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로 잘 알려진 백영옥 작가의 산문집이 개정을 거쳐 거의 10년만에 재출간 되었다. 10년 전에 쓰인 책이라 그런지 작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언급한 어느 도시의 지명이라든가 혹은 드라마나 영화, 노래의 제목 등이 조금은 생경했다. 내가 작가와 같은 연령대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개정을 거치면서 10년 전에는 없던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단어를 타이핑했을 것이다.본인의 과거 경험과 추억을 기반으로 쓴 이야기가 많은데 공감 가는 부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삽화와 앙증맞은 고양이 그림이 맘에 들었고 "가장 사랑했던 것들이 가장 먼저 배반한다"라는 소제목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는 내 뇌리에 쓸쓸하게 박혔다. 작가의 글은 전체적으로 무겁고 중압감이 느껴진다. 작가가 10년 전에 쓴 글은 본인이 어른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쓴 글일 텐데 이미 어른이 쓴 것처럼 꽤 진지하기 때문이다.작가가 되기까지 험난했던 과정과 고생스러웠던 경험을 책에서 말하고 있는데, 만약 작가를 꿈꾸거나 책과 관련된 직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는 한때 작은 카페나 음식점을 경영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여행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는 일반의 평범한 여성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은 뭔가 다를 것만 같고 반전이 있을 것 같지만 작가의 소소한 삶과 생각들을 엿보고 있노라니 인간적인 냄새가 나서 좋다.중간중간 나오는 시들이 참 좋다. 책에 나오는 시구들은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는 한편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고전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나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 또 고전 아니겠는가. 우리는 고전에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도 있고 현대 소설과는 색다른 매력이 있기에 세대를 거쳐 사랑받는 것일 테다. 그래서 나도 작가가 추천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싶어졌다. 줄거리를 보아하니 보바리 부인이 연상되지만 책은 3권까지 나와있고 영화도 있으니 기회가 되면 책도 읽고 영화도 봐야겠다."마흔이 되면 나만의 방을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버지니아 울프가 소설에서 언급했던 제2의 여자 셰익스피어가 나올 수 있는 두 가지 전제조건. 자기만의 방과 고정수입!! 저것은 작가가 아니더라도 현대 여성들의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자기만의 방을 찾았을까. 분명 자기만의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길을 걸으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 것 같다."이제야 알 것 같다. 지금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삶의 어느 때는 너무 커 보이기도 한다는 걸."마음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이, 집착할 정도로 소중했던 물건이 지금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느낄 때는 허무하기 그지없다. 작가의 저 뼈 있는 말이 콕콕 마음을 찌르면서 공감이 간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포기하는 일도 많아진다. 사람에게도, 물건에게도 연연해 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