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 한 권으로 읽는 오리지널 명작 에디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4인 4색의 사랑과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고전문학, 안나 카레니나. 이 책은 독서를 하다가 여러 책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에 책을 정독하기 전에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는 있었다. 연애소설이라 해야 할지 고전 철학소설이라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인간의 전반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일반적인 고전 철학소설이라 명명하기로 한다.

P.44 모든 것은 그녀가 있음으로써 빛나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주위의 모든 것을 밝게 비추는 빛이었다.

레빈이라는 인물은 조금은 고리타분하면서 나름의 철칙을 고수하는,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청년이다. 레빈이 키티를 좋아하는 마음은 순결하고도 어쩌면 숭고하기도 한, 정신적 사랑이 짙은 성격의 사랑이다. 레빈의 사랑을 받는 키티가 부럽기도 하면서 한 남자가 여자를 저렇게 지고지순하게 사랑할 수 있나 싶기도하다. 숙맥이면서 조금은 답답한 성격의 소유자 레빈은 4인 중에서도 지극히 정상적인 인물이지 싶다.

P.47 지금 고백을 할까? 하지만 지금 말하기는 두렵다.
난 지금 행복하니까.

동시에 레빈은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서 번뇌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사색을 좋아하는 청년이다. 그래서 키티에게 다가갈 때도 몇 번이나 고민하고 망설인다. 그만큼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다.

소설 초반부는 레빈의 친구이자 안나의 오빠 스테판이 외도한 것을 들켜, 와이프인 돌리가 이혼할 결심을 하자 안나가 돌리를 설득하려 열차를 타고 스테판의 집으로 가는 내용이다. 안나가 그날 열차를 타고 스테판의 집으로 오지 않았다면 비극적인 결말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마는 걸까? 안나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겪게 되는 열차 사고는 그때는 아무 일도 아닌 하나의 사건으로 지나가고 말지만 그 일이 복선이 되고 장차 안나에게는 치명적인 한 획을 긋는 일이 된다.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고 브론스키가 자기에게 청혼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키티는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빠져 자신을 등한시한 것에 충격을 받고 병까지 얻는다. 유부녀에 아들까지 있었던 안나는 걷잡을 수없이 브론스키에게 빠져들고 결국 자신의 외도를 남편에게 고백한다. 안나의 남편은 남의 이목과 겉치레에 신경 쓰는 이중적인 사람이지만 안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가정을 깨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다. 사실, 안나가 고백하기 전부터 그녀와 브론스키의 관계를 눈치챘음에도 말이다.

P.250 가정이라는 것은 변덕이나 욕심 아니, 부부 어느 쪽의 죄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없는 것이오.

안나는 결국 브론스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브론스키는 안나가 남편을 버리고 자기에게 오도록 종용한다. 하지만 정식으로 안나와 결혼한 것도 아니도 사회적 지위와 명예심 역시 높았던 브론스키는 갈등하고 또 갈등한다. 어머니와 집안 식구들을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 말이다.

P.262 남편을 버리라고 한 말은 나와 함께 살자는 의미가 된다. 나는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은 돈도 없는데 어디로 그녀를 데리고 간단 말인가?

등장인물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독백 형식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각 인물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면서 같이 갈등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을 거치는 과정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흔한 소재임과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사랑이 식는 경험을 하며, 사랑에 배신 당하고 사랑을 부정하기도 한다.

P.428 이제 그의 안나에 대한 애정 가운데에는 조금도 신비스런 감동이 없었기 때문에 그 미모는 전보다도 더욱 강하게 그를 끌어당기면서도 동시에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랑이라는 감정. 손에 넣고 싶어 안달이 나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손에 넣고 나면 이내 싫증을 내버리는 인간의 변덕스러운 감정을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해 꼬집고 있는 걸까. 점차 비극으로 향하는 안나, 브로스키와 달리 정신적으로 고결한 사랑을 이룩한 레빈,키티의 결혼 생활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안나 카레리나는 [보바리부인]이나 [인생의 베일]같은 작품과도 어떤 면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유부녀의 외도가 시발점이 되어 비극으로 치닫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 이면에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사랑은 존재하는가? 삶에서 사랑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궁극적인 주제가 숨겨져 있어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안나는 끝내 브론스키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다 못해 파멸의 길을 걷는다. 질투의 화신 저리 갈 정도로 이해 안 가는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브론스키를 원망했고 자신이 죽으면 브론스키가 후회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과 함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안나를 선택한 브론스키였는데 무엇이 그토록 안나를 불안하게 만든 것일까. 안나는 브론스키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애가 강한 어린아이가 떼를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들과 딸을 남겨둔 채 극단적 선택을 한, 끝까지 이기적이었던 안나는 결국 누구에게 벌을 준 것이고 누구에게 복수한 것일까?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그녀의 사랑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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