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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 이상 소설 전집 ㅣ 시간과공간사 클래식 6
이상 지음, 신범순 해설 / 시간과공간사 / 2026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상은 대표작인 ‘날개‘ 외에도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명작들을 많이 남긴 작가로 유명하다. 그 명작들을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작품들이 다소 난해하다. 어렵고 난해할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읽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원문을 읽으라고 했다면 나는 포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가독성을 높인 띄어쓰기와 주석 덕분에 그나마 읽을 만했고,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작품은 끝에 있는 해설을 참고했다.
이 책은 이상의 소설을 집필 연도순으로 배열하였고, 생전에 발표되지 않은 유고작도 실제 집필 시기를 기준으로 배열하였다. 자전적인 소설이 꽤 많아 이상이 살아온 짧은 생애를 추측하면서 그의 종적을 따라가면서 읽는다고 하니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12월 12일‘은 이상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사가 비교적 길고 구체적으로 전개되어, 이상의 난해한 작품 세계로 진입할 때 그나마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업이가 비극적으로 화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그로 인해 동생 T가 복수심에 불타 방화를 저지르며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업이는 T가 애지중지 키우며 온갖 기대를 걸었던 아들이었지만, 결국 비뚤어진 환경과 시대적 파국 속에서 덧없이 무너지고 만다. 결말을 꼭 그렇게까지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갔어야 했나 싶을 만큼 씁쓸하고 마음이 아프다. 이상이 그려낸 인물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가혹한 운명이나 시대의 압박 앞에서 무력하게 흔들린다.
‘날개‘ 역시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뻐근하고 먹먹해지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아내의 방에 갇혀 지내며 밥을 얻어먹고 사는 무기력한 지식인 나, 그리고 아내에게 의존하면서도 스스로를 조롱하는 모습은 식민지 시대의 무력한 지식인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에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날개야 다시 돋아라. 이대로, 이대로 다가서서 또 한 번 날아보자꾸나˝라고 외치는 장면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탈출을 갈구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어서 더욱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작품은 ‘단발‘이다. 이 작품 역시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애정의 거자‘라든가 ‘이중의 역설‘ 같은 표현들처럼, 인물이 스스로의 감정을 객관화하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에 매몰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상당히 난해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상의 다른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주인공인 남성의 시선 속에서 남성을 지배하면서도 수동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것은 이상 특유의 여성 불신이나 불안정한 남녀 관계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데 ‘단발‘의 소녀는 다른 여성과 달리 눈에 띄게 주체성을 획득해 가는 인물이다. 가족이었던 오빠의 배신을 겪으며 소녀는 완전히 혼자가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 충격을 통해 세상과 남성에게 의존하던 태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단순한 미용적 선택이 아니라 전통적인 규범을 거부하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강렬한 상징이었다고 한다. 소녀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머리를 잘라버림으로써 타인의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인데 이쯤에서 나는 궁금했다. 이상의 작품 세계에서 이렇게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주체성을 찾아가는 여성 캐릭터는 드문 것 같은데 이상에게 이때 여성에 관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미주 페이지를 보니 책 편집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상의 소설은 워낙 당대 한자어, 일본식 표현, 사투리, 그리고 작가 특유의 난해한 단어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어서 미주나 주석이 없으면 한 문장 한 문장 넘어갈 때마다 막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독서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상이 도쿄로 건너가 객사하기 직전, 말년에 가까운 시기에 쓴 작품인 ‘종생기‘ 또한 인상 깊게 읽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한 극도의 허무주의와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질식해 가는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냈는데, 생과 사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이상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유난히 이상의 소설에서는 죽음, 자살, 허무, 공허, 역설 같은 단어들이 떠돌고 있다. 추상적이기에 더 난해하고 어렵다. 이처럼 이상의 소설들은 단순히 읽히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파편화된 조각들을 맞춰가며 해독해야 하는 독특한 미학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