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수밭 (구) 문지 스펙트럼 6
모옌 지음, 심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붉은 빛은 강렬하다. 핏빛은 마음속 깊은 곳 예민함을 건드린다. 잔인하면서도 강렬한 핏빛은 生의 강렬한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삶을 꿈틀거리게 하고 가끔씩 분출되는 내면의 에너지를 자극하는 것도 핏빛 붉음이다.

그와 반대로 핏빛은 암울과 죽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광주 망월동의 죽음 앞에 서면, 지리산에 올라 그 산을 적셨던 수많은 죽음을 떠올리면, 의병과 만주독립군을 떠올리면 숙연해진다. 그 순간, 내 안을 채우는 빛은 핏빛이다. 암울한 핏빛.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붉은 수수밭>을 지배하는 빛은 제목처럼 붉은 빛이다.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수수밭은 붉은 수수를 열매맺고, 빛을 받으면 붉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수수밭이 가지고 있는 붉은 빛은 수수밭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 삶의 빛이기도 하다. 온몸의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 루어한 아저씨, 붉은 수수밭 한가운데서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생의 열망을 간직한 채 죽은 할머니, 왜놈들과 싸우다가 머리가 깨지고 심장이 터져 죽은 까오미縣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용맹한 할아버지 위안아오의 삶도 열정의 붉은 빛이다.

이런 붉은 빛은 존경과 경이의 상징이다. 위대한 삶이 빛을 발한다면 그 빛은 붉은 빛일 것이다. 영혼이 이끄는 곳으로 가는, 결국 죽음으로 이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땅히 가야할길이기에 묵묵히 걸어가는 삶은 위대하다. 그런 삶은 붉다.

내 삶은 전혀 붉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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