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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손원평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꽤 오랜 기간 동안 각 서점 베스트셀러 자리에 머물러 있던 [아몬드]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한동안 먹먹했었던 기분이 떠오른다. 필력이 정말 굉장하구나! 이런 소재로 이렇게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썼으니 역시 베스트셀러 작가는 다르구나 감탄했다.
[젊음의 나라]는 독특하게도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인 유나라는 간호사인 엘리야라는 룸메이트와 한 집에 산다. 동갑이긴 하지만 성격이나 가치관은 어쩐지 잘 맞지 않는다. 유나라의 가족은 단 한 명, 엄마뿐이다. 그러나 엄마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다. 새해를 맞아 엄마에게 안부 전화가 왔지만 둘 사이의 대화는 건조하다.
p28. [우리의 대화를 구성하는 건 말이 아니라 한숨과 정적이다. 그 안에서 엄마와 나는 각자의 비밀을 조용히 삼킨다.]
유나라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곧 우리나라가 겪을 초고령화 사회의 확대로 사회 제도와 복지 등이 노인들 중심으로 맞춰져 있는, 이른바 실버 산업이 우위를 독점하고 있는 세상이다. 유나라의 최종 목표는 시카모어 섬에 입도해서 엘피다 극단의 일원이 되는 것. 배우를 꿈꿔 왔던 유나라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공연을 하고 싶어 한다. 어느 날, 그녀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유카시엘 재단에서 일해도 좋다는 합격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유카시엘은 시카모어 섬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어 유카시엘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으면 시카모어 섬 채용에 유리하다.
시카모어 섬은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 현실인 메타버스 공간의 섬이다. 카밀리아라는 여자가 이곳을 쾌적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환상의 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최고급으로 제공되는 코랄빛 섬에서 남은 인생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 유나라는 카밀리아라는 여자의 정체가 궁금하다. 카밀리아라는 여자는 왠지 모르게 민아 이모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카밀리아는 민아 이모가 듣던 음악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취향까지 비슷하다. 유년 시절에 곁에서 자기를 보듬어주고 사랑해 주었던 옆집에 살던 민아 이모. 한때 누구보다 가깝게 지냈지만 아빠가 나타난 순간부터 점점 멀어져 버려 지금은 생사조차 모르는 민아 이모. 유나에게 있어서 어쩌면 엄마보다 더 애틋하고 친구 같은 사람은 민아 이모일지도 모른다.
유카시엘은 노인 수용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유나라는 유닛 안에서 노인을 상대로 상담 업무를 하면 된다. 최고 등급인 유닛 A부터 최저 등급인 유닛 F에 이르기까지 수용 시설이 세분화 되어 있다. 유나라가 처음 출근한 곳은 유닛 A. 돈 많고 격식 있는 노인들을 위한 수용 시설이지만, 어느 할머니와 상담을 하던 중에 할머니의 심기를 건드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유닛 A에서 쫓겨나게 된다. 유나라는 탄원서를 써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하지만 유카시엘은 차선책으로 그녀를 유닛 B에서 근무하게 한다.
오랜만에 시카모어 섬에 접속한 유나라는 우연히 엘피다 극단에 속해 있는 한 남자를 만나 대화를 하던 중에 고급 정보를 듣게 된다. 카밀리아는 시니어들을 깊게 이해하고 진심 어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위 유닛까지 경험하는 것이 좋다는 것. 일부러 하위 유닛까지 체험한 유나라는 우여곡절 끝에 시카모어 섬 입도 지원 서류에 통과해 면접 볼 기회까지 얻게 된다. 그리고 면접 자리에서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본성이 있다며 소신 발언을 한다.
p259.[사람은 세상을 향해 손을 뻗고 싶어한다는 사실입니다. 소중했던 기억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전혀 낯선 이에게까지도 사람들은 손 내미는 걸 멈추지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확인받으려고 말이죠.]
좀처럼 간극을 좁힐 수 없는 청년과 노인 사이의 거리. 청년은 노인 때문에 소득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며 AI와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얻는 것도 어렵다. 노인은 노인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꾸리며 살아왔지만 저출산으로 노인이 증가하자 사는 것 자체가 민폐로 느껴지고, 결국 안락사 같은 극단적인 것을 생각하는 노인이 많아진 것이다. 유나라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민아 이모를 다시 만나게 되고, 대화를 통해 엄마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동시에 노인에 대한 편견도 내려놓는다. 노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토록 그녀가 가고 싶어 했던,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시카모어 섬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한, 일개 환상의 섬일 뿐이라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소설로 엮은, 머지않은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아무리 돈 많은 재력가라도 곁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쓸쓸할까. 세상은 눈부신 속도로 최첨단 AI 시대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만큼 사람의 온기는 더욱 귀하고 소중해진다. 인간 소외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가 시급한 문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AI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본성과 마음으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