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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장르가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철학서인 줄 알았다. 책 두께도 상당하다. 뭔가 깊은 사연이 담긴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라고 기대하며 빠져 읽기 시작했다. 책 소개에도 유괴라는 사건에 초점을 두지 않고 3년간의 공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어서 어떤 반전과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아쓰기 지역에서 벌어진 초등학교 6학년 남아의 유괴 사건과 요코하마시에서 벌어진 네 살짜리 남아 유괴사건이 같은 날,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다. 동시 유괴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태로, 현경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신속하게 수사본부를 꾸리고 적절한 인원 배치를 통해 두 아이 모두를 안전하게 구조하려 애쓴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베테랑인 나카자와 형사를 비롯한 현경들은 첫 번째 유괴사건이 두 번째 유괴사건을 위한 덫임을 눈치챈다.
두 번째 유괴사건의 피해자 나이토 료. 나이토 료의 할아버지인 시게루는 경찰들과 협력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돈 가방을 전달하려 했지만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료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나 7살이 되어 아이가 조부모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는 사건에 대해 말이 없고 조부모 역시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유괴 사건은 시게루 집안의 자작극이라니, 범인은 료의 엄마였다는 각종 추측의 말이 떠돌고 어느새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어느덧 요코하마 유괴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공소시효도 만료되어 범인을 잡아도 무의미해졌지만 나카자와 형사의 죽음을 계기로, 당시 나카자와 각별한 사이였던 신문기자 몬덴은 공백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끈질기게 취재한다. 나카자와 형사를 비롯하여 당시 사건 해결에 힘쓰고 있던 나카자와 형사의 부하나 동료들이 30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 사건을 기억하며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이 발동한 것이리라.
3년 동안 나이토 료를 누가 데리고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몬덴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료의 어머니를 찾아다니고, 각종 취재와 인맥을 동원하여 화랑과 그림에 대해 추적한다. 미술 기법, 화랑, 화가, 그림. 사실 나는 이런 것들에 문외한이라 몬덴이 이런 것들을 추적하는 과정들이 좀 지루했다. 나이토 료가 그린 그림들이 계속 누군가와 겹쳐지고 몬덴은 결국 료의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 화가가 누군인가를 알아낸다.
그 와중에도 료와 리호의 서정적이면서도 서로의 성장을 북돋아 주는 관계가 좋았다. 리호 역시 료의 흔적을 쫓아 사방팔방 헤매다가 결국 료를 만나게 된다. 료를 짝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그를 응원하다가 료와 재회하게 되었을 때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되는 리호. 아마 료도 리호를 많이 좋아하지만 내성적이고 과묵한 성격 탓에 말하지 못했겠지.
료가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이라서 참 다행이다. 료의 친엄마는 아이가 유괴돼도 태평한데 정작 3년 동안 료를 맡아 키운 사람들은 친자식처럼 료를 보살피고 사랑해 주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책의 제목이 찰떡이었다. 사실화라는 그림은 눈에 또렷이 각인되어 보이는 부인할 수 없는 어느 하나의 존재이다.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을 마음으로밖에 간직할 수 밖에 없는 료의 마음은 사실화라는 존재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