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안하지만 싫습니다 - 무례한 세상에 보내는 깍듯한 디스
정준화 지음 / 몽스북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 표지가 무척이나 내 스타일인데 세상에나! 내용 또한 싫음에 대한 고찰을 이렇게나 적나라하면서도 깊게 서술하고 있다니. 이런 책은 무조건 읽어야 한다. 그렇다. 이 책은 싫어하는 것에 대한 깊은 사색이자, 그 싫음이 이미 싫어하는 것을 넘어 삶에 깊숙이 불편으로 들어앉아 있어 작가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고뇌이자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남은 씁쓸한 경험담이다. 그런데 묘하게 동감이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동감이 가서 허허, 나랑 세대가 다른 사람인데 이렇게 나랑 마음이 통하다니! 놀라운 것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많은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싫어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page.30
이쯤 되면 작가는 싫어하는 것에 대해 진심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싫어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이유보다 더 복잡하고 꼬여 있을 때가 많다는 작가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렇다고 작가가 굉장히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작가는 염세주의자이고 어느 정도 시니컬하면서도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인간들이 마냥 좋고, 모든 면에서 낙관적이고,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싫어하는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조용히 책을 덮으시길. 그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니.
공포 영화 속 천진난만한 아역 배우의 눈치 없는 캐릭터에 대한 신랄한 비난은 사이다 그 자체이다. 작가는 말한다. 내가 나를 참으면서 살기도 지치는데 왜 영화를 보면서까지 나보다 나을 게 없는 캐릭터를 견뎌야 하냐고. 살인마보다 그런 캐릭터들이 더 무섭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조용히 스며드는 이러한 사소한 싫음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싫어하는 리스트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서로의 밑바닥을 한 번은 봐야 해요.˝
page.48
한때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본모습이나 인성을 확인하겠다는 명목으로 상대의 한계를 시험하고 벼랑 끝으로 미는 압박 면접이 유행했고, 면접의 마지막 자리에 술자리를 끼워놓고 술을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류의 면접은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경계선을 침범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퍼지면서 점차 사라졌다. 대체 사람의 밑바닥을 왜 확인하려 드는 걸까? 작가는 인간관계나 연인 관계에서도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하고자 압박 면접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순진한 착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건 누군가를 신중하게 이해하는 대신 편리하게 오해하겠다는 태도에 가깝다고 말이다. 아, 정말이지 읽다 보면 필사하고 싶은 구절이 넘쳐난다. 명언이 따로 없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AI의 추천 알고리즘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왜 알고 싶지 않은 초면의 유저들 피드를 계속 보여주는 것이며, 눈치 없이 협찬사 광고를 내보내며 우리의 시간을 갉아먹는가? 카카오톡 친구추천 뜨는 것도 싫고, 지인들이 프사를 바꿀때마다 메인으로 뜨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싫어하는 점만 고스란히 카톡이 흉내내고 있는데 이 어설픈 흉내로 한때 카카오가 뭇매를 맞은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아직까지 개선을 안하다니! 암튼 세상은 온통 싫은 것으로 넘쳐나는데 슬프게도 나는 그 시스템에 닥치고 따라야 한다는 현실이 싫다.
회의적인 세상에서 회의적인 사람들과 복작거리며 살아가기. 물론 그중에는 회의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인간관계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나를 세상에 얼마만큼 드러낼 것인가. 선을 얼마나 지키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내가 여기서 싫다는 것을 드러내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까. 최소한 깍듯한 예의를 지키면서도 무례하지 않게 거절하기. 오늘도 서바이벌 눈치싸움을 벌이며 두뇌 풀가동은 계속된다. 싫음이라는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자각하게 만들어 삶의 원동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싫음이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작가가 그런 것처럼 언젠가는 슬픈 에피소드를 웃음으로 승화시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