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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문지스펙트럼 한국문학선 1-001 ㅣ (구) 문지 스펙트럼 1
황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황순원 소설은 우리네 가슴 깊은 곳에 끊임없이 흐르는 감정의 물길에 잔잔한 여울을 일으킨다. 그 여울은 삶을 흔들리게 하고, 한동안 멈추어 서서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하면서 오늘을 '잔잔하게 반성'하게 한다.
한 생을 살면서 부, 명예, 권력을 얻는 것은 참 쉽다. 적어도, 한 생을 살면서 올곧게 자신의 길을 '착하고' 정직하게' 가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세상이 변했고 변한다고 말하지만 그 변화는 당연한 변화일 뿐이다. 자신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아둔함일까. 우리네 얄팍한 마음 씀씀이는 자신의 변화를 세상변화의 당연함에 포함시키거나, 아니면 아예 눈감아 버린다.
하루하루 생존하며 산다는 것은 힘겹기에 눈감아 버림은 생존의 한 수단이기도 되기도 한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살아간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을. 우리네 마음이 그토록 냉정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 순간 멈추어 서서 깊은 좌절 속에서, 자기는 무엇이고,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되묻곤 하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을 고민할 때 우리 기억이 자연스럽게 찾는 곳은 유년시절이다. 현실의 고통은 유년기에 이르러 잊혀지고, 나는 무엇인가를 고민할 때 우리는 그 시절의 순수와 꿈을 되새긴다. 이렇듯 존재가 외롭고, 힘겨울 때 찾는 것은 엄마 다음으로 유년시절이다.
황순원의 단편집 『별』에 실린 이야기들은 「소나기」가 그렇듯 유년기의 그것이다. 오늘날 사변적이고 몽환적인 소설에 길들여진 눈과 마음은 황순원 소설에 이르러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그의 단편들이 아름다운 유년기의 추억만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아픔을 시리게 그리고 있다.
비록, 아픈 유년기의 이야기라도 나는 기쁘고, 아름답게 읽었다. 내 현실이 지저분해서 그런가보다.
가을이 깊어 가는 요즘이다. 가을밤이면 더욱 파리하게 떨며 반짝이는 별빛을 보러 나가봐야겠다. 그리고 차갑게 흐리는 시냇물의 징검다리도 많이 그립다. 어린 시절 키운 강아지는 죽어서 좋은 세상에 갔는지 모르겠고, 친구녀석들은 탈없이 잘 살고 있는지...
황순원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덧 나는 「별」, 「소나기」속의 소년이 되어 누이와 엄마를 그리워하고, 소녀를 그리워하는 이가 된다. 무언가 많이 그리운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