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촌수필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지난 봄 작가 이문구가 이승의 끈을 좋았을 때. 세상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김선주는 이념의 잣대를 함부로 휘두르는 젊은 세대를 향해, '니들이 이문구를 아느냐?'라는 일갈로 이문구를 떠나보낸 아픈 심정을 표현했다.
이념의 어두운 그늘로 인해 모든 가족이 차갑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야했던 어린 이문구. 그 생채기를 고스란히 안아야 했던 작가는 사람들 앞에 선뜻 나서거나, 명확한 자기 입장을 밝히는 쪽보다 조용히 세상을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작가의 가족은 이념 때문에 쌀자루에 담겨 고향 관촌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그런 극한의 비참함을 몸소 겪은 작가에게 명확한 이념 표현과 입장을 요구하는 오늘날은 피하고 싶은 세상이었을 게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이념의 잣대를 긴장감 없이 나른하게 휘두르는 젊은 세대가 작가는 불편했을 것이다. 아마도 김선주의 일갈은 그런 세상과 세대를 향한 일침이 아니었나 싶다.
이문구. 그는 죽었다. 세상이 그를 추모할 때 나는 『관촌수필』를 펼쳤다. 김선주의 일갈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세상을 모르고 삶을 모르면서, 가끔 들춰본 사회과학 책을 인용하며 세상의 진리를 꿰뚫고 있는 양 어설픈 이념의 잣대를 휘두른 나를 돌아보며 『관촌수필』을 들었다. 책을 다 읽은 지는 수개월이 지났다. 내 손 떼가 묻은 『관촌수필』은 아끼는 후배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때는 어김없이 『관촌수필』을 선물했다. 순식간에 『관촌수필』은 내가 누군가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 되었다.
'잘들 사는 걸 보구 죽으야 옮을 텐디, 이대루 죽어서 미안하네.... 부디 잘들 살어....'라는 말을 남기고 작가와 헤어진 석공 신현석.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꾸만 내 어릴적 좋은 칙구 정현이를,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늦게까지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고 심지어 나에게 얻어터지기까지 했던 코흘리게 형제 화용·한용이형 하염없이 그립게 만들었던 대복이. 언제 어느 때 찾아도 힘겨운 삶을 따듯하게 위로해줄 것 같은 우리의 누이 옹점이. 남들 하기 싫어하는 일에 앞장선 우직한 복산이.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럽고 질척한 삶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용모.
『관촌수필』에 나오는 위 인물들을 사랑한다. 가만히 책을 읽다보면 이들은 살갑게 다가와 진실된 삶의 모습을 속삭여 준다. 이들의 삶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물게 하고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에 물기를 맺히게 한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눈을 맑고 깨끗하게 해준다. 내게 『관촌수필』은 책보다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싶고, 닮고 싶은 그런 사람.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준 것이다. 다른 건 필요없고 정말이지 우리 신현석, 대복이, 옹점이, 용모처럼 착하게 살자라는 마음을 담아 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