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기행 (구) 문지 스펙트럼 10
홍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남도 들녘을 적시고, 사람들의 피와 땀을 담아 오늘도 끊임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향한 동경을 품고 있다. 섬진강이 가지고 있는 아늑한 정서는 거친 내 정서를 부드럽게 해준다. 남도에 우뚝 솟아있는 지리산을 사랑한다. 자연적 조건만이 아니라 남도에서 피어난 질척하고 끈덕진 인간의 역사에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내가 가지고 있는 남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홍성원의 <남도 기행>을 들게 만들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책은 남도의 살가운 자연과 끈끈한 그곳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제목 하나만 바라보고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이다.

중단편 「설야」, 「남도 기행」, 「즐거운 지옥」, 「폭군」으로 구성된 이 책이 그나마 남도를 다루고 있는 것은 단편 「남도 기행」뿐이다. 그것도 남도를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다루고 있지 않다. 대신, 이순신의 죽음을 떠올리고, 낚시 친구 선두 김씨의 말을 통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 틀조차 허용하지 않는 시대적 상황에' 둔감하게 살아가는 삶의 반성을 말하고 있다. 이런 단편 「남도기행」은 내 예상과 상상을 빗나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선함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이 땅에 나타난 커다란 호랑이와 사냥꾼 노인의 집요한 대결을 그린 「폭군」은 이야기 자체의 흥미도 그렇거니와 삶을 반성하게 하는 힘있는 소설이다. 두메마을에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거대한 호랑이에게 적개심 대신 신령스러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마을 사람들 모습을 보며, 그동안 우리가 '독재자' '폭군' 아래서 수십년간 신음했던 원인을 반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는 호랑이와 그것을 꿰뚫어 아는 노인의 대결은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폭설이 내린 산속에서 쫓기는 호랑이와 쫓는 노인의 모습은 동양화적 이미지다. 마지막 순간에 결국 호랑이와 노인이 서로 부둥켜 안고 눈밭에서 죽은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삶을 통해 진지한 장인정신의 자세로 대상을 다루고, 사물을 대하지 못한 아둔한 우리네가, 끝내 서로를 존경하게 된 노인과 호랑이의 죽음을 어찌 쉽게 이해하겠는가.

결국 홍성원의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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