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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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소설은 폭력이라는 무겁고 아픈 기억을 공유한 네 여성의 연대를 그려낸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깊은 몰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다 읽었을 때는 어둡고 침침한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 들었다. 소설은 자칫 자극적이거나 파편화되기 쉬운 ˝폭력의 피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물들의 서사를 탄탄하게 구축해 낸 점이 참 인상적이다. 네 명의 인물이 각자 가진 상처의 결이 다른데도, 그들이 서로 연결되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서사가 가진 힘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끔찍한 기억 안에 갇혀 있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며 관계의 성을 다시 쌓아 올리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는 신영이 상담 선생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고도 곡진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엄마의 죽음은 아빠의 폭력과 쌍둥이 오빠의 묵인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그 끔찍한 기억은 신영이 성인이 되고도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신영은 엄마의 죽음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들은 것에 영원히 갇혀 살고 싶지 않았으므로.


쌍둥이 오빠가 결혼한 후에 신영은 유일한 조카인 이소의 생일에만 집에 찾아가 케이크와 선물을 건넨다. 신영은 용기를 내어 쌍둥이 오빠에게 엄마의 죽음에 대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캐물으려 하지만 오빠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신영이 엄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마주하려 했을 때, 끝내 입을 다물어버린 쌍둥이 오빠의 모습은 야속하면서도 답답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오빠 또한 신영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비극의 기억 안에 갇힌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견뎌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동생에게 또 다른 잔인한 상처가 될까 봐, 혹은 그 비극을 입 밖으로 내어 다시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서 침묵이라는 방어기제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신영이 입원해 있는 병동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성희 또한 폭력의 피해자이다. 묵묵히 신영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사 같은 존재인 줄 알았으나, 그녀 역시 폭력이라는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음이 끝에서 밝혀진다. 구원자인 줄 알았던 성희의 남편은 매일 폭력을 휘둘렀고, 끝까지 성희를 지키려는 아빠의 그 위태로운 저항이 비극적이면서도 슬픈 울림을 준다. 여기에 신영의 조카인 이소와 이소의 엄마 이야기가 자연스레 얽히며 모녀의 아픈 기억이 드러난다.


각자의 아픔을 알아채고 스며드는 그 정서적 흐름이 워낙 섬세해서, 책을 덮고 나서도 네 사람의 여운이 마음에 꽤 오래 남았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의 얽힌 실타래가 어떻게 풀려갈지, 네 여성의 연대가 이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 나갈지 궁금해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네 여성의 위태롭고 아픈 기억은 단순히 허구의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의 현실과 거울처럼 마주 보게 한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위로와 구원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끔찍한 성 안에 갇혀 있던 이들이 서로를 향해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되었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서로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단단한 연대의 감각이라는 생각을 선명하게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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