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미술관 - 잠들기 전 이불 속 설레는 미술관 산책
이원율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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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나 각종 전시회에 다닐 수 없는 지금, 명화에 관한 미술책이 유독 많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내가 끌렸던 책은 하룻밤 미술관. 그림이나 화가에 관한 관련 지식이 없어도 그림을 보며 술술 책장을 넘길 수 있는 부담 없는 미술책이다. 이 책은 브런치북 8회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이라면, 그림이나 화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에피소드와 함께 의외의 부분을 짚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으레 그렇겠지 생각했던 부분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명화화 화가에 얽힌 생생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래서 책을 완독하고 나서, 그림에 얽힌 사연들을 알고 나니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서양화가들 중에는 유독 괴짜가 많은데
그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최북 화가의 스토리였다.
서양에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자신의 눈을 찌른 광인, 최북이 있다. 18세기에 최북은 고위 관리에게 그림을 부탁받는다. 하지만 고위관리가 그림을 주문하면서 너무 바라는 게 많아서 최북은 송곳을 꺼내 자기 눈을 찌르고 만다. 금강산에서 뛰어내렸지만 나뭇가지에 걸려 목숨을 건졌다는 설도 있다. 당대 최정상 화가였지만 중인으로 살아야 하는 신분을 비하하고 양반 사회에 경멸을 느끼기도 했던 최북은 타협을 모르는 다소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도화서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도 거절하고 자유의 몸으로 경치 좋은 곳을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지만 결국 객사하고 만다.

최북의 원래 이름은 최식. 그는 서른 살을 전후로 스스로 이름을 고쳐 최북이라고 칭했다. 삭풍이 밀려 오는 방향, 자신의 고독했던 생을 돌이켜보고 맞춤형 이름을 지른 것인데 참으로 씁쓸하지 않은가.

이렇게 비운의 화가가 많았던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즐거운 기분이 느껴지는 작품 뒤에는 예술가의 남모르는 눈물과 비탄이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그냥 탄생하는 명화는 없다지만 알고 보니 고독하고 쓸쓸한 화가들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름다운 명화 속 뒷이야기는 애잔하고 처연하다.

우리나라에서 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의 에피소드도 너무 슬프다. 전쟁 탓에 사랑하는 아내,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그는 비극적인 일을 재료 삼아 필생의 걸작을 남긴다. 그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이중섭은 소 그림을 말년에 그렸다고 한다. 싸우는 소들의 그림에서 그의 분노와 좌절, 체념이 느껴진다.

모네가 말년에 백내장을 앓고 그렸다던 수련 꽃과 지베르니의 정원 그림은 정말 아름답다. 이렇게 조그맣게 책에 실려 있는 것만 봐도 아름다운데 실제로 그림을 감상한다면 어떨지.. 번져 보이는 기법은 일부러 그렇게 그린 줄로만 알았는데 백내장이라는 반전이 있었다니!! 모네는 사랑하는 아내를 그림으로도 남긴 사랑꾼이다. 그는 아내가 임종을 맞이할 때도 자신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빛의 풍경을 그린다.

윌리엄 터너의 작품인 <노예선>은 실로 끔찍하다. 그림의 기반이 된 것은 1783년 노예를 싣고 항해를 떠난 영국선의 실화라고 한다. 배에 노예들을 싣고 항해를 떠났지만 선원들이 노예들을 벌레 취급하면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그들은 결국 노예들을 바닷속에 던져 물고기와 새의 밥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화폭으로 담은 그림을 보니 소름이 끼쳤고 인간의 악마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미술 작품을 받고 위로를 얻는 것처럼, 화가들 역시 생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화폭에 담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창작이라는 모든 예술은 숭고하다.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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