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접한 세계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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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우리들의 실패​

김연수 작가는 손동하라는 인물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사건 뒤에 결국 상처받은 개인의 사소하고도 아픈 기억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엔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다. 손동하는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 개입 사건에 연루되어,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안 가결 등이 이루어지기까지 핵심적인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일본으로 도망친 손동하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는 다급하게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엮는다. 국내에서는 손동하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그를 책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는 죗값을 치르더라도 진실을 폭로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기자가 손동하를 인터뷰하면서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직접적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손동하의 어린 시절, 그의 부모님 이야기, 개발되기 전 서울 강남의 이미지라든가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만나게 된 정혜인이라는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언급된다.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사는 ˝서울에 남았더라면˝이라는 말은 손동하의 입장에서 결국 지금 가족이 겪는 가난과 고생이 실력 때문이 아니라 운이나 타이밍 때문이었다고 변명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버지가 후회만 하고 있을 때, 손동하는 그 ‘지긋지긋함‘을 동력 삼아 서울로 입성하고 권력의 정점까지 올라간다. 손동하가 보기에 아버지는 이미 실패한 인생이다. 하지만 손동하 본인 역시 권력의 핵심에서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파국을 맞이하며 또 다른 방식의 실패를 겪는다. 아버지가 과거를 후회하며 보낸 시간들이나, 손동하가 권력을 휘두르며 보낸 시간들이나 결국 본질적인 허무함은 같다는 점이 이 소설의 서늘한 점이 아닐까.

결정적 순간

손동하의 딜레마가 국가적 파국이라는 역사적 무게에 짓눌려 있다면,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에서는 또 다른 결의 현대적이면서 서구적인 윤리적 갈등이 느껴진다. 주인공 가스미의 고민은 예술의 자율성 대 사회적 윤리라는 아주 날카롭고 실제적인 칼날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인 가스미에게 사카키의 사진전은 경력의 정점이 될 기회지만, 그녀가 발견한 사진은 그 기회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시한폭탄이다. 사카키의 사진이 예술적으로 완벽하다 할지라도, 그 대상이 착취된 것이라면 그것을 예술로 여길 수 있을까? 가스미는 미학적 가치가 도덕적 결함을 덮을 수 있는가라는 고전적이고도 괴로운 질문에 직면한다. 가스미는 사진을 본 유일한 목격자로서 이를 묵인하고 성공을 쟁취할 것인가, 아니면 폭로하여 예술계를 뒤흔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크로스 인터뷰 : 전시되지 못한 것들의 자리

p.189 ˝간절히 원하던 미래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 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윤리적 딜레마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작품에서 이토록 곡진하게 표현하다니! 두 작가 모두에게 경외감이 느껴진다. 작품 해설 대신에 두 작가가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것 또한 마음에 든다. 작품 속 두 주인공 모두 성공을 눈앞에 두고 윤리적 위기를 맞이하지만, 그 태도와 시점은 사뭇 다르다. 김연수 작가의 작품은 이미 ‘실패‘라는 결론이 난 상태에서 시작하며, 손동하가 정치적 파국을 맞이하고 그 기원을 찾기 위해 유년 시절의 먼지 쌓인 기억들을 하나씩 들춰내는 방식이다. 반면 가스미의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카키의 사진을 발견한 그 ‘결정적 순간‘부터 시계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결국 두 소설 모두, 우리는 우리를 증명해주는 소중한 무언가(정치적 신념 혹은 예술적 심미안)가 사실은 아주 추악한 바탕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두 작가는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실패)를 견디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미래(결정적 순간) 앞에서 도박을 하겠습니까?˝ 참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다. ‘근접한 세계‘라는 제목을 생각했을 때, 단순히 시간이라는 것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미래의 어느 지점을 이미 결정짓고 있다는 감각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서 자유의지와 운명론에 대해서도 사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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