의 소망처럼 집 안을 책과 초콜릿으로 가득 채우고 싶군요...^^ 제 명의로 된 도서관이 갖고 싶어요.ㅜㅜ 하다 못해서 저만의 서재라도! ㅎㅎ 겟이 스스로를 히스클리프라고 생각하는 대목도 좋았습니다. <폭풍의 언덕>은 제 유년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들 중 한 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를 위한 세계명작으로 읽은 것인 만큼 이래저래 축약된 상태의 작품으로 접한 것이었긴 하지만 워서링 하이츠의 혼란하고 애통한 전체적 이미지는 여전히 크나큰 신비로움으로 저에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번 년도 안에 문학동네 출판사 것으로 꼭 다시 읽을 계획입니다! 벌써 설레네요.^^
두번째로 읽을 때는 아무래도 처음 놓친 것들을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첫번째 독서 당시에는 오에 겐자부로를 몰랐을 때인데요... <개인적인 체험>도 읽지 않았을 때고요. <우리는 거짓말쟁이>를 다시 읽으니 처음에는 가볍게 지나쳤던 '여러가지 변형'이 눈에 띕니다. 캐디가 조니와 미렌과 겟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인데요... 캐디는 무사히 바다에 잠수하면서, 여러 가지 변형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요. 자신이 안전하게 바다에 뛰어들지 못했을 변형, 앞서 뛰어내린 조니가 잠수에 실패해서 심하게 다쳤을 변형, 애초에 자신이 거짓말쟁이들을 따라서 바다로 나오지 않았을 변형... <개인적의 체험>에서 히미코인가, 버드에게 다원적 우주에 대해서 말하던 장면이 퍼뜩 생각났습니다. 히미코의 다원적 우주 개념을 좋아했거든요. 버드가 아기를 살리는데 동의한 지금 이 우주 외에, 동의하지 않은 또다른 우주에서는 또다른 상황과 결과가 진행 중이라는 그런 비슷한 개념이었는데... 캐디가 사지 멀쩡하게 뛰어들었던 바다에서 얼굴을 내미는 우주 외의, 바위에 머리가 깨져서 죽어가는 형태의 '변형된 우주'... 버드가 뇌헤르니아 상태의 아기를 살리고 받아들이는 우주 외의, 설탕물 주입을 끊어버리고 죽어가는 아기를 외면함으로서 거부하는 형태의 '변형된 우주'... 저의 변형된 우주들은 현재 각각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일찍이 죽어버린 결과를 맞이한 '변형된 우주'도 있을 거예요. 어쩌면 아주 훌륭한 인간상으로 성장한 '변형된 우주'도 있을 거고요!:)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우주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