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의 미디올로지 - 잉여력과 로우테크(low-tech)로 구상하는 미디어 운동 다중지성총서 5
임태훈 지음 / 갈무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Review: 임태훈, 우애의 미디올로지, 갈무리, 2012


  나는 이 책을 귀로 만났다. 네트워크 상에 떠도는 소문으로, 눈을 감고 더듬는 심정으로, 귀로 만났다.
문학도 아니고 영화학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사회과학의 분류에 더 가까운 이 책은 '우애의 미디올로지'라는 중충적이고 개방적인 개념을 통해 '지금', '우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것은 조지오웰의 "1984"에 응답하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이었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1984"의 세계, 그곳에선 텔레스크린을 통해 시민의 일상이 감시되고 통제된다. 이에 백남준은 1984년 벽두부터 tv의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전세계인들의 새해안녕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로 대응한다. 임태훈이 자신의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첨단 미디어에 대항하는 우리들 '우애의 미디올로지'. 
단일한 정치적 구호 아래 집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다발들로서의 우리들. 그들이 미디어를 놀이터로 만드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미디어를 점유하고, 또 재점유하는 방식으로 끝없이 미디어를 통한 놀기를 시도해야 한다.

  이 책의 첫부분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명-사운드의 개념을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하다가 조금 전 낮잠에서 깬 후 이해했다. 사운드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메우는 존재들의 무리인 것인 것이다. 시각에 있어 원근법은 시각-침투기계이지만 사운드는 공간을 가득 채우지만 보이지 않는 충만한 유령들인 것이다. 사운드는 단지 청각-신체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시각-근대성에 가려져 잠재된 것들에 대한 비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블로우 업'의 주제를 더욱 현실감 있게 구상화한 것은 프란시스 코플라의 '컨버세이션'이다. '일상 속에 마주하게 된 끔찍한 실재'라는 동일한 테마를  다룬 이 두 영화는 우연히 찍힌 사진 속에 확대되어 발견된 범죄의 증거-시각적 발견-(블로우 업)가 도청된 녹음 파일 속에 숨겨져 있는 살인음모를 발견하는 것-청각적 발견-(컨버세이션)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벨벳'에서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것은 린치가 설계한 사운드이다. 평온한 오후 한 중산층 가정의 앞뜰에서 지면 내부로 시각적 침투가 일어날 때, 연출되는 풀밭 속 벌레들이 내는 게걸스러운 소리. 그 음모와 욕망의 소름끼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블루벨벳'의 주제에 도달할 수 없다.  견고해보이는 주체 내부의 끓어오르는 리비도는 청각적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임태훈에 의하면, 이렇게 눈을 감아야 들리는 사운드가 우리 시대의 잉여들의 존재론적 양태이다. 그는 모든 잉여들에 대해 혁명적 사고를 할 것을 촉구한다.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은 집단화된 군중의 풍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고 하찮으나 저들끼리 엉켜 접촉하는 단자들의 음경(Soundscape)으로 가능하다. 
컴맹들, 악플러, 괴담유포자, 심지어 타진요까지도 이런 관점에서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읽힌다.

  이는 문학사를 보는 시각에도 발휘되고 있다.(나는 특히 이 부분이 좋았다.) 주어-문학이 아니라 접속사-문학으로 관심을 돌릴 때 문학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타인의 언어에 접촉하고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모든 일로 외연을 넓히고 주위를 바라보면 문학은 새롭게 생성중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책을 통해 제도로서의 문학을 왕따시키는 기획을 엿볼 수 있었다.
  조강석은 "경험주의자의 시계"를 통해 문학을 그 무엇에도 새롭게 접속할 수 있는 경험론적 주체로 이해했다. 이 점이 문학이라는 제도의 끝머리를 가까스로 방어하고 있던 신형철 보다 마음에 들었는데, 임태훈의 책을 읽으니 다시 정리해야 겠다. 

  신형철보다는 조강석이, 조강석보다는 임태훈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