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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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남자를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
"후미라고 불러. 사에키 후미." p.34

아홉 살 소녀 사라사와 열아홉 살 대학생 사에키 후미는 공원 벤치에서 처음 만난다. 공원 벤치에서만 몇 번 봤을 뿐인데 어느 비오는 날, 우리집에 가지 않겠냐는 후미의 제안에 사라사는 이끌리듯 그의 집으로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후미의 집에서 자유 분방하고 평화로운 날들을 이어나가지만 세상은 이를 불온한 사건으로 낙인찍고 결국 사라사는 보육시설, 후미는 감옥으로 가게 된다.
세상은 그들을 아동 성범죄자라는 가해자와 아동 성애자에게 유괴된 피해자라고 일축해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후, 성인이 된 사라사는 우연히 방문한 카페에서 후미와 재회하게 된다. 후미는 카페를 경영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듯 하다. 후미에게 피해를 끼칠까바 섣불리 후미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라사.

사라사에게 있어서 후미는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키다리아저씨처럼 손을 내밀어준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에게서도 버림받고 이모네 집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 죽고 싶었던 그 때. 그녀의 유일한 구원은 후미였다. 사라사는 후미가 행복하기만을 쭉 바라왔다. 자신 때문에 더 이상 후미가 불행해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내가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고, 그래서 그토록 손을 꼭 쥐었던 아홉 살의 나와 열아홉살의 후미는 어디에도 없다. 기억은 공유할 상대가 있을 때에 비로소 강화된다." p.149

하지만 사라사의 남친인 료는 후미의 등장을 탐탁치 않게 여겨 후미의 과거를 캐고 다니고 사라사에게는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하며 점점 그녀에게 집착한다. 이번에도 후미의 도움을 받으며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아가는 사라사.

후미가 왜 반항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숨어서 죄인처럼 살았어야만 했는지, 그가 정말 소아성애자인건지는 소설 말미에 드러난다.
사라사와 후미. 이들의 관계는 마치 소설 1Q84에서의 덴고와 아오마메같은 영혼의 단짝같다. 위태위태하고 불안한 나날 속에서 결국은 서로의 손을 놓지 못했던 두 사람. 이들은 떨어져 지내왔던 15년동안 서로를 꾸준히 생각해 왔다.

이들은 흔히 연인들이 느끼는 사랑같은 감정으로 묶여있던 것이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시간과 세월.

서로에게 아픈 과거나 상처를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도 서로의 아픔을 느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관계. 그것은 동정도 아니고 연민도 아닌, 그냥 같이 있는것만으로도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세상은 인정하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 사라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유년시절 부모님과의 행복했던 추억 한줌과 후미와 지내면서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그리고 후미 역시 내내 사라사를 원하고 그리워했다.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같이 있는것만으로도 위로와 치유가 되었던 그들.

"밤의 영역에는 아직도 어렴풋한 흰 달이 걸려 있다. 곧 사라지겠네. 마치 나 자신처럼 여겨졌다. 목이 잘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는 가만히 옅은 달을 올려다본다." p.150

이제는 두 사람이 흘러가는대로 유랑하지 않고 한 곳에 오래 정착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만날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는 걸까.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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