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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자전거 여행 4 - 세상 끝으로 ㅣ 창비아동문고
김남중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김남중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오래 전이라 『불량한 자전거 여행』 1권의 신호진 얘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모험이나 도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초등학생의 일탈이 다소 무모하게 생각됐고, 잔뜩 심통이 난 호진이의 모습에서 말썽꾸러기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하지만 막상 호진이를 책으로 만나니 자전거 여행을 나선 근거 있는 반항을 이해할 수 있었고, 어느덧 그의 자전거 여행을 응원하게 되었다.
호진이 가족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던 열린 결말 뒤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 2권, 3권에 이어 드디어 『불량한 자전거 여행』 4권을 만났다. 전라도에서 강원도, 부산에서 서울, 그리고 제주도 한 바퀴에 이르기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렸을 호진이가 이번에는 엄마, 외할머니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떠난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감춰져있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순롓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려는 할머니의 의지와 순롓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긴 여정의 끝에 도착한다.
작가는 호진이의 네 번째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 산티아고가 떠올랐고, 글을 쓰기 위해 실제로 중학생 아들과 산티아고 순롓길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의 긴 여정에서 볼 수 있을법한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호진이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에 현실감이 더해진다.
퇴직하면 산티아고 순롓길을 가는 게 소망인 사람보다도 내가 오히려 들뜬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 나폴레옹길이구나, 순례자 증명서가 크리덴셜이래, 근데 조개껍데기는 어떤 의미로 달아주기 시작했을까, 공립 알베르게와 사립 알베르게가 있데,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면서 호진이네 가족과 함께 걷는 기분이었다.
(225쪽)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시간은 공짜 같지만 결코 무제한은 아니다. 시간이 있을 때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많이 해둬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즐겁게 놀 수 있다.
(238쪽)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내는 시간의 무게는 다 다를 거였다.
우리는 시간의 유한함과 생과 사의 느닷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혼자서 고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오신 외할머니도, 꿈을 접고 모두가 가는 방향을 당연한 듯 선택했다던 부모님도, 그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삼촌도, 중학생이 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호진이도, 그리고 나도.... 모두가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저마다 보내는 시간의 무게가 다를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천사가 나타나’(34쪽)기도 하고 ‘천국은 딱 침대 크기만 되어도 충분’(61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잘될 거야, 하늘에 맡겨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줘요’(160쪽) 라고 나직이 자기 최면을 걸어보기도 한다.
(239쪽) 지금까지 인생은 자전거 여행과 같다고 생각했다. 자전거에서 내리면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자전거에서 내리더라도, 인생은 걸어서라도 어떻게든 계속 가야 하는 순례였다. 어디를 가든, 어떻게 가든 과정이 더 중요한 여행. 과정이 아름다우면 결과가 어떻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며칠 전 옷장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입었던 작은 수영복을 발견했다. 여름마다 바닷가에 워터파크에 함께 놀아주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때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나랑 놀아주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도전 의식을, 방황하고 흔들릴 때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려고 노렸했을까.... 호진이의 말처럼 ‘어디를 가든, 어떻게 가든 과정이 더 중요한 여행’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따라 『불량한 자전거 여행』 1~4권을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각자의 고민으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런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철없이 웃고 떠드는 연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불투명함 속에서 용기를 내고 믿음으로 같이 걸으면서 중학생이 될 새 봄을 기다리고 ‘나’를 만나는 여행을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받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