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불한당들의 세계사 보르헤스 전집 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장이 쓰는 작품이 모두 걸작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스토옙스키를 예로 들면, 그의 작품들은 레벨이 분명 있지요.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 압도적인 별 다섯이라면, <악령>이나 <백치>는 4대 걸작으로 통하면서도 <죄와 벌>, <카라마조프>보다는 조금 품격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들 합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은 아주 많이 품격이 떨어집니다.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노름빛에 쫒겨 허겁지겁 써댄 못난이 작품들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의 작품집들도 뚜렷한 차별성이 있는 듯합니다. 보르헤스가 오늘날 읽혀지는 국제적인 보르헤스가 된 것은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통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집은 초기 단계의 글쓰기 워밍업이라고 할까요. 그의 두번째 작품집 <픽션>이야말로 미국에 번역되어서 그의 명성을 휘날리게 한 작품집이지요.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이후의 작품집들에 비하면 많이 떨어집니다. 혹시 제가 감수성이 부족한지는 모르나 읽어도 읽어도 이 작품집은 이후의 작품집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셰익스피어의 기억 보르헤스 전집 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보르헤스의 열렬한 독자입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다섯 권을 모두 읽었지요. 여러 번 읽은 작품은 아마 10번도 넘게 읽었을 거에요. 시처럼 외우는 구절도 있지요. 사실 제가 더 아끼는 작품집은 <알렙>과 <픽션>인데, 그 책들은 다른 애독자분들의 훌륭한 독자평들이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추천하는 글을 남길까 합니다.

아마 보르헤스의 글만큼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깊은 감흥을 남기는 글들도 없을 거에요. 주옥 같은 그의 단편들 하나하나가 경이롭지요. 그러나 그 작품들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한 글 3개만 고르라 하면, 저는 <알렙>의 '죽지 않는 사람들'과 <픽션>의 '바빌로니아의 복권' 그리고 이 책의 '의회'를 뽑을 것입니다.

실로 '의회'는 경이로운 작품입니다. 보르헤스 자신도 저자 서문에서 이 작품집 중 <의회>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플라톤의 형이상학이 가장 잘 녹아있는 작품이에요. 그런데 그의 다른 걸작 '죽지 않는 사람들'이나 '바빌로니아의 복권'이 추상적인 셋팅인데 비해 이 글은 더 사실적인 셋팅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작가의 사실 체험과 관련이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근런지 더 깊은 감흥을 남기지요. 플라톤주의적인 세계의회의 형성과 몰락 과정은 특히 인간이 품게 마련인 자기중심적 도취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듯한 환상에 대한 비유담처럼 느껴집니다.(주관적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보르헤스의 깊이를 곱씹고 싶은 독자분이라면 이 책, 그 중에서도 '의회'를 한번 즐겨보시길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권으로 읽는 니체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고병권 옮김 / 푸른숲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두 분 저자가 텍사스 오스틴대학 철학 교수 분들이라고 합니다. 철학 교육과 강의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답니다. 저는 경외감을 느끼며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다 읽고나니 속은 느낌입니다. 수백 장의 포장지로 겹겹 둘러싸인 가짜 선물을 풀고난 허탈감 뿐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지.... 그런데 계속 포장지만 나옵니다. 도대체 주장하고픈 핵심 요지가 무엇인지.... 이제나 저제나 하지만 끝까지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니체에 대한 여러 가지 세간의 속단들을 모아놓고, 이에 대한 얄팍한 단상들, 단순 반박하는 글을 모았어요. 그런데 이 반박들이 그야말로 단순 잡담입니다. 혹 이 국제적인 철학자 분들은 니체의 좌충우돌 그리고 재기발랄한 저작 스타일을 흉내내서 억지로 비일관되고 줄거리 없게 좌충우돌 한 것도 같은데, (제 이해력이 짧아서 그런지) 저에게는 꼭 옛날옛적 장소팔 고춘자씨의 만담처럼 들립니다.

이런 만담을 모아서 출판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철학교수분들이 이런 글을 내도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은 비교적 명문인데, 그곳 철학과는 수준이 영 그저 그런 모양입니다.) 이런 저자에게 국제적인 철학자라는 명성을 도대체 누가 부여했는지 모르겠네요. 독자를 미혹시켜 돈푼이나 벌겠다는 출판사에서 부여한 거라면 모를까......

제 짧은 소견에도 니체 입문서를 읽으려면 다른 좋은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 니체에 대한 진지한 도전, 혹은 여러 편견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을 위해서도 좋은 책이 많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돈 낭비하시지 마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업가 - 학술 자유주의 시리즈 28
공병호 / 자유기업센터(CFE)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한때는 진보주의를 자처했고, 현재에도 신자유주의 이론에 100% 공감하지 않는 입장에서 공병호 님의 글을 처음 읽고 평가를 몇 마디 적어봅니다.

세간에 공병호 님에 대해서 두 가지 비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째, 강준만 교수님을 필두로 한 진보주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의 대변자 공병호에 대한 신랄한 비판. 둘째, 경제학계에서 공병호 님의 지나치게 정치바람을 타는 기질과 인터파크 사장으로서의 외도 등을 이유로 학문적 깊이가 없다는 혹평. 저는 두번째 평가를 놓고 왈가왈부할 경제이론의 조예가 없습니다. 그러나 첫째 평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고서 좀 논할 지혜를 얻었습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이 책은 아주 진지한 책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 이론부터 시작해서 하이에크, 프리드만 등에 이르는 서구 경제학자들의 이론까지, 그리고 한국의 실학파들 이론까지 두루 섭렵하며, 신자유주의 사상의 정당성을 일관된 논조로 피력하고 있습니다.

공병호 님이 대중을 상대로 바람을 잡아서 정치적 유명세를 얻거나, 책을 팔아서 돈이나 벌어보려는 선동가가 아님을 이 글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병호 님은 자신의 학문적 입장, 정치적 견해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진지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경제사상서 개론으로서 훌륭할 뿐 아니라, (아주 탁월하지는 않더라도) 일목요연한 논리로 자유주의의 정당성을 피력한 준-사상서 급의 책입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한국의 많은 진보주의 논객들이 공병호 님의 엄밀성을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님의 지식인적 책임성과 진지함, 학문적 포괄성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르크스나 레닌은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단련시켰는데.....

한국의 진보주의는 마구 난무하는 천박한 선동이 아닌 님의 학문적 책임성을 배워야 합니다. 하이에크 원전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사상을 마치 님이 마르크스 주의를 두루 섭렵했듯,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마 한국사회의 진보사상은 지금보다 두세 단계 업그레이드 될 거라고 믿습니다. 공병호 님 당신은 참으로 훌륭한 적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0-09-0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입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현대사상총서 18
라인홀드 니이버 지음, 이병섭 옮김 / 현대사상사 / 1990년 8월
평점 :
절판


제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제 허영심 때문입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가슴에 남는 명저로 이 책을 꼽은 것과,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 책을 자신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필독서라고 한 것을 각각 다른 기회에 각각 다른 신문기사에서 읽었습니다. 저 스스로를 대통령 쯤으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명사의 취향에 편승하고픈 허영스런 욕구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지요.

그때까지 저는 니이버라는 신학자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만해는 저자가 신학자라는 사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어요. 기독교 사상이 강력한 사상적 추진체라기보다는, 어떤 소프트한 이상주의적 족쇄가 되는 것을 많은 크리스천 사상가들의 글에서 보아왔기 때문이죠. 그저 두 분 대통령에 대한 허영스런 편승심 때문에 이 책을 읽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에서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정반대였습니다. 니이버는 참으로 돌연변이 사상가입니다. 그의 글에서는 천국에서 울려퍼질 부드러운 하모니, 신학자 특유의 고운 심성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적 협잡, 총칼이 오가는 비정한 현실에 익숙한 냉철한 지략가의 심성이 느껴지니까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유명한 현실주의 사상가였습니다. 현실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비스마르크나 키신저 뺨치는 현실주의자입니다. 그에게 기독교는 일종의 구색일 뿐입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의 현실 분석은 칼날처럼 차가우면서 놀랍게 탁월합니다. 무엇보다 민족주의, 파시슴 등의 각종 집단 이데올로기가 그 집단 내부에서는 가장 강렬한 이타애, 이상주의적 유대를 불러 일으키고, 집단 외부로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비타협적인 폭력과 대립을 불러 일으킨다는 양면적 조직 이론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주 놀라운 통찰입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저는 여러 부류의 정치 집단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고, 집단 내부에서 형성되는 이상주의적 유대감에 만끽해 있었지요. 이 책은 저에게 그런 도취감을 되돌이켜 보게 만든 준엄한 꾸짖음의 회초리였습니다.

마키아벨리즘, 니이체 주의의 연속 선상에 서 있는 이 놀라운 신학자.... 가장 복잡하고 매력적인 신학자... 이 책은 제겐 소중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 대통령들이 왜 이 책을 최고의 명저로 꼽았는지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낀 감흥과는 다른 어떤 심오한 이유 때문이겠지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0-09-0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안할 수 없는 리뷰군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