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한 잡다한 생각을 두서없이 늘어놓은 글입니다. 줄거리, 주요 장면, 결말 등의 언급이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으니 부디 유의해 주세요!^^)

 

 제가 이 책을 주문한 계기가 떠오르네요. 줄거리 소개글만을 대충 훑고는 법정, 변호인 등속의 단어가 보이기에 존 그리샴의 <의뢰인>같은 작품인가? 했습니다. <의뢰인>은 영화를 먼저 보고서 마크 역을 맡은 배우에게 마음을 빼앗겨 중학교 도서관에서 책으로 빌려 읽은 작품이지요... 영화와 소설의 내용 차이가 없었기 때문인가 먼저 접한 영화가 더 재밌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피아노 치는 여자>, <더 리더>도 영화와 원작의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래서 먼저 본 영화가 더 재밌게 느껴졌답니다! 어느 작품이든 소설을 먼저 보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ㅜㅜ) 대담한 꼬맹이 마크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정 깊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변호사의 활약이 매력적이었는데요. <거짓말 규칙>도 의뢰인과 변호사 콤비가 이끌어가는 소설인가? 생각해서 주문했답니다. 물론 제이컵이라는 의뢰인과 올리버라는 변호사가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완전히 잘못 짚었다고 할 수 있지요. ㅋㅋ

 

 이 작품의 포커스는 제이컵의 누명을 어떻게 벗기느냐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 아스퍼거인에 대한 편견으로 꽁꽁 뭉쳐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번잡하게 밀려드는 고민으로 괴로웠네요.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설명을 읽을수록, 제이컵의 서술을 통해서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볼수록, 정말 미안하지만 사이코패스와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함께 울어주거나 달래주거나 끌어안아 주지는 못하는 아이, 자신에게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신 위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기적인 아이... 다른 분들은 이 책이 800페이지에 가까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좋아서 단숨에 읽으셨다고 하는데 (잘 읽히기는 합니다! 문장이 적확하고 매끄럽고 장면 전환이 재빠르고 흥미진진해서 군더더기가 없어요.) 저는 어느 정도 읽다가 덮고 고민하고, 다시 읽다가 덮고 고민하느라 일주일이나 걸렸습니다.ㅋㅋㅋ 방학이라서 할 일도 없는데 하루에 고작 100페이지를 겨우겨우 읽은 셈...^^; 책 뒤표지를 보면 제이컵의 고독과 열망에 공감하게 된다고 적혀있던데 저는 대체 언제쯤...ㅠㅠ 그런 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한숨 푹푹 쉬면서 읽었네요... 그러다가 간신히 아! 제이컵도 감정이 있구나, 느낀 순간은 리치 형사가 제이컵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가져갈 때... 크라임 버스터스 일지에 끼워져 있던 분홍색 메모지 글을 읽지 않습니까? 거기에 적혀있던 제이컵의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울분... 적어도 저는 제이컵의 시점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진솔한 감정이었기 때문에 정말 제이컵이 쓴 메모가 맞기는 한가 깜짝 놀랐었네요... 그 메모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제이컵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가족, 엄마와 동생 테오를 생각하는 제이컵의 마음보다 제스를 생각하는 제이컵의 마음에서 좀더 인상적이고 따스한 온기를 느꼈습니다. 제이컵이 졸업 파티에 함께 갈 파트너를 구하는 연습을 하면서 제스에게 더듬더듬 뱉어내는 대사는 제스에 대한 제이컵의 진심이지요. 제스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제이컵의 속내를 알고 있는 독자인 저로서는 그렇게도 애절한 사랑 고백이 없었기 때문에 눈물까지 핑 돌더라고요. 대인기술 수업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고만 생각하여 기쁨을 참지 못하고 제스는 제이컵을 끌어안아버리는데 제이컵의 서술에 의하면 너무 좋아서 '거기'가 서 버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많은(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은) 책들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발기하는 상황도 못지않게 많이 봤습니다만... 그 상황 서술을 읽고 기뻐서 날뛴 적은 또 처음입니다.ㅋㅋㅋ 어느 새 저는 에마와 같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심정으로 제이컵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많이 느끼고,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바랐어요.

 

 제이컵 때문에 독서 내내 마음고생을 했다면, 작중 인물 중에서 제일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당히 이끌리는 기분으로 지켜보아온 캐릭터가 제이컵의 동생 테오인데... 곤두선 말투와 시크한 행동이 멋져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테오의 외로움과 반항심에 가장 많이 이입했기 때문임이 아닌가 합니다.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을 갈망하는 테오의 공허에 동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가택 침입과 도벽에도 쉽사리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만, 하지만, 제 생각에는, 결말이 이런 식으로 나버리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이렇게 되어버리면 제스를 죽인 사람이 결국 테오가 되는 것 아닙니까? 테오만 교수의 집으로 몰래 들어가지 않았다면 제스가 놀라서 넘어지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오에 겐자부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제스의 죽음의 책임은 온통 테오에게 있어버리는 게 됩니다.ㅋㅋㅋ; 그래서 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제이컵도 테오도 마크도 아닌 제3자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정말 테오 때문에 놀라 넘어져 죽은 것이었다니...; 오에 겐자부로가 이 책을 썼다면 아마 제이컵이 끝까지 테오 대신에 죗값을 떠안는 구원자의 형태로 끝맺어졌을 겁니다.ㅋㅋㅋ 이제 테오는 뭐 어떻게 되는 것인지...; 제가 법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기 때문에 테오 같은 케이스는 어떤 형이 내려지는지 알지도 못하겠네요. 테오를 무죄라고 보기에는 제스가 너무나 가엾지 않은가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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