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열린 세상 - 4-011 (구) 문지 스펙트럼 11
송희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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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일상언어에 추가된 독특한 영화 언어로 현실과 환타지, 실재와 꿈,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절묘한 외줄타기를 인간에게 보여주고 그 외줄타기의 곡예사에 기꺼이 관객을 초대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짜릿하고 아찔한 외줄타기 곡예사가 되어 영화속에 빨려들어간다. 현실 너머의 환타지, 실재의 존재가 건널 수 없는 꿈만을 영화가 표현했다면 관객은 외줄타기 곡예사가 되길 망설이고 포기했을 것이다. 외줄 하나에 의지하여 아찔한 경계넘기는 인간의 꿈과 이상을 표현하는 예술의 주된 테마이자 존재근거이다.

나에게 있어서 현실의 개별적 인간을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접근을 통해서 잘 분석해 보여주었던 영화는 <박하사탕>이었다. 거꾸로 가는 기차를 따라 시간의 역추적을 통해 현실의 '망가진 영호'의 삶을 보여주었던 <박하사탕>은 영화가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것들을 내게 일깨워주었다.

사회와 끊임없는 피드백 과정을 통해 인간의 여러 요소들은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속의 자신은 쉽게 돌아볼 수 있어도 역사적 근거와 원인으로써 자신의 모습은 그려보기 어렵다. 하기에 <박하사탕>의 영호를 통해 비로소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돌아보며,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 관계에 새삼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놀라움. 바로 현실과 그 현실 너머의 지평을 보여주는 영화가 인간에게 주는 놀라움이다.

지난 해 늦가을에 어렵게 보았던 <와이키키 부라더스>도 나에게 충격이었다.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마땅히 외줄타고 곡예쇼를 보여주어야할 영화는 전혀 환상적이지 않았고,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나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했다. 있는 그대로의 완벽한 현실. 나는 그런 너무도 리얼한 현실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에 불편했고 충격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현실을 잊는다. 아니 잊으려고 한다. 그렇게 현실은 인간에게 버거운 것이기도 하다. <와이키키 부라더스>의 그런 표현도 하나의 환타지이기도 하다. 그것을 보는 사람이 환상 속에 허우적 거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극도의 현실을 보여준 이 영화는 그대로 보는 이에겐 환타지가 된다.

특별한 장치도 없었고, 장대한 서사구조가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내게 있어서 이 두 편의 영화는 현실과 이상의 절묘한 외줄타기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송희복의 『영화 속의 열린 세상』은 이렇게 영화가 표현하는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영화적 기법과 표현 양식에 대한 설명보다 이 책은 오늘날의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통해서 현실의 삶을 반추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수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금기시되었던 동성연애, 레즈비어니즘, 맹독성의 불륜 등의 주제가 영화속에 자주 등장하는 원인과 배경. 그리고 중국의 근대화 과정의 상처를 영화를 표현한 장이모,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 새롭게 꿈틀거리고 있는 동아시아 영화.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영화가 표현하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와 간극이지만 결국 현실로 되돌아 오기위해 영화는 존재함을, 그리고 인식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어두운 극장안에 들어감을 말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현실을 읽어내려는, 혹은 영화를 통해 현실의 세계를 더욱 확대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이 책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박하사탕>에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어렴풋이 느낀 것처럼, <와이키키 부라더스>에서 현실과 꿈의 뒤바뀐 환타지를 경험 한 것처럼 영화 속에는 또다른 세계의 모습을 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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