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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평점 :
B급 좌파』, 김규항, 야간비행, 2001
<고해성사>
95년 이른 봄이었다. 대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채 가시기도 전 어느 장애인 노점상의 분신자살은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한 촌놈에게 데모라는 것을 하게 만들었다. 첫 데모에서 그 촌놈은 한 손엔 화염병을 한 손엔 쇠파이프를 들고 어리버리하게 싸움을 했다. 산골에서 맡아본 경험이 없는 최루탄은 그야말로 촌놈에겐 '쥐약'이었다. TV나 신문에서 봤음직한 대학생들의 무시무시한 데모대열에서 그 촌놈은 환희를 느낌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촌놈은 기회가 닿을 때 마다 데모에 나가 별로 용감하지 않은 모습으로 화염병을 던졌고, 쇠파이프를 휘둘렀으며 철거현장과 파업현장을 전전하는 문제아가 되었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었고 80년 빛고을 이야기에 가끔씩 위선적 눈물을 흘리곤 했으며 각종 집회에서 대중들을 선동하고 빨간물을 들이려 노력은 한 것 같다. 별로 치열하지 않은 모습의 얼치기 운동권으로 대학 6년을 마친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6년을 바쳤던 운동을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력이 마치 훈장인냥 여기고있는 그에겐 더 이상 자랑스런 '운동권'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변두리의 허름한 빌라에 쳐박혀 문학을 한답시고 책을 뒤적이고 있다. 그에게 더 이상 운동권이란 말은 사치이다.
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인냥 이렇게 까발리고 나니 후련함 보다 쪽팔림이 밀려온다. 대학 6년 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말은 '운동권'이었고 자랑스런 '좌파'였다. 오늘 희대의 독설꾼 김규항의 『B급 좌파』를 읽고나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이름 '좌파'가 떠올랐고 '아, 나도 한 때 좌파였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하다는 김규항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회에 그리고 체제에 별 불만없이 살아가는 나는 도저히 좌파일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돌아보고 반성하는 힘이 남아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자랑스런 두 글자를 내 삶에 새겨본다. 살아온 날들보다 많이 남은 살아갈 날들에 이 두 글자가 언제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좌파, 좌파, 좌파, 좌파, 좌파, 좌파,......
<김규항의 분노>
김규항은 공격적 글쓰기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눈에 보이는 적들에 대한 공격보다는 우리와 친숙한 혹은 우리편(?)이라 착각했던 사람들에게 분노의 필봉을 휘두른다. 특히, 그는 나약하게 자신을 버리고 동지를 버리고 신념을 너무도 쉽게 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무서운 독설을 뿜어댄다. 이런 그의 독설은 배신감에 대한 보복이 아니다.
김규항의 독설은 역사적 진보와 좌파적 시각에 입각한 것이다. 과거 80년대는 우리 사회의 모든 욕구가 분출된 그야말로 광기와 열광의 시대였다. 모두들 혁명을 이야기했고 새롭게 펼쳐질 유토피아의 꿈에 젖어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당시의 분위기는 엉뚱하게도 도살자의 절차적 민주주의 제스처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허무하게 식어버렸다. 열광과 광기의 80년대는 허무주의 90년대를 낳았고 당시의 투사들은 금배지를 달고 자신을 고문했던 자와 성교하면서 음탕한 제스처를 자신을 '의장'이라 받들던 대중들에게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는 친절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 때 우린 용감했지요.. 그리고 세상은 변했지요.. 서로 단합하여 힘있는 한국을 건설합시다.'
김규항식으로 표현하자면 한 마디로.
'씨발놈들 개 좆까는 소리다'
맘대로 뚫린 입이지만 말은 바로 하라고 했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변한 것이다. 그들이 더러운 입으로 떠벌리는 좋은 세상이란 우리같은 노동대중에게는 생지옥이다. 이런 와중에 변화와 화합을 요구하는 지식인들에게 김규항은 아름다운 독설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은 좌파이며 평생 좌파로서 살고 싶다는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A급도 아닌 B급정도 될까말까하는 좌파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몇 급 좌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