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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림과 서양명화 - 같은 시대 다른 예술
윤철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명화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을 좋아한다. 명화 자체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그림에 얽힌 배경 지식이나 일화에 관한 이야기가 재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무렵에 조선에서는 누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에 대한 필자의 궁금증에서 시작된다. 필자는 우리나라와 서양 그림의 대조표를 만들어 시기별로 비교,대조하고 그 안에서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짚어 나간다. 그림뿐만 아니라 당대 화가들의 생애와 화풍 기법까지 기재했는데 한 마디로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이르는 동, 서양의 방대한 작품을 시기별로 집대성한 것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쓴 책은 처음 접해봐서 신선했다.
나 역시 어떤 서양 명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게 몇 년도 어느 시대에 작품이며 우리나라는 이 때 무슨 그림이 유행하고 있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연도별 대조표가 수록되어 있는 이런 책 하나 정도 있으면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사실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우리나라 그림은 서양 그림에 비해 칙칙하다고 해야하나, 이렇다 할 뚜렷한 색감조차 없다. 이때의 서양 그림은 꽤 컬러풀하고 인물 한 명 한명이 뚜렷한데 조선시대 그림은 인물이 작게 그려져 있고 수묵기법이 자주 쓰인다. 1629년 이기룡은 <남지기로회도>를 제작할 무렵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는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새로운 현상이다. 조선 중기까지 제작된 수많은 계회도 중 화가가 자기 이름을 밝힌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이 그려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적 개성이 부각된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림 속 장소가 어느 곳인지 알아볼 수 있게 그린 사례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이기룡은 기록화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풍경을 담아냈다.
17세기 중반, 굵은 먹선을 몇 번 그어 순식간에 그린 달마도는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도화서 화원이 대놓고 그릴 수 없었다. 반면 일본에선 달마도가 예배용이나 감상용으로 제작되었다. 이 때 유럽 미술의 중심은 서서히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파리로 옮겨가고 있었고 바로크 화풍이 저물어가면서 푸생의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1780년에 중국에 간 박지원은 낙타를 보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 무렵 낙타는 북경에 가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는데 박지원보다 4년 앞서 북경에 간 김광국이 북경을 다녀온 후 한양에서 낙타 그림 한 점을 손에 넣었다. 1795년 북경에 다녀온 뒤 이인문은 낙타를 그렸다. 서양에서는 이 때 코뿔소가 화제가 되었다. 인도왕이 포르투칼 제독에게 예물로 보낸 코뿔소를 국왕에 헌상하면서 유럽으로 왔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낙타나 코뿔소 그림 한 점에도 이토록 재밌는 일화가 숨겨져 있다니.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꽃피웠던 예술작품은 이처럼 사실의 재현에서 시작되었다. 동서양의 그림을 통해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사상이나 분위기를 아는 것과 동시에 화가의 태생 및 회화 정신까지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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