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현대사상총서 18
라인홀드 니이버 지음, 이병섭 옮김 / 현대사상사 / 1990년 8월
평점 :
절판


제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제 허영심 때문입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가슴에 남는 명저로 이 책을 꼽은 것과,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 책을 자신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필독서라고 한 것을 각각 다른 기회에 각각 다른 신문기사에서 읽었습니다. 저 스스로를 대통령 쯤으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명사의 취향에 편승하고픈 허영스런 욕구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지요.

그때까지 저는 니이버라는 신학자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만해는 저자가 신학자라는 사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기독교 사상이 강력한 사상적 추진체라기보다는, 어떤 소프트한 이상주의적 족쇄가 되는 것을 많은 크리스천 사상가들의 글에서 보아왔기 때문이죠. 그저 두 분 대통령에 대한 허영스런 편승심 때문에 이 책을 읽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에서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정반대였습니다. 니이버는 참으로 돌연변이 사상가입니다. 그의 글에서는 천국에서 울려퍼질 부드러운 하모니, 신학자 특유의 고운 심성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적 협잡, 총칼이 오가는 비정한 현실에 익숙한 냉철한 지략가의 심성이 느껴지니까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유명한 현실주의 사상가였습니다. 현실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비스마르크나 키신저 뺨치는 현실주의자입니다. 그에게 기독교는 일종의 구색일 뿐입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의 현실 분석은 칼날처럼 차가우면서 놀랍게 탁월합니다. 무엇보다 민족주의, 파시슴 등의 각종 집단 이데올로기가 그 집단 내부에서는 가장 강렬한 이타애, 이상주의적 유대를 불러 일으키고, 집단 외부로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비타협적인 폭력과 대립을 불러 일으킨다는 양면적 조직 이론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주 놀라운 통찰입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저는 여러 부류의 정치 집단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고, 집단 내부에서 형성되는 이상주의적 유대감에 만끽해 있었지요. 이 책은 저에게 그런 도취감을 되돌이켜 보게 만든 준엄한 꾸짖음의 회초리였습니다.

마키아벨리즘, 니이체 주의의 연속 선상에 서 있는 이 놀라운 신학자.... 가장 복잡하고 매력적인 신학자... 이 책은 제겐 소중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 대통령들이 왜 이 책을 최고의 명저로 꼽았는지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낀 감흥과는 다른 어떤 심오한 이유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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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9-0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안할 수 없는 리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