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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지다정 외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작년에 이어 어김없이 올해에도 교보문고 2025년도 단편 5개가 실린 수상작품집이 발간되었다. 표지가 갈수록 점점 화려해지는 느낌이다. 작품들의 제목들 또한 예사롭지 않다. 각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SF,미스터리, 판타지 분위기. 다소 호불호가 있겠구나 느낌을 받은 건 SF 단편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뭔가 묵직함과 서사 있는 장편이라면 몰라도 특히 단편은 꺼리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으며 SF 장르의 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지만 나 역시 한때 이러한 장르들은 무조건 걸렀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독서 트렌드로 보았을 때 이러한 장르들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근미래의 과학적 배경에 곧 맞닥뜨리게 될 사회적 문제들이 가미되어 이것을 스토리로 녹여낸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정말 이런 날이 오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지 읽는 내내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이러한 현실에 기꺼이 맞서서 싸운다. 두렵다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확장을 위한 판타지를 실현함으로써 극복하고 이겨내려 한다.
P.29 ˝그 방에 붙어 있는 것이 무엇이든, 언니를 시름시름 앓게 만들어 쫓아낸 다음,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을까.˝
극복하고 이겨내려고 하는 마음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야 할지 본성에서 발현된 욕망이라고 해야 할지 정의할 수는 없다. 무엇이 되었든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도가 지나치면 욕심이 되는 법.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해 인간의 상상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실체에 대해 알고 나서도 세속적 욕망에 갇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첫 번째 작품의 영서처럼 우리 모두는 살면서 끊임없이 욕구와 마주하고 타협한다.
p.96˝사실 모두 알고 있었다. 치료제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더 이상 치료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치료제란 말은 계속 남아서 자신만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2045년이 되면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 세계 최고국이 된다는 씁쓸한 뉴스를 보았다. 노인 인구의 증가로 복지나 재정을 위한 지출이 대책 없이 증가하는 반면, 출생 인구는 극도로 낮아져 실질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의 부담이 높아지고 이러한 현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아낸 두 번째 작품은 리얼하면서도 슬프다. 고독사, 고립, 빈곤을 떨쳐내기 위해 좀비라는 인위적이고 편리한 제도를 만들어내고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좀비가 되어버린 안타깝고 서글픈 사람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좀비가 되었는가.
P.236˝다만 익숙해지지 않는 건 저들의 얼굴이었다. 더 이상 인간으로도, 짐승으로도 볼 수 없는 얼굴들, 너무 징그럽고 흉해서 보기만 해도 구역감이 들었다.˝
인간의 추악함과 민낯을 보여주는 마지막 작품은 지구가 물에 잠긴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이 수중류라는 기괴한 생물체가 된다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다. 그들은 잠수정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표를 진행하여 서로 바다로 추방하기도 하고, 수중류를 포획하여 실험을 진행하면서 단서를 알아내고자 한다. 결국 천지연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이기적인 인간에게 질려버려 탐색자라는 명분 아래 스스로 돌연변이를 자처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바다에 다다르고 평온해진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서 이와 같은 장르의 소설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고 독자들은 더 자극적인 소재를 원할지 모르겠다. 이처럼 기기묘묘하고도, 엉뚱한 것 같지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들이 녹여져 있는,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게 사유할 수 있는 소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