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지연리 옮김 / 저녁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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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프랑스 소설은 실로 오랜만에 접한다. 한창 기욤 뮈소 소설에 빠져 프랑스 소설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유머에 취해 있었던 나날이 떠오른다. 이 책은 2015년에 남은 생의 첫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적이 있다. 남은 생의 첫날이라는 문구는 책에서도 계속 언급될 정도로 책에서 가지는 의미가 큰데, 개정되면서 제목이 바뀌다니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라는 제목이 더 맘에 들고 개정된 책표지는 더욱 맘에 든다.

곧 40대를 앞둔, 평범한 가정주부 마리는 펠리시타 호라는 여객선에 혼자 오른다. 무관심하고 가정에 소홀한,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을 피우는 남편에게 지쳐 다시는 사랑 따윈 안 하리라 마음먹고 고독을 즐기겠노라 다짐하며 혼자만의 여행길에 오른 것인데, 이 여객선은 무려 석 달 동안 7개의 바다를 건너 30개가 넘는 나라에 도착한다. 남편 일은 안됐지만 마리가 진정 부러운 순간이다. 마리는 여행하는 동안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겠노라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는데 어디 인생이 마음대로 되던가. 그녀는 여객선에서 안과 카미유라는 진정한 친구들을 얻을 뿐 아니라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심지어 그 운명의 남자는 마리와의 첫 만남에서 무례하게 행동해서 마리의 첫인상에는 나쁜 남자로 기억되는데, 이 나쁜 남자가 나중에 마리랑 어떤 관계로 향할지가 흥미진진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가진 남자 사냥꾼 카미유. 25살이지만 마리와 안의 여행 친구로서 모자람이 없는 배려심과 특유의 유머를 가진 순수한 사람이다. 동정심 때문에 예전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하고, 몰래 쓰고 있는 블로그가 유명세를 치르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카미유도 여행지에서 진정한 인연을 만나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인생의 짝을 찾게 된다. 이쯤 되면 펠리시타 호는 고독을 가장해서 혼자 여행길에 오르게 하고 짝을 찾아주는 사랑의 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각자 사연이 있겠지만 안정된 직장과 평온한 일상, 보고 싶은 가족들과 친구를 뒤로 한 채 혼자 배에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여행을 끝마쳤을 때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펠리시타 호는 적절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건강염려증과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는 안은 이 여행을 통해 높은 절벽과 고층 빌딩, 스노클링등을 경험하는 익사이팅한 순간을 맞이한다. 물론 혼자서는 절대 무리였을 것이다. 안은 60대이지만 여행지마다 엽서를 사서 남편에게 부치는 소녀 같은 마음을 가진, 밤마다 강아지 인형을 안고 자는 귀여운 할머니이다.

시공간과 나이를 초월한 세 여자의 우정. 세 여자들이 각자의 짝을 찾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과정들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흐뭇해지면서 행복해진다. 80세 노년의 나이에도 사랑에 다시 빠진 이블린을 포함해서 세 여인의 밝은 미래와 행복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설레면서 몽글몽글해진다. 이 소설을 통해 깨달은 건 두 가지. 한 가지는 여행은 언제 어느 때 가도 참 좋다는 것. 삶은 예측할 수 없으니 여행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혼자 여행을 가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가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두 번째는 우정도, 사랑도 나이는 상관없다는 것. 마음을 열고 진실하게 대하면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상처받지만 결국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타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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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타임캡슐
기타가와 야스시 지음, 박현강 옮김 / 허밍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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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오랜만에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을 만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책은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마치 자기계발서를 접한 느낌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말들이 깨알같이 버릴게 하나도 없는,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 많아서 공감이 갔고 나도 지금의 인생과 다르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설레었다.

10년 후 미래의 자신에게 쓴 편지를 누군가 직접 배달해 준다면 어떤 느낌일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다는데 그 편지를 썼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 편지는 의미 있고 유용할까. 사업을 하다 경영난에 부딪힌 히데오가 새로 취업한 회사는 회사에서 정한 기간, 2주라는 시간 내에 10년 전의 편지를 다섯 명에게 직접 전달하는 일이다. 10년 사이에 주소지가 변경되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미수취된 편지들을 적절한 타이밍에 전달하면 되는 일이지만, 해외 출장도 있고 일할 때의 복장은 하얀 정장에 중절모를 써야 하는 특이한 회사이다. 이런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면 어떨까. 매출은 발생하려나.

히데오는 2주 동안 선임인 가이토와 동행하며 일을 배우고 전국 각지와 해외를 돌아다니며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대부분 편지의 주인공들은 현재 행복한 상태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두운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히데오는 편지를 전해주며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었단 걸 깨닫고 편지의 주인공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자신도 어느새 삶의 희망을 발견한다. 자신이 쓴 10년 전의 편지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사이에 다시 인생을 잘 살아보자는 용기와 결심이 만들어진 것이다.

편지 배달을 하면서 어느새 히데오는 자신이 아내를 외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내가 딸을 데리고 떠난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내와 결혼식 때 주고받은 편지를 읽은 후에 아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느낄 수 없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 비로소 잃고 나서야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과거에 내가 10년 후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는 대부분 밝고 희망적일 것이다. 혹여 그 미래대로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과거에 연연해 할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리라. 마음속에 품은 작은 불빛이 불씨가 되어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면 누구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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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거미의 이치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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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청난 등장인물과 일본의 옛말이 자주 나와서 각주가 자주 나온다. 각주 역시 길다.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보통의 내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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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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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붉은색 표지와 표지에 그려진 찢어진 검은 돛대가 읽기도 전에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열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어촌 마을. 먹을 것도 일자리도 풍족지 않은 마을이라 생선이나 소금 등을 이웃집 마을과 곡식으로 교환하며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주인공 이사쿠는 동생들과 어머니를 보필해야 하는 집안의 가장이다. 아버지가 고용 하인으로 3년 동안 팔려갔기 때문에 이사쿠가 가장이 된 것이다.

"파도가 거친 날에는 해가 지기 무섭게 해변에 불을 피웠다."
<파선> p.46

왜 파도가 거친 캄캄한 밤에 불을 피워야 했을까. 소금 굽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행여라도 사고 난 배가 소금 굽는 불빛을 보고 이사쿠의 마을에 오다가 암초에 걸리면 배는 난파되고 만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 배를 뱃님이라고 지칭하며 이제나저제나 뱃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난파된 배 안에서 획득한 쌀과 식량들, 목재 등을 촌장 지휘하에 마을 사람들끼리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이다. 뱃님이 오시는 해에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가족들 중 누군가를 고용 하인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사쿠 역시 누구보다 뱃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계절이 바뀜에 따라 꽁치잡이, 오징어잡이, 문어잡이를 하면서 가장 노릇을 착실히 해 나간다. 매일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하며 굶주림과 싸워야 하는 고단한 인생이지만 가족들을 잘 건사해야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떳떳하게 아버지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사쿠는 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를 버틴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소금 굽는 불빛을 보고 난파된 배가 이사쿠 마을에 당도하고 이사쿠는 드디어 뱃님의 방문을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배에는 쌀과 술, 목화솜, 기름 등 생활에 필요한 용품이 가득 실려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당분간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고 어느 1월 말 밤에 또 배 한 척이 마을로 들어온다.

"붉은색은 경사스러운 색이다. 무언가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붉은색 옷을 입고 배에 올라탔겠지."
<파선>p.188

이번엔 파선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죽어 있었다. 시체에는 부스럼이나 두드러기 같은 흉터가 있었지만 마을 노인은 열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붉은 옷을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하자고 한다. 당시 붉은 비단은 진귀해서 마을 사람들은 고급 진 옷감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붉은색 옷과 경사스러운 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음을 눈치챈 마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야기의 끝은 비극적이고 침울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 순진하고 모르는 게 많았다는 것. 굶주림을 두려워 한 나머지 난파된 배 안의 물건들을 나눠 갖고 배 안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자 마을을 지키는 방법이라서 당연히 뱃님은 하늘이 내려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붉은 비단을 싣고 나타난 배는 뱃님을 부르려고 밤에 소금 굽기를 하고, 임산부를 바다에 내보내 뱃님이 오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던 마을 사람들에 대한 하늘의 응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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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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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문시라는 도시에서 뱅상 식탁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정빈승. 그런데 뱅상 식탁의 구조는 좀 특이하다. 입구를 제외하고 삼면은 막혀 있고, 각 테이블은 벽에 막혀 있다. 의자는 상대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같이 앉아야 한다. 테이블은 총 4개로 2인이 앉는 백 퍼센트 예약제 식당.

1번 테이블에는 대학원 동기인 수창과 애진, 2번 테이블에는 모녀 사이인 정란과 연주, 3번 테이블에는 20여 년 만에 만난 학창 시절 친구인 상아와 유진, 4번 테이블에는 직장 동료인 성미와 민경.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식당의 특이한 구조 때문에 자신의 일행 외에 다른 손님을 볼 수 없다. 오직 정빈승만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손님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한창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는 이들은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10분의 시간을 줄 테니, 한 테이블당 한 명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8명의 사람들은 두뇌를 풀가동하여 어떻게든 본인이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상대에게 납득시킨다. 내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했던 테이블은 이 중 유일한 가족관계인 모녀 테이블이다. 평생을 엄마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꼭두각시처럼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했던 딸에게 뱅상 식탁 이벤트(?) 는 일종의 탈출구이자 기회였는지 모른다. 끝까지 모든 사람을 다 탈출시키고자 정빈승을 설득한 것도 딸이었는데 끝내 희생자가 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20여 년 만에 재회한, 똑같은 원피스를 입은 친구 테이블. 이들은 자식들의 학폭 문제로 다시 만나게 된 껄끄러운 사이이다. 복병은 이 테이블에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 엄마들인데 말이다. 심지어 한 명은 임산부인데.

테이블 중에 유일하게 남자가 있는 1번 테이블. 예전에는 교장이었으나 퇴직 후에 소설가를 꿈꾸는 수창과 자식들과 집안을 돌보느라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애진. 수창은 주야장창 애진을 무시하며 자기가 애진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전형적인 속물이다. 마지막 테이블인 4번에는 직장 동료인 동갑내기 여자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도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서로 본인이 희생하며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정빈승은 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상처를 입어 심약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진 정빈승은 주장한다. 끊임없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그는 사람들을 인질로 가둬두고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누구도 죽이지 못한 마음이 여린 보통의 식당 사장일 뿐이었다.

​8명 중에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예상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 변심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가 예측불허라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작가는 인간의 이면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걸까. 인간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추악함과 이기심. 극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진심과 진실들. 가족관계에서조차 이러한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오죽할까.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고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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