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토록 평범하게 살 줄이야
서지은 지음 / 혜화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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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느낌의 에세이는 아니다. 작가가 고스란히 경험하고 느낀 글들이 조각처럼 널려 있는데 아프고 외롭고 고독하다. 그런데 아프고 고독하게 느껴지는 글들이 나에게도 사무치게 와닿고 씁쓸함을 주어 공감을 받고 위로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끊을 수 없나 보다. 하루하루,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하기에 밥을 굶을 수 없는 것처럼 공감과 위로를 먹고살아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외로움은 고약한 구석이 있다. 누구나 외로움 앞에 속수무책이 되고 세상 혼자된 기분에 슬퍼진다. 인간이기 때문에 외롭다는 말은 진부한 말이지만 일단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마음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고 지진이 난다. 외로움이 가장 많이 묻어나면서 담담하게 표현한 에피소드를 꼽자면, 작가가 홀로 떠났던 여행지의 숙소에서 일부러 시계를 두고 온 내용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준 시계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을 그곳에 묻혀두고, 다 잊고 오고 싶었나 보다. 과거의 지난 일은 모두 다 잊고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최선의 태도일 것이다.

P.138 "잘 사는 일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 말고 그저 고요히 살자고 결심한다. 가끔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벼웁게 묵례를 나누며, 참 다행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P.194 "뭐든 한 방에 바꾸려는 건 내 욕심이며 스스로를 완벽하게 변모시키려 하는 건 불가능하다. 조곤조곤 실천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야 비로소 바뀐다."

아마 자기 계발서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면 다 알고 있는 흔한 말이라며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글을 읽을수록 마흔 중반이라는 작가의 나이가 체감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이게 비단 나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의 성향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불행하고 힘든 일을 겪으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작가의 긍정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글들도 많아서 충분히 좋다.


작가는 살아 있는 일에 오만 정이 떨어졌을 때 sns 계정에 곱지 않은 언어를 쓰며 응어리를 풀어 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악담을 하는 밉고 싫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당했던 것처럼 욕을 퍼붓고 복수하고 싶었지만, 그 응징을 위해 본인이 끌어올 어두운 에너지가 무서웠다고 한다. 요즘은 sns 상에서 타인에게 공격을 가하고 비난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작가는 말한다. 타인에게 악담을 하고 고통을 가하는 것은 극복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나 역시 경험상으로, 복수한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마냥 좋지 않은 걸 알고 있다.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나 자신이 치졸하게 느껴진다. 진정한 복수는, 그 어두운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돌려 나 자신이 더 좋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용서와 이해. 이 두 가지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의 대학시절, 일본 유학 시절, 연애 시절,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일부라고는 해도 한 사람의 일대기를 관통한 역사를 마주한 느낌이다. 거창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책 한 권에 담아낼 수는 없지만 오늘도 나는 책 한 권 속에서 인생을 배워 나간다. 나보다 인생 선배인 그녀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평범한 인생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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