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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동화 ㅣ 클래식 리이매진드
야코프 그림.빌헬름 그림 지음, 얀 르장드르 그림, 민지현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동화들을 아주 독특하고 현대적인 비주얼로 재해석한 판본으로서, 표지 디자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림의 비중과 스타일에 신경 썼다는 것이 확 느껴지는 그림 동화이다. 일반적인 소설책보다 판형이 크고 디자인이 화려해서 책장에 꽂아두거나 가끔 꺼내 보기에 좋은 아트북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는 사실 아이들을 위한 예쁜 이야기라기보다 훨씬 기괴하고, 잔혹하며, 원초적인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디즈니 스타일의 순화된 버전에 익숙하다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원작 특유의 서늘하고 기묘한 분위기가 꽤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고전적인 이야기를 현대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화풍으로 풀어내어 글을 읽는 재미만큼이나 그림을 뜯어보는 재미도 크다. 스무 가지 이야기 중에 처음 보는 이야기도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짧게 구성되어 있다 보니 뒷이야기가 궁금할 만큼 여운이 남는 작품도 있다. 더불어 익숙한 이야기를 낯선 시선으로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숨은 상징들을 찾아내며 읽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유독 마법에 걸린 왕자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왕자가 저주에 걸려 개구리나 백조 등으로 변신하는 소재가 특히 많은데, 이것은 왕자가 동물의 모습을 벗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정, 즉 인간이 시련을 겪으며 인격적으로 완성되는 단계를 상징하는 것일 테다. 또한, 겉모습이 흉측한 동물일 때조차 그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조건 없는 사랑과 내면의 가치를 시험받는 장치가 된다. 이런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왕자가 스스로 마법을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공주나 평범한 소녀 같은 외부 조력자가 나타나는데, 이는 고립된 자아가 타인과의 관계와 헌신을 통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서사적 구조를 보여준다.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읽은 [유리병 속의 정령]은 가난한 나무꾼의 아들이 주인공이다. 공부를 중단하고 아버지를 돕던 청년이 낡은 참나무 아래 유리병에서 정령을 깨운다는 설정부터가 흥미롭다. 정령이 자신을 꺼내준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할 때, 아들은 그 거대한 몸이 어떻게 이 작은 병에 들어갔는지 믿기지 않는다며 정령을 도발해 다시 병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주인공이 단순히 신분 상승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혜로 얻어낸 도구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고 훌륭한 의사가 된다는 결말은 일종의 성공 서사 같은 만족감을 준다. 또한, 유리병 속에서 일렁이며 쏟아져 나오는 기괴한 정령의 일러스트는 책 내용과 잘 어우러져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요술 식탁과 황금 당나귀, 자루 속의 몽둥이] 또한 재밌게 읽은 작품 중 하나이다. 보물을 빼앗긴 형제들을 대신해, 막내 형제가 지략을 써서 여관 주인을 혼내주는 이야기인데 자루 속의 몽둥이가 튀어나와 악인을 두들겨 패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먹고 살 걱정 없는 식탁과 마르지 않는 돈 주머니라는 설정은 서민들의 소박하고도 절실한 욕망을 가장 잘 투영하고 있다.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보다 더 현실적이면서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단순하고 짤막한 이야기 속에서도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단순히 판타지적인 설정을 넘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렬하다는 점이 지금까지도 그림 동화가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