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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평점 :
프롤로그에 『빅이슈』의 편집장이 저자의 책 『후아유』에 대한 서평으로 ‘우리는 이런 책을 만나기 위해 독서를 한다’라고 썼다는 부분이 있다. 나는 사회활동가로 오랜 시간동안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쏟은 저자의 이름을 처음 알았고, 그래서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더더욱 없었지만 『사물에 대해 쓰려했지만』을 읽고서 ‘우리는 이런 책을 만나기 위해 독서를 한다’는 편집장의 말에 크게 동감했다.
저자는 사물에 대해 쓰려했지만 사물이 기억의 문을 연 순간 그안에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의 구성도 식탁 위의 얼굴, 울타리 너머의 얼굴, 길 건너의 얼굴 등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탁 위의 얼굴’은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소홀해지기 쉬운 가족 안에서의 보이지 않는 지지와 돌봄을 돌아보고, ‘울타리 너머의 얼굴’은 지역공동체로서 이웃이 지닌 가치와 역할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길 건너의 얼굴’은 인간의 과오가 빚은 재난이 개인의 역사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사회국가적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고 다짐했지만, 다시 또 누군가를 잃고 나니, 내가 얼마나 사랑에 인색한 사람이었는 지를 깨달았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삶의 궤적들이 내 오해와 상상으로 다져진 곳도 있었다. 나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복까지 재단할 수는 없을텐데 나는 지독한 편견 덩어리이지 싶었다. ‘언제나 있었던 것, 그래서 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들은 사라진 후에야 흔적을 남긴다.’(51쪽)는 사실을 전에도 알았는데 그새 잊었다.
삶을 기차 여행에 빗댄 신부님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컸다.
(237쪽-238쪽) 기차에서 만난 승객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간다면, 서로 사랑하고 도와준다면, 그건 참 좋은 여행이 될 겁니다. 이 여행의 신비는 우리 자신이 언제 어느 역에서 내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가장 좋은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것은 잊어버리고, 용서하고, 맞춰 나가고,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나눠 주면서 말입니다. (함제도 구술, 『선교사의 여행』, 카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2020.)
내게 감동을 준 책들이 많이 있었지만 신영복 교수의 『더불어 숲』을 읽고 또 읽었던 오래전의 그 기억과 마음에 자꾸 겹쳐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