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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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붉은색 표지와 표지에 그려진 찢어진 검은 돛대가 읽기도 전에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열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어촌 마을. 먹을 것도 일자리도 풍족지 않은 마을이라 생선이나 소금 등을 이웃집 마을과 곡식으로 교환하며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주인공 이사쿠는 동생들과 어머니를 보필해야 하는 집안의 가장이다. 아버지가 고용 하인으로 3년 동안 팔려갔기 때문에 이사쿠가 가장이 된 것이다.

"파도가 거친 날에는 해가 지기 무섭게 해변에 불을 피웠다."
<파선> p.46

왜 파도가 거친 캄캄한 밤에 불을 피워야 했을까. 소금 굽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행여라도 사고 난 배가 소금 굽는 불빛을 보고 이사쿠의 마을에 오다가 암초에 걸리면 배는 난파되고 만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 배를 뱃님이라고 지칭하며 이제나저제나 뱃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난파된 배 안에서 획득한 쌀과 식량들, 목재 등을 촌장 지휘하에 마을 사람들끼리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이다. 뱃님이 오시는 해에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가족들 중 누군가를 고용 하인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이사쿠 역시 누구보다 뱃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계절이 바뀜에 따라 꽁치잡이, 오징어잡이, 문어잡이를 하면서 가장 노릇을 착실히 해 나간다. 매일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하며 굶주림과 싸워야 하는 고단한 인생이지만 가족들을 잘 건사해야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떳떳하게 아버지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사쿠는 어머니와 함께 하루하루를 버틴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소금 굽는 불빛을 보고 난파된 배가 이사쿠 마을에 당도하고 이사쿠는 드디어 뱃님의 방문을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배에는 쌀과 술, 목화솜, 기름 등 생활에 필요한 용품이 가득 실려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당분간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고 어느 1월 말 밤에 또 배 한 척이 마을로 들어온다.

"붉은색은 경사스러운 색이다. 무언가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붉은색 옷을 입고 배에 올라탔겠지."
<파선>p.188

이번엔 파선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죽어 있었다. 시체에는 부스럼이나 두드러기 같은 흉터가 있었지만 마을 노인은 열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붉은 옷을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하자고 한다. 당시 붉은 비단은 진귀해서 마을 사람들은 고급 진 옷감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붉은색 옷과 경사스러운 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음을 눈치챈 마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야기의 끝은 비극적이고 침울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 순진하고 모르는 게 많았다는 것. 굶주림을 두려워 한 나머지 난파된 배 안의 물건들을 나눠 갖고 배 안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자 마을을 지키는 방법이라서 당연히 뱃님은 하늘이 내려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붉은 비단을 싣고 나타난 배는 뱃님을 부르려고 밤에 소금 굽기를 하고, 임산부를 바다에 내보내 뱃님이 오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렀던 마을 사람들에 대한 하늘의 응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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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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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문시라는 도시에서 뱅상 식탁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정빈승. 그런데 뱅상 식탁의 구조는 좀 특이하다. 입구를 제외하고 삼면은 막혀 있고, 각 테이블은 벽에 막혀 있다. 의자는 상대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같이 앉아야 한다. 테이블은 총 4개로 2인이 앉는 백 퍼센트 예약제 식당.

1번 테이블에는 대학원 동기인 수창과 애진, 2번 테이블에는 모녀 사이인 정란과 연주, 3번 테이블에는 20여 년 만에 만난 학창 시절 친구인 상아와 유진, 4번 테이블에는 직장 동료인 성미와 민경. 이들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식당의 특이한 구조 때문에 자신의 일행 외에 다른 손님을 볼 수 없다. 오직 정빈승만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손님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한창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는 이들은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10분의 시간을 줄 테니, 한 테이블당 한 명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8명의 사람들은 두뇌를 풀가동하여 어떻게든 본인이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상대에게 납득시킨다. 내가 제일 안타깝게 생각했던 테이블은 이 중 유일한 가족관계인 모녀 테이블이다. 평생을 엄마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꼭두각시처럼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했던 딸에게 뱅상 식탁 이벤트(?) 는 일종의 탈출구이자 기회였는지 모른다. 끝까지 모든 사람을 다 탈출시키고자 정빈승을 설득한 것도 딸이었는데 끝내 희생자가 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20여 년 만에 재회한, 똑같은 원피스를 입은 친구 테이블. 이들은 자식들의 학폭 문제로 다시 만나게 된 껄끄러운 사이이다. 복병은 이 테이블에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 엄마들인데 말이다. 심지어 한 명은 임산부인데.

테이블 중에 유일하게 남자가 있는 1번 테이블. 예전에는 교장이었으나 퇴직 후에 소설가를 꿈꾸는 수창과 자식들과 집안을 돌보느라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애진. 수창은 주야장창 애진을 무시하며 자기가 애진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전형적인 속물이다. 마지막 테이블인 4번에는 직장 동료인 동갑내기 여자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도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서로 본인이 희생하며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정빈승은 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상처를 입어 심약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진 정빈승은 주장한다. 끊임없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그는 사람들을 인질로 가둬두고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누구도 죽이지 못한 마음이 여린 보통의 식당 사장일 뿐이었다.

​8명 중에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예상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 변심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가 예측불허라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작가는 인간의 이면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걸까. 인간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추악함과 이기심. 극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진심과 진실들. 가족관계에서조차 이러한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오죽할까.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고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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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라이브러리
케이시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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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끝내 주인공 소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 책장을 덮었다. 엄마와 재회하면 이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뭐,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각각의 등장인물은 이름 대신 소녀가 붙인 별명으로 불린다.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며 만난 발톱은 소녀가 사회생활을 하며 사귄 첫 번째 친구이다. 다리를 절고 귀가 살짝 안 들리는, 덩치 크고 무식하게 힘이 센 발톱. 소녀와 발톱과의 티키타카, 티격태격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소녀가 편의점 야간 알바를 버틸 수 있었던 건 발톱의 배려와 은근히 잘 맞았던 개그코드였다.

엄마를 찾는 것이 최종 목표였던 소녀는 악조건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다. 편의점에서도 책을 매개로 손님과 친분을 쌓고, 발톱에게도 책을 권유하며 책 속에서 의미를 찾고 삶을 배운다. 소녀가 발톱에게 추천하는 고전 소설 몇 권이 있는데 부끄럽게도 아직 나도 못 읽은 거라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편의점과 가까운 곳에 라이브러리라는 서점이 있다. 사실 소녀는 엄마의 흔적을 찾아 이 도심 속으로 발을 들여놓은 거라서 어렴풋이 이 근처에서 엄마를 찾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소녀는 책을 좋아한 덕분에 서점 원장님의 배려로 라이브러리에서 일을 하며 맘껏 책을 읽고, 휴게실에서 생활을 하며 엄마의 흔적을 쫓는다. 그 와중에 중학교 때 왕따였던 눈곱을 서점에서 만난다. 소녀는 중학교 때 자퇴했던 일을 회상한다. 괴롭힘당하는 눈곱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자퇴서를 쓰고 훌쩍 학교를 떠난 버린 것. 눈곱은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학을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눈곱은 소녀와 라이브러리에서 같이 일하며 소녀의 친구로서, 동료로서 함께 지낸다.

소녀에게는 한 명의 친구가 더 있다. 소녀는 히키가 편의점 손님으로 왔을 때, 편의점에 자주 오는 길고양이를 히키 집에 키우게 하고 소극적이었던 그를 밖으로 꺼낸 장본인이다. 히키는 히키코모리의 줄임말로 역시 소녀가 지어준 별명이다. 별명 짓기 천재인 듯. 넷은 어느새 돈독한 사이가 된다. 넷이 똘똘 뭉쳐 서점을 이용하여 마약을 유통하려고 했던 나쁜 놈들을 잡는 일화도 흥미진진했다. 외로웠던 소녀에게 발톱과 히키, 눈곱이 곁에 있어 주어 다행이다.

보통 엄마와 딸이라는 책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신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예외이다. 서로를 갈구하는 모녀간의 절절한 사랑도 느낄 수 있지만, 소녀와 친구들이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같이 긍정적으로 성장하는 한 편의 성장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마지막에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그동안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된 소녀. 이제 엄마와 오래오래 행복할 일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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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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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장르가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철학서인 줄 알았다. 책 두께도 상당하다. 뭔가 깊은 사연이 담긴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라고 기대하며 빠져 읽기 시작했다. 책 소개에도 유괴라는 사건에 초점을 두지 않고 3년간의 공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어서 어떤 반전과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아쓰기 지역에서 벌어진 초등학교 6학년 남아의 유괴 사건과 요코하마시에서 벌어진 네 살짜리 남아 유괴사건이 같은 날,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다. 동시 유괴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태로, 현경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신속하게 수사본부를 꾸리고 적절한 인원 배치를 통해 두 아이 모두를 안전하게 구조하려 애쓴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베테랑인 나카자와 형사를 비롯한 현경들은 첫 번째 유괴사건이 두 번째 유괴사건을 위한 덫임을 눈치챈다.

두 번째 유괴사건의 피해자 나이토 료. 나이토 료의 할아버지인 시게루는 경찰들과 협력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돈 가방을 전달하려 했지만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료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나 7살이 되어 아이가 조부모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는 사건에 대해 말이 없고 조부모 역시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유괴 사건은 시게루 집안의 자작극이라니, 범인은 료의 엄마였다는 각종 추측의 말이 떠돌고 어느새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어느덧 요코하마 유괴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공소시효도 만료되어 범인을 잡아도 무의미해졌지만 나카자와 형사의 죽음을 계기로, 당시 나카자와 각별한 사이였던 신문기자 몬덴은 공백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끈질기게 취재한다. 나카자와 형사를 비롯하여 당시 사건 해결에 힘쓰고 있던 나카자와 형사의 부하나 동료들이 30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 사건을 기억하며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이 발동한 것이리라.

3년 동안 나이토 료를 누가 데리고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몬덴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료의 어머니를 찾아다니고, 각종 취재와 인맥을 동원하여 화랑과 그림에 대해 추적한다. 미술 기법, 화랑, 화가, 그림. 사실 나는 이런 것들에 문외한이라 몬덴이 이런 것들을 추적하는 과정들이 좀 지루했다. 나이토 료가 그린 그림들이 계속 누군가와 겹쳐지고 몬덴은 결국 료의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 화가가 누군인가를 알아낸다.

그 와중에도 료와 리호의 서정적이면서도 서로의 성장을 북돋아 주는 관계가 좋았다. 리호 역시 료의 흔적을 쫓아 사방팔방 헤매다가 결국 료를 만나게 된다. 료를 짝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그를 응원하다가 료와 재회하게 되었을 때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되는 리호. 아마 료도 리호를 많이 좋아하지만 내성적이고 과묵한 성격 탓에 말하지 못했겠지.

​료가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이라서 참 다행이다. 료의 친엄마는 아이가 유괴돼도 태평한데 정작 3년 동안 료를 맡아 키운 사람들은 친자식처럼 료를 보살피고 사랑해 주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책의 제목이 찰떡이었다. 사실화라는 그림은 눈에 또렷이 각인되어 보이는 부인할 수 없는 어느 하나의 존재이다.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을 마음으로밖에 간직할 수 밖에 없는 료의 마음은 사실화라는 존재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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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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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장르가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철학서인 줄 알았다. 책 두께도 상당하다. 뭔가 깊은 사연이 담긴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라고 기대하며 빠져 읽기 시작했다. 책 소개에도 유괴라는 사건에 초점을 두지 않고 3년간의 공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어서 어떤 반전과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아쓰기 지역에서 벌어진 초등학교 6학년 남아의 유괴 사건과 요코하마시에서 벌어진 네 살짜리 남아 유괴사건이 같은 날,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다. 동시 유괴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태로, 현경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신속하게 수사본부를 꾸리고 적절한 인원 배치를 통해 두 아이 모두를 안전하게 구조하려 애쓴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베테랑인 나카자와 형사를 비롯한 현경들은 첫 번째 유괴사건이 두 번째 유괴사건을 위한 덫임을 눈치챈다.

두 번째 유괴사건의 피해자 나이토 료. 나이토 료의 할아버지인 시게루는 경찰들과 협력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돈 가방을 전달하려 했지만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료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나 7살이 되어 아이가 조부모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는 사건에 대해 말이 없고 조부모 역시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유괴 사건은 시게루 집안의 자작극이라니, 범인은 료의 엄마였다는 각종 추측의 말이 떠돌고 어느새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어느덧 요코하마 유괴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공소시효도 만료되어 범인을 잡아도 무의미해졌지만 나카자와 형사의 죽음을 계기로, 당시 나카자와 각별한 사이였던 신문기자 몬덴은 공백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끈질기게 취재한다. 나카자와 형사를 비롯하여 당시 사건 해결에 힘쓰고 있던 나카자와 형사의 부하나 동료들이 30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 사건을 기억하며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감이 발동한 것이리라.

3년 동안 나이토 료를 누가 데리고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몬덴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료의 어머니를 찾아다니고, 각종 취재와 인맥을 동원하여 화랑과 그림에 대해 추적한다. 미술 기법, 화랑, 화가, 그림. 사실 나는 이런 것들에 문외한이라 몬덴이 이런 것들을 추적하는 과정들이 좀 지루했다. 나이토 료가 그린 그림들이 계속 누군가와 겹쳐지고 몬덴은 결국 료의 그림자에 가려진 천재 화가가 누군인가를 알아낸다.

그 와중에도 료와 리호의 서정적이면서도 서로의 성장을 북돋아 주는 관계가 좋았다. 리호 역시 료의 흔적을 쫓아 사방팔방 헤매다가 결국 료를 만나게 된다. 료를 짝사랑하지만 말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그를 응원하다가 료와 재회하게 되었을 때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되는 리호. 아마 료도 리호를 많이 좋아하지만 내성적이고 과묵한 성격 탓에 말하지 못했겠지.

​료가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이라서 참 다행이다. 료의 친엄마는 아이가 유괴돼도 태평한데 정작 3년 동안 료를 맡아 키운 사람들은 친자식처럼 료를 보살피고 사랑해 주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책의 제목이 찰떡이었다. 사실화라는 그림은 눈에 또렷이 각인되어 보이는 부인할 수 없는 어느 하나의 존재이다.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3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을 마음으로밖에 간직할 수 밖에 없는 료의 마음은 사실화라는 존재를 통해 생생하게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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