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의 코키토, 폴 비릴리오의 사상에 대하여

 

 

 

 

 

오영진

 

 

 

1. 속도에의 매혹과 두려움

 

비릴리오가『속도와 정치』에서 “이 세계의 법칙”이라고 묘사했던 “정지는 죽음이다”라는 명제가 매혹적인 이유는 여전히 모더니즘의 명령(a brand of the new)이 유효한 우리의 시대를 정확하게 꼬집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움을 둘러싼 경쟁이란 미래를 남들보다 빨리 당겨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것은 보다 빠른 속도에의 추구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궁극적으로 권력을 획득한다. 때문에『속도와 정치』에서 비릴리오는 계급성을 속도의 착취와 독점의 문제로 사유한다.

그런데 비록 속도가 전장에서는 습격이나 침투작전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는 생산과 소비의 이념에 복무하곤 있지만, 속도는 그 밑바탕에 ‘자유’라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기에 본래 비교적 선한 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21년 미래파의 수장, 마리네티는 장갑차를 이렇게 은유화했다. “초인은 [장기나 조직을] 이식 받은 자, 추진력을 지녔기에 대담해질 수밖에 없는 비인간, 자신의 역동적 행위로 시간과 공간을 절멸시킬 수 있는 기계화된 육신의 어마어마한 힘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동물적 신체”이다.

마리네티가 장갑차에 매혹을 느낀 이유는 그것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대담함을 실제로 가능케 해주는 인공보철물이기 때문이다. 병참학적 관점에서 장갑차가 보여주는 혁명성은 이전의 무기들과 다르게 어디로든 습격․침투할 수 있는 무자비한 공격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속도가 절대적인 차원이 아니라 상대적인 차원의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의 견고함을 부수는 힘, 대지의 차원에서 발휘되는 중력을 탈출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장갑차의 느린 속도는 그래서 가장 빠른 속도에 비견된다. 마찬가지로 로또나 삼연승 복권 같은 숫자 도박은 단번에 균형을 깨뜨리는 소득과 사회 법칙을 거역하는 가치를 가진다. 그것은 소득의 법칙이 가진 힘을 단번에 차고 나아가는 속도를 보여준다.

인간은 과거 몇 차례의 운송혁명을 통해 이제 초인적 신체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의 속도는 자유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유의 이름. 그 자체가 된다. 마리네티가 “격정적인 숨을 뿜어내는 경주용 자동차가 사모트라케 승리의 여신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을 때, 그는 속도를 물신화하여 종교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이 무능한 육체를 활성화시켜준 인공보철물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고로, 속도의 문제로만 보았을 때, 포스트모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세계는 모던의 속도가 가속화된 초모던(hyper mordern)의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분기마다 갱신해서 발표되는 집적회로의 처리 속도,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새로운 무선전송기술이 이러한 국면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공보철물에 의한 무능한 육체의 활성화는 속도로부터 우리 자신을 소외시킨다. 남아 있는 것은 기계화된 몸의 속도. 더 이상 나의 속도가 아닌 속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조종사들에게 시계비행은 점점 사라지고, 전산화된 비행만이 남아 있다. 숫자로 표현된 비행은 정확하지만 조종사 자신에게 하늘을 날고 있다는 낭만을 앗아가 버렸다. 그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자유를 향한 인공보철물의 도움이 역설적으로 자유를 앗아가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차가 발명되던 순간부터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해왔던 것이다. “기차는 우리를 여행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송되는 소포로 만든다.”

또한, 병참학적인 측면에서 속도의 두려움을 논해볼 수도 있겠다. “오늘날에는 습격이 초음속의 속도로 이뤄져 경계 경보를 울리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됐기 때문에 탐지, 확인, 응수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기습 공격을 받을 경우, 최고 권력자는 요격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방어 체계의 가장 낮은 단계를 서둘러 승인하는 식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신의 권위를 포기해야 할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전쟁무기의 가공할 습격속도는 작전 지휘권자의 판단을 자동경보와 방어시스템에 의지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도에 대한 두려움은 그에 대한 매혹과 쉽게 구분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비릴리오는 <극의 관성 inertie polqire>란 개념을 통해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에 여행, 움직임 자체가 필요가 없어지는 광속도 사회를 예고한다. 이 개념에서 핵심은 절대적인 속도는 움직임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으려는 성격(관성)을 갖게 된다는 것. 즉 운동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워드 휴즈같은 속도중독자들은 강렬한 빛의 속도를 위해서 기꺼이 몸의 속도를 희생했다. 절대적 속도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그저 무관심에 도달하게 만든다. 초음속의 운송수단과 실시간 네트워크 기술이 동물적 신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극의 관성을 현실화 시키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절대적인 속도에 매혹을 느끼고 있거나 동의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쯤에서 속도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식의 인본주의주의적 비판은 큰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사실 ‘속도’에 대한 이 같은 해석은 매체(비릴리오가 자주 쓰는 용어로는 인공보철물)이론을 다루는 일련의 철학자들. 맥루한이나 플루서 등의 통찰에서도 충분히 발견되는 것이라 하겠다. 비릴리오 역시 지각에 대한 매체의 영향력을 탐구하는 현상학적 매체론의 경향에 놓여있다. 그는 테크놀로지가 어떤 점에서 “인간과 그 동물적 신체의 특성까지도 뒤집게 되는지를 이해”시키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진정한 개성은 그가 속도를 정치와 결부시켜 다룰 때이다. 그것은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이때 정치는 포괄적인 차원의 전쟁을 의미한다.

 

2. 혁명의 속도와 파시즘의 속도

 

비릴리오는 도시에서의 행진, 도보 시위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가두 행진은 권력과의 전투를 앞둔 노동자들이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준비이다.”라고 말한다. 혁명 대중들은 거리의 질주를 통해 자신의 동적 활력을 예비하고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자에 의해 악용되기도 하는데, 그들은 “농촌이나 도시의 근교에서 몰려온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에게도 파리의 심장부를 관통”하도록 허락함으로써 “파리의 골목과 화려한 대로를 자신들의 발 아래 뒀다는 단순한 사실”을 각인시킴으로써 그 정치적 저항을 줄였던 것이다.

그러나 비릴리오는 “혁명은 운동이지만, 운동이 혁명인 것은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이미 수 많은 역사에서 혁명의 속도가 파시즘의 속도로 신속히 전이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 후 부르주아지 혁명가들은 움직이는 대중들을 멀리 떼어 놓는데 열중했다. 그들은 새롭게 등장할 혁명 국가는 이 도시나 이 거리가 아니라 저 멀리 저 너머에, 보편적이고 무한한 습격 안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후 공화국이 ‘신병들’에게 영토라며 제공해줬던 것은 유럽의 도로였다. 인민의 군대는 ‘행진 중의 국가’에 소속된 채 ‘교통로의 영토’로 보내졌다. ‘오고 갈 자유의 획득’은 이내 ‘이동의 의무’로 변질되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휩쓸며 혁명의 이념을 전파하게 된 것은 모순이다. 질주의 힘은 유괴당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오쩌둥의 군대는 인민의 속도를 동력으로 삼았지만 혁명이 완수된 이후에 마오는 스스로 이들을 숙청해야 했다. 이들은 속도에 중독되었으며, 어디로든 나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릴리오는 혁명에 대해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혁명은 낡은 사회적 공격을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비릴리오는 인민은 자신의 인공보철물에 의해서 속도로부터 소외되기 전에 이미 먼저 권력에 의해서 소외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히틀러가 1933년 ‘독일제국 아우토반법’을 통과시키고, 1934년 ‘자동차 대중화’ 정책을 통해 폭스바겐을 제작한 것은 인민에게 속도를 선물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공보철물로 획득한 그들의 속도를 전쟁의 동력으로 사용하고자 함이었다. 이후 히틀러는 폭스바겐 우표의 판매대금을 전쟁 준비에 쏟아 부었고, 폭스바겐을 군용차로 개조해버린다. 맑스가 노동에 대한 노동자의 소외를 논했다면, 비릴리오는 속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외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가 프롤레탈리아트 혁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매몰차게 말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유럽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아인슈타인 이론에 적대적인 것은 당연하다. 시간은 주어지기보다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창조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아인슈타인 이론이 그 선의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1939년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적인 충돌에 귀결된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그 자체로 절대적 시공간에 던지는 일격이다. 그것은 상대적인 시간. 각 개인의 상대적인 시공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앞서 언급한 속도의 비교적 선한 의지, ‘자유’의 가치를 구현한다. 그러나 개인적 차원의 질주는 국가권력에 의해 포섭되어 거대한 파시즘적 군사권력으로 전유되었던 것이다.

속도가 본래 선한 의지였던 것처럼, 그 실제적 발현형태인 ‘전쟁’도 비교적 우호적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다. 그러한 전쟁은 영토에 대한 침략보다 질주를 목적으로 한다. 샤르댕은 전쟁이 “인류 발생의 유기적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라면 오늘날 전쟁은 이동이 사라지고 결정적 습격을 통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오직 이 순수한 쾌락에 중독되어 앞으로만 전진하였다.

비릴리오는 스스로를 ‘2차 세계대전의 아이’라고 부른다. 1932년 출생인 그는 유년을 전쟁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으로 보내게 된다.

“나는 소년이었을 때 전쟁 기계의 미학에 대단히 흥미를 느꼈다. 난 그걸 내면의 판단에 따라 전쟁 엔진의 신비라고 불렀다. 자주 가던 길을 멈추고 벙커나 해안에 정착한 잠수함의 실루엣을 바라보면서, 왜 이다지도 잠수함들의 매끈한 형태들은 독해가 불가능한지, 그 조형적 비가시성은 어디서 생긴 것인지 의문에 휩싸이곤 했다."

그가 말하는 ‘독해의 불가능성’이란 전쟁 기계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차원의 시간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현재의 견고한 시공간을 훌쩍 넘어서는 과잉된 속도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 “모터는 모순 각성 상태와 직접 관련되면서 인과 관계를 대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에 그는 알제리 식민군으로서 복무하면서 현대전에서의 군인들이 어떻게 ‘의지없는 신체’가 되는지를 몸소 경험하게 된다. 벙커 속의 군인들이란 더 이상 백병전이 필요없는, 폭격이 일구어내는 전쟁의 이미지가 전투를 대신하는 전쟁을 수행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은 소년이었던 비릴리오에게 깊은 외상을 남겼고, 그가 속도와 매체, 정치 간의 관계를 사유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3. 지각장의 변혁과 전쟁

 

사실 비릴리오 보다 먼저 매체변혁이 야기한 지각의 변화와 전쟁의 관계를 통찰한 것은 발터 벤야민이었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의 전쟁 미학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즉 생산력의 자연스러운 이용이 소유질서에 의해 저지당할 때는 기술적 수단과 속도 및 에너지 자원의 증대는 불가피하게 생산력의 부자연스러운 이용으로 치닫는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이러한 필연성의 마지막 출구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의 파괴성은, 사회가 기술을 사회의 유기적 일부로 병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으며, 또 기술이 사회의 근원적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벤야민은 전쟁이 기술이 가져다 준 생산력을 인류가 자연스럽게 제어하지 못해서 표출된 파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비릴리오는 그 모든 기술적 변혁이 본래 전쟁을 예비하는 것이며, 생산력의 자유로운 이용은 언제나 소유질서에 의해 필연적으로 저지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역사의 진보는 무기 체계의 발전 속도와 비례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전쟁이란 인간의 욕망에 비견될만한 현상이며, 문제는 전쟁이라기 보다는 제어불가능한 무기들의 속도들이다.

때문에 비릴리오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찍혔던 전쟁 연대기나 전진에서의 전략적 촬영에 대해 예술 영화를 앞서는 명확한 주도권을 부여한다. 그에게 사진이나 영화 매체는 본래 전투기계에 가까운 것이다. 축제행렬, 대규모 집회, 스포츠 경기에서의 대집회, 전쟁의 군인들은 카메라에 적합한 인간행동의 형태이다. 카메라는 전에는 유례가 없었던 이러한 움직임을 인류에게 재현하여 각인시킬 뿐 아니라 대량 복제를 통해 확산시킨다. 영화는 제멋대로의 대중을 착취하기 쉬운 군대로 바꾸어 총력전을 가능하게 하는 전쟁기계이다.

비릴리오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영화라는 시각적 전투기계의 발달과 무기혁명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가 ‘국경의 광야’를 사유하는 대목에서도 시각적 전투기계의 역할은 잘 드러난다.

“국경의 광야야말로 제국의 영광을 재현해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광야가 존재한다는 것은 질주관들의 시선이 대지를 끊임없이 침략하고 있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며, 좀더 나아가서는 이 시각이 신속하게 먼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고로 시각은 전투기계이다. 운동의 궤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공간에서 교통로, 강, 바다, 도로, 다리의 관문을 장악하고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상대의 속도를 착취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영토에의 실제적인 침략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의 저서『전쟁과 영화』(1984)가 보여주는 독특함은 영화를 전쟁기계로서 사유했다는 점이다.

일찍이 기계문명과 기술매체에 매료되었던 젊은 예술가들에게 부감 이미지는 무엇보다 새로운 시각에 의한 인간 정신의 도약과 비상을 의미했으니 그것은 전체를 조망하는 부감이미지가 ‘국경의 광야’가 가져다 준 쾌락을 반복하고 증폭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의 눈과 사진 기계와 전쟁 무기를 가장 잘 연합한 혼합물이 바로 ‘적의 흔적에 대한 장면을 얻어서 적을 섬멸하려는’ 공중정찰기의 사진이었다.

어떤 논자는 벤야민과 비릴리오가 기술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리는 실은 전쟁과 기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음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벤야민은 무엇보다도 기술이 가져다 준 생산력의 잉여에서 태어난 것이 전쟁이기에 이러한 파국적 상황이 충분히 제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릴리오는 전쟁은 속도라는 순수한 의지의 발현이며, 모든 기술적 변혁은 이 같은 욕망을 잠재하고 있기에 전쟁은 필연적인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더 깊이 들어가 벤야민이 파국의 원인을 ‘정치의 예술(기예)화’에서 찾고 있고, 그 해결책으로 ‘예술의 정치화’로 제시했던 것을 보면, 그가 속도의 외부적 발현인 전쟁과 속도의 내부적 발현인 예술의 속도를 구분함으로써 예술의 역할에 비로소 긍정적 책무를 짊어지게 할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반면 비릴리오는 앞서 혁명의 힘과 파시즘의 힘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내부의 속도와 외부의 속도는 구별할 수 없다는 주장을 더욱 확실히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속도와 정치』의 국내 번역자 이재원은 책의 말미에 실린 해설을 통해, 비릴리오가 들뢰즈․가타리가 구분했던 운동(외연적 질주)과 속도(강밀도적 질주)의 구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밝혔듯이 속도의 정치에서 인민의 혁명이 긍정적 측면을 발휘하기 위해선, 반드시 운동과 다른 차원의 내적 초월 가능성이 발휘될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주로 인공보철물과 시각전투기계에 의한 외연적 질주에 집중한 비릴리오에게 이러한 긍정적 사유의 여지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쉽지 않다. 단순히 비관주의자로서 비릴리오를 규정하기엔 그가 보여주는 허무함의 무게가 상당히 육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는 정신분석을 모른다. 그는 오직 전쟁의 전문가이다. 그러니까 매우 현실적인 현안을 다루는데 익숙한 전문가인 것이다. 그가 스스로 보드리야르류의 해체주의자들과 노선이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확실히 레닌 시절에 보여주었던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쥬기법은 전쟁기계로서, 인공보철물로서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서 적절히 항전하였다. 컷과 컷 사이 재배열에 대한 관객의 주체적 개입. 그것은 절대적인 시공간에 대항하여 상대적인 시공간을 각 개인이 소유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술은 정치의 감각을 훈련시킴으로써, 벤야민의 말처럼 예술의 정치화를 꾀함으로써, 파시즘적 정치체제에 위협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비릴리오도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흥미를 보였다.

문제는 이후 교조적 스탈린주의가 들어서면서 공산주의체제가 급격히 파시즘화되어 갔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념에서 예술을 불허하고 선전․선동만을 허용함으로써 예술의 항전 가능성을 단번에 제거해버렸다.

벤야민은 현대 과학기술의 생산력에서 창조적 궤적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완벽히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반면 비릴리오의 묵시록적 전망 또한 언제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벤야민과 비릴리오의 견해들은 옳고 그름의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그 같은 전망이 지금 유효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야 정당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파시즘의 속도가 구분되는 것임에도 이들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 태도는 학문적 조심성이나 지적 함정과는 거리가 멀다. 비릴리오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군과 파시즘적 군사권력의 속도는 다르다고는 말 수 있겠지만 과연 구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 질주학이냐 속도학이냐? -번역의 문제.

 

속도에 대한 이와 같은 고찰은 그의 학문적 이념을 어떻게 번역해야할 것인지 고민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이재원은 비릴리오가 밝힌 바, 드로몰로지(dromologie)의 접두어인 그리어 ‘드로모스’(dromos)는 “경주, 달리는 행위, 민첩한 움직임”이라는 뜻을 가지기에 ‘속도학’이라는 번역어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역사를 침투와 결투, 투쟁의 역사로 보는 비릴리오의 시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질주학’이란 용어가 비릴리오의 정치철학적인 비전을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용어 번역의 정확성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문제는 ‘질주’의 용법 속에 담겨진 주체의 초월적 가능성이 너무 쉽게 ‘속도’에의 숭배로, 더 나아가 절대속도에 종속으로 귀결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질주’는 어디까지나 ‘질주’하는 주체를 포함한다. 반면 ‘속도’는 ‘질주’하는 주체를 억압하고 ‘속도’의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함의한다. 그것은 비릴리오의 끊임없는 경고였다.

때문에 ‘속도학’이라는 번역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속도와 파시즘(국가권력)의 속도를 넘어서 전지구적인 실시간 감시라는 절대속도가 지배하는 현 상황을 더욱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제 이동의 세 단계들 즉 출발, 여행, 도착에서 ‘여행’의 쇠퇴 이후, ‘출발’마저 갑작스레 사라진다. 모든 것은 도착할 뿐이다. 그러나 도착하는 것마저도 ‘나’는 아니다. 실시간 차원의 세계정보들만이 속도의 논리를 따라 도착한다. 절대속도에 의한 자유의지의 상실은 기정사실화 된다.

‘질주’하기 위해 ‘속도’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그 관계는 도착적으로 전이된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5. 저항의 가능성

 

비릴리오는 마오쩌둥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내포적 성장 체계라는 서구의 제도를 중국에서 지연시켰을 뿐”라고 평가한다. 만약 속도가 저항할 수 없는 세계의 진리라면 우리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한 것인가? 그는 “지금 당장으로서는 인민 저항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Virilio and Lotringer, 1997: 109).고 말한다.

그러나 의외로 비릴리오는 이러한 저항의 가능성을 끝없이 고민해왔다. 그 대안적 모델들은 그의 글 속에 꼼꼼히 숨어있다. 그의 생각을 완벽히 담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저작들을 살펴본 결과,대체로 그것은 시간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명하는 일과 그것을 몸으로 체험하는 일에서 발견된다.

 

시간을 발명한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시간에 균열을 내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 같은 공격행위를 간질발작이라는 병에서 힌트를 얻는다. 간질은 종종 인류의 오랜 질병이면서 그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는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의식을 아주 잃지 않는 경증인 소발작이다. 이러한 현상을 피크노렙시라고 부르는 데 이는 ‘빈번한, 자주’를 뜻하는 그리스어 피크노스 picnos 와 ‘발작’을 뜻하는 그리스어 ‘lépsis'의 조합의 결과물이다. 피크노렙시스를 겪는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도 멀쩡한 일반인이 하루에도 수없이 기억 부재증을 앓는다는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 바로 방금 전의 의식에 나갔다가 돌아온다.

여기서 고려해보아야 할 것은 기억이다. 어른들이 흔히 어린이에게 현장에 있었지만 자신들이 직접 보지 못한 사건을 설명하라고 다그칠 때가 있다. 이런 강요에 빠진 어린이는 자신이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사이에 강제적인 재조합을 시도하게 된다. 기억은 단절없이 명확한 것이라기 보다는 부재가 발생한 시퀀스 들 사이를 강제로 메우는 거짓말의 기술이다. 역설적으로 부재를 강제로 진압할 수록 그것은 진실에 가까운 것이 된다.

피크노렙시는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감정, 변덕스럽다는 점에서 히스테리 환자의 그것과 비교할 만한 것이다. 히스테리 환자들이 이성과 판단으로 제어하는 데 무능력한 것처럼 피크노렙시를 겪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벌어지는 기억부재증을 통해 기억이라는 강요된 지배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기술에서 벌어지는 사고(accident)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놀이를 비밀전략으로 꼭꼭 숨기는 이유는 놀이의 불확실성이 피크노렙시의 불확실성을 되풀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시선에 의해 발각되었을 때, 자신들의 명명할 수 없는 행위 때문에 아이들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비릴리오는 라르티그라는 사진작가가 어린 시절 벌였던 놀이 행위를 예로 들고 있다. 어린 시절 라르티그는 덧창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틈새를 통해 사물을 보고, 잽싸게 세 번 몸을 구르는 행위를 했다. 그는 ‘몸 구르기’를 통해 자신이 본 사물이 오직 자신의 것으로 몸에 각인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자신이 비밀스러운 육체적 사진기계였다.

이 비밀스러움은 피크노렙시의 기억부재증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어떻게 보면 기억부재증이란 말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기억이 당연히 존재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조어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시간의 기술은 종종 사고를 당하기 마련인데, 부재한 시간들은 비밀스처럼 숨겨져 있는 것이다. 라르티그의 예처럼 그 비밀스러움을 몸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보편적 시간에 종속되어 있는 사물을 떼어내 개인적 차원에서 소유한다는 의의를 가지게 된다.

꿈은 이러한 비밀스러운 순간들을 다시 꺼내어 재현한다. 영화가 꿈과 비슷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는 힘. 마술적 속임수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피크노렙시가 유발한, 연속적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상황들이 필름을 통해 구현된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잃어버린 현실의 부재들에 반응한다는 것. 즉 자신의 시간을 발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릴리오는 에드가 엘런 포의 말을 인용한다. “더이상 충동적이지 않고 매사에 침착한 성인은 자신이 어린아이였을 때, 즉 자신이 영원한 존재라고 믿던 때를 모두 잊은 것 같다.” 도박에 중독된 성인은 이러한 믿음을 뒤늦게 이루려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는 모든 예정된 진실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환상을 즐긴다.

피크노렙시가 저항의 사유와 행동이 되기 위해서, 기억부재증이 일으키는 기억의 틈새들을 의식적으로 메꾸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은밀한 틈새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간을 발명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을 발명한다는 것은 그러한 시간을 육체적으로 체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라르티그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구르기를 통해서야 비로소 사물은 시간에서 떼어져 나와 개인적인 것이 된다. 비릴리오가 피크노렙시를 성행위의 쾌감과 겹쳐보이게끔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맥락일 것이다.

 

비릴리오는 미하일 리클린과의 대담을 통해 현대 예술에서 자신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비디오 아트와 춤이라고 말한다. 춤은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신체로의 귀환이다. 인간의 고유한 몸에 대한 관심은 실시간의 확장이 가져올 시공간의 섬멸에 정면으로 저항하려는 태도이다. 그는 자신의 몸에 중량감을 다시 불어넣는 행위를 통해 신체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현대의 헬스클럽, 탐식貪食에 열광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탈물질화로 인해 역으로 질량과 밀도를 확보하려는 의지가 생겨난다. 물론 몸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들조차도 미디어에 의해 세뇌되는 방식으로 결국 스스로 자신의 몸을 훈육하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몸은 고유한 자신의 몸이다. 춤이란 신체가 오직 움직임을 통해서만 존속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행위이며, 자기 신체를 새롭게 느껴보고 싶다는 열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는 춤으로 대변되는 몸짓의 발명이 “타성에 대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그에게 ‘왜 혁명의 가능성을 낳는 속도를 탐구하지 않느냐?’라고 묻는 것은 어색한 일이 되겠다. 오히려 기술문명에 대한 비관적 전망으로 일관했던 그의 사유가 실은 들뢰즈․가타리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그 스스로 구분하지 않았지만 위의 생각들은 들뢰즈․가타리의 강밀도적인 속도 즉 내부적인 방식의 초월이 가능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고분분투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인공보철물의 속도와 그것을 착취하는 국가권력,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절대적 속도의 군림 앞에서 우리 스스로 질주의 코키토를 획득하라고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6. 결론

 

소수적 정치 이론가로서 보기에, 그는 정치적 낭만성의 감각이 매우 부족하다. 이는 기질이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그가 병참학과 첨단무기의 기술적 분석을 바탕으로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반대로 그를 첨단기술에 대한 매체이론가로서만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는 매체에 대한 감성학적 차원의 탐구를 정치학의 관점에서 전유하여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양자의 중심엔 ‘전쟁’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전장은 첨단기술의 향연장이며 동시에 속도의 생산과 착취가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장은 손쉬운 낙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심리적 착각을 통해 전장에서 살아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비릴리오가 비관을 통해 미래를 개척하는 예언자라고 판단한다. 즉 그의 철학은 분석하는 철학이 아니라 행동하는 철학의 성격을 가진다.

백남준은 1984년, 전지구적 차원에서 TV라는 문명기술을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위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네트워크 비디오 아트를 기획하였다. 그는 조지오웰에게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고 고별했다. 그러나 오늘날이야말로 조지오웰의 정치적 예측은 비로소 정확해졌다. 실시간 기술체계의 발달, 전지구적인 감시체계의 발달, 핵억지력 덕분에 유발된 정보전쟁이 확대되고, 이는 군사적 감시체계의 수립에 필요한 예산과 당위성을 안겨주고 말았다. 비릴리오가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 지금 유효하다.

그는 걸프전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보드리야르와 같은 학자와는 다르다. 극단적 해체주의자들의 사유는 실제와 가상 사이에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며, 패배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비릴리오는 걸프전은 분명히 존재했으며, 일종의 기만에 의해 가상으로 제어되고 있다는 점을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이것이 전쟁의 아이인 비릴리오의 소중한 가치이다.

비릴리오의 사유는 작동한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낙관을 금지함으로써 작동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기술문명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예측으로 그를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예견하는 자들은 그 예언이 틀렸을 때 비웃음을 당하지만, 정작 그러한 예언을 벗어나도록 한 것이 그 예언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곤 한다.

들로즈․가타리의 아쉬움처럼 파시즘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속도에 대한 구분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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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23-09-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번 잘 읽었다는 흔적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