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 열다
로베르트 발저 지음, 자비네 아이켄로트 외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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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시는 즐겨읽지 않지만 시인의 산문집은 좋아해요. 시에 대한 기억이 문제의 정해진 답을 위해 시를 읽고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밑줄 친 단어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정답이 맞는지 틀린 지 확인했던 게 대부분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유독 그런 유형의 문제가 저에게는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도 시를 읽으면서 이게 어떤 의미로 쓰인 걸까?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게 맞나?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정답을 찾게 되고 그런 시간이 조금은 스트레스로 느껴졌어요. 근데 또 시인이 쓴 에세이는 좋더라고요. 소설사/극작가/시인 발저가 쓴 숲에 대한 시, 산문, 단편을 엮은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을 읽었습니다. 


작고 가벼운 책이라서 외출할 때 가져가기 편해요. 가방에 쏙 넣어서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기도 하고 숲속에 있는 느낌의 카페에서 읽어도 좋을 거 같아요. 숲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어요. 숲으로 시작해서 숲으로 끝나는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을 읽고 있으면 숲속을 걷고 싶어져요. 


저녁이었다. 초록빛이 멋진 저녁의 언어로 말을 했다. 색은 언어와 같다. 내가 서 있는 집은 모자를 눈까지 푹 눌러쓴 것처럼 처마가 창문 위로 깊이 내려와 있었다. 사실 창문은 집의 눈이 아니던가?


읽다 보면 우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지 싶은 부분이 많아요. 집의 처마는 모자를 눈까지 푹 눌러쓴 것으로, 창문은 집의 눈이라고 이야기해요. 이 글을 읽고 난 후로는 창문을 보면 자꾸 집의 눈으로 보게 될 거 같아요. 


크게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기저기 숲을 거닐 때면 나는 마치 온통 햇빛으로 칠해놓은 방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온통 햇빛으로 칠해놓은 방 안에 있는 느낌, 숲속에서의 느낌을 따뜻하게 잘 표현한 거 같아요. 따스한 햇빛,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무, 그 속에 평온하게 걷고 있는 나. 상상만으로도 편안해져요.


 

거장들의 품격 있는 문장과 사유를 소개하는 열림원의 총서인 '열다' 시리즈에는 헤르만 헤세, 빈센트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로베르트 발저의 사유의 흔적들이 담겨 있어요. 로베르트 발저의 <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을 읽어보니까 나머지 3권도 읽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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