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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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성림원북스에서 나온 걸 읽었는데 이번에도 번역이 참 매끄럽고 깔끔해서 마음에 든다. 같은 작품이라도 번역이 매끄럽지 않거나 부자연스러우면 집중이 안 돼서 읽기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에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다. 주인공인 나와 선생님, 주인공의 가족, 선생님 친구였던 K와 선생님의 부인. 나는 작품 중에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이렇게 간결하고 심플한 인물 구성을 좋아한다.


주인공인 나는 학생 시절에 가마쿠라의 한 바닷가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가마쿠라에서 몇 마디 나눈 것을 계기로 나는 그 후에도 일부러 선생님댁을 찾아가며 친분을 쌓는다. 왜 주인공이 선생님과 친해지려는 마음을 먹은 것인지, 선생님에게 어떤 매력을 느낀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주인공의 마음을 굳이 추측해 보자면, 왜 우리도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성별을 떠나서 그냥 끌리는 사람. 아마도 주인공인 나는 그런 마음으로 선생님을 곁에 두고 그에 대해서 알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반면 선생님은 뭐랄까. 뭔가 항상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사람으로 염세적이면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일관된 감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주인공인 나는 선생님댁에 불쑥 찾아갔지만 선생님의 부인으로부터 선생님이 묘지에 갔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나는 선생님이 갔다는 묘지로 발길을 돌리게 되고, 그 묘지 부근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쩐지 선생님의 표정은 당황한 것 같으면서도 또 그늘이 져 있다. 또한 그것이 누구의 묘인지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과 나의 대화는 요령부득이다. 내가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선생님은 속시원히 대답을 들려 주지 않고 애매하게 말하거나 추상적으로 모호한 대답을 해서 나에게 사상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무슨 남녀관계에서 썸 타는 사이처럼, 선생님의 대답 하나로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한다. 과하게 표현하면, 주인공이 선생님에게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특히 사상적으로 점점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으로 간다. 신장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언제 몸 져 쓰러질지도 모르고, 어머니 혼자 병수발을 감수하게 할 수는 없어 선생님 내외분께 인사를 드리고 고향으로 간 것이다. 꽤 오랫동안 고향에서 아버지 병간호를 하는 와중에도 나는 선생님에게 전보를 보내기도 하고, 답장을 기다리면서 아버지의 병환과 선생님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며칠 후에 형으로부터 건네받은 두툼한 종이 속의 글씨들 중 한 문장을 읽고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는다.


p.163 ˝그때 내가 알고 싶은건 오직 선생님의 안부뿐이었다. 선생님의 과거, 전에 내게 얘기해주겠노라 약속했던 어슴푸레한 과거, 그런 건 이제 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목차에도 나와 있듯이 그 전보는 짐작대로 선생님의 유서이다. 아버지의 병이 위중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급하게 전차를 타러 가고 전차 안에서 그 유서를 읽는다. 믿기지 않는 선생님의 죽음.

그렇게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던 선생님의 과거는 그 두툼한 종이에 아주 자세하게 쓰여 있다. 선생님이 왜 인간을 경멸하게 되었고 끝내 염세주의에 빠졌는지에 대한 작은 아버지 이야기부터 하숙집에서 만난 아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친구 K의 이야기까지 상세하게. 선생님은 K를 극한으로 몰고 간 것은 자신이라고 탓하며 자책과 죄책감 끝에 생을 마무리 한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고 경멸했던, 탐욕스러운 작은 아버지. 그런 작은 아버지를 어느새 닮아버린 자신에게 소름이 끼친 것이겠지.



나는 선생님의 과거를 알고 어땠을까. 생각지 못한 선생님의 죽음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선생님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은 풀렸을지 모르나 그가 선생님을 워낙 잘 따르고 좋아했기에 감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조차 없다. 선생님과 나의 관계는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각자의 내면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보일 듯 말 듯 애매하고 불투명하기만 하다. 인간의 마음은 강철같이 단단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지탱하고 있던 끈이 끊어졌을 때 그 마음이 나약해져서 선생님처럼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것일까. 자의적으로 고독을 택한 선생님에게 살아 있는 나날들은 지옥이었음이 틀림없다. 내 마음이지만 나조차 알 수 없는 마음들로 빚어내는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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