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생 -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
앤드루 H. 밀러 지음, 방진이 옮김 / 지식의편집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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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대개 그 대상은 내가 평소에 존경하거나 부러워하는 인물이다. 내가 그토록 선망하던 사람이 되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인물의 자아가 내가 아니라면? 내 자아는 사라지고 없는데 나는 정말 그 인물의 삶을 살고 싶은가? 애초에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

수많은 의문을 나에게 숙제로 안겨준 사색돋는 책을 만났다. 책의 저자는 영문학을 전공한 평론가이자 작가인 앤드루 H.밀러라는 사람이다. 책에는 소설이나 시구,영화 속 대사나 줄거리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인물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때로는 철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접근도 가능하다. 인간의 다양한 삶은 복잡한 것 같지만 결론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의 인생을 경험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책은 거들떠도 안봤을 텐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이러한 책이 내면의 힘을 길러주고 자아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삶의 방식이 다양해졌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기 때문에 더 잘 살고 싶고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자 욕구이다. 진로나 직업, 결혼 등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더 다양해졌고 그만큼 선택에 따른 책임도 따른다.

P.160 "모든 길에서 분기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가능성들의 그물이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우리가 각각의 삶의 경로를 이해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만약에 그때 이러지 말고 저랬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선택과 대안들 속에서 한 가지 길을 선택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삶은 인간의 숙명인 걸까. 선택에는 운과 변수도 작용하겠지만 결국 어떤 선택을 하든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자신을 다독일 수밖에.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요인이 작용하여 소위 있는 자들에게만 모든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느냐며 언제까지 주변 탓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P.93"소설을 읽는 행위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애착을 탐색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소설 읽기에 충실하다는 것은 우리 자신으로 있기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의 알레고리가 된다."


인간의 욕망은 곧 애착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토록 삶에 집착하지 못할 것이다. 애착의 대상이 본인이 아니라 타인이라면 그건 흉측한 집착이 되어 영혼을 갉아먹는 괴물의 모습으로 구현될 테니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나는 왜 매일 책을 읽고 있는가.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공감을 얻는 것 이상으로 영혼을 울리는 작가의 한 마디 문장에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그 무너지는 순간을 위해 책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건 아니지만 책 속에서 다시 한번 내 신념을 확인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구절에 현타가 왔을 때의 쾌감이란!! 그래서 나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책을 읽는 이유는 또 뭐가 있을까..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나는 그런대로 내 삶을 잘 살아왔다고 증명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소설 속 인물과 나를 비교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잣대에 나를 투영시켜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지 않냐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P.86"기분이 살짝만 가라앉아도 내가 상상한 삶들이 지금 이 삶을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다. 살지 않은 삶이 내 세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대신 내 세계를 갉아먹는다."

분명, 가지 않은 길은 궁금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모든 선택과 길에 대해서 그로 인해 초래되는 모든 결과까지 죽을때까지 몇 번이나 상상하고 후회하고 회상할 것이다. 달콤하고 완벽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 이상, 어느 누구의 생이라도 부럽지가 않다. 삶의 이면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으니까.

책의 소재가 참 신박하다. 가지 않은 길과 경험해보지 않은 삶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풀어낸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우린 그저 지금 있고 싶은 곳에, 머무르고 싶은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닐까. 이룰 수 없는 것을 욕망하지 말고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지 말고.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싶다.

삶을 가볍게 가볍게. 과거는 훌훌 털어버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향해 나아가자. 살아있는 한 삶은 어떻게든 계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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