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부터 감동적인 이야기가 쓰여 있다.작가에게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와서 한창 힘들었던 시기에, 친한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려고 만났는데 작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후배가 딸아이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쥐여주었다고 한다. 작가는 아이한테 왜 이리 돈을 많이 주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후배는 언니도 자기에게 그런 적이 있지 않았냐며 서둘러 사라진다. 알고 보니 작가는 20년 전, 우연히 떠난 해외여행지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던 후배를 조우했는데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찔러 주었던 것. 그 용돈이 세월을 돌고 돌아 작가의 딸아이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이 미담 같은 이야기를 통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깨달음이 왔다. 타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도우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더라도, 행여나 그것이 돈이나 물질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고마워하는 마음이 전해져온다면 충분히 보상받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사람을 통해 기운을 얻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책에는 작가의 따뜻하고도 흐뭇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어 아직 세상은 살아갈 만하구나 느낀다.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다는 작가는 하루의 일 중 기억에 남는 것이나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생각과 감정을 기록했다고 한다. 나도 일기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쓰고 있는데, 하루의 일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과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인듯싶다. 남한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쓰거나 화가 나서 분노에 가득 찼을 때에도 일기를 쓰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차분해진다. 숱하게 고민하고 상처받았던 본인의 경험을 글로 쓰면서 상처를 회복함과 동시에 타인의 고민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방법을 깨우쳤다는 작가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작가의 지속적인 글쓰기 덕분에 이 에세이가 무사히 세상에 나온 것이겠지.P.104"내 상처를 극복한 기억과 극복하면서 생긴 힘은 나만 살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른 고민과 상처를 지닌 누군가에게로 가서 닿는다."작가에게는 내가 본 받을 점이 많아 보인다. 그녀는 새벽 공기와 함께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또한, 아파트 계단 오르내리기를 통해 운동을 하고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는 30년 동안 함께한 믹스커피를 끊을 것이라고 한다.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다.작가는 이러한 습관을 들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흔들림을 겪었다고 하니 역시 모든 일은 노력과 의지가 동반되어야 하나보다.P.81"어떠한 것에 중독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 제품 혹은 대상이 사라졌을 때 우리 자신의 삶이 혼란 속으로 빠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은 삶에서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만 한다."작가는 친한 후배로부터 고충을 듣는다. 후배가 이사 간 아파트 윗집과 친해져서 얼마간은 잘 지냈다고 한다. 윗집을 비롯한 다른 엄마들 무리랑도 어울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점점 윗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거나 잦은 연락으로 부담을 느낀 후배가 윗집을 피하는 기색을 보이니 윗집에서도 이를 눈치채고 일부러 층간 소음을 내며 후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분노 유발 이야기. 결국 후배는 다시 이사 갈 마음을 먹는다. 너무 씁쓸한 이야기 아닌가. 이웃 때문에 집에서조차 내 시간과 공간을 방해받다니.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 두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일화이다. 나 역시 주변에 투 머치 토커나 오지라퍼들이 있으면 먼저 손절하는 스타일인데 이 일화는 남일 같지 않다.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나와 맞지 않고 왠지 자꾸만 오해가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저 없이 돌아서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듯이 나 또한 세상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주위에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그 사람들에게 노력하면 그뿐이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면서 그녀가 느끼는 고민과 슬픔에 나도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면서 내 삶을 더 사랑해야겠단 생각을 했다.#내가유난히좋아지는어떤날이있다 #김리하 #에세이#시소출판사 #si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