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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재구성 - 글로벌 경제위기 제2막의 도래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생긴 경제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연방준비이사회가 돈을 그렇게 찍어 댔는데 왜 미국 물가는 안 오르지? 대학에서 경제학 원론을 배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번쯤 드는 의문이다.
그 답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가 미국 국내의 낮은 수요 때문이다. 경제위기 여파로 여전히 미국 수요가 불충분해 소비자 물가지수가 낮게 나올 수 있다. 두 번째가 여전히 달러가 고평가 되기 때문이다. 달러가 강세이므로 수입물가가 하락하여 물가압력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기축통화인 달러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세인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등등 . . . 독서할 때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첫째가 즐거움이다. 둘째가 독서를 통해 우리가 모르고 있지만 알기를 원하는 정보를 간편하게 얻는 것이다.
첫 번째 의미가 아니라 두 번째 의미에서 이 책의 독서는 진가를 발휘한다. 앞서의 질문과 답변들이 그 예들이다.
이 책은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을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가 가계의 과다 차입 및 이를 통한 과소비와 부동산 투기. 둘째가 금융부문의 규제 완화 및 이에 수반한 증권화와 파생상품 거래 남발. 셋째가 달러 기축 통화 유지를 위한 달러 강세 정책 및 이로 인한 대외불균형의 심화.
책의 저자는 이러한 각 위기의 요인들을 하나씩 하나씩 검토하며 논의를 전개해나간다.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낀 것은 제로금리정책의 한계를 논의한 <제2장 제로금리정책 무용론>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정책을 금융당국이 구사하는데 그 정책효과가 기대 이하라면 그 이유로 리처드 쿠의
<대차대조표 조정론>이나 케인즈의 <유동성 함정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초저금리 정책의 미진한 성과는 다른 요인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신용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시중은행은 가계나 기업에게 대출하지 않는다. 은행들간의 여유자금 거래시장인 콜시장 역시 신용경색으로 얼어붙기 쉽상이다.
실상은 이렇다;
중앙은행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초저금리 자금을 제공한다.
또한 정부가 역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적자정책을 편다. 이 사이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으로부터 저금리로 공급받은 돈을 가지고 정부의 국채를 매입한다. 제로 금리에 가까운 조건으로 돈을 대출하여 이보다 더 높은 이자 수익을 보장하는 국채를 구매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가계와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는 대신 은행의 배만 불러간다.
이러한 상황은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국가 재정위기가 발생해야 끝이 난다.
그러나 이 경우 국가도 파산(?)할 뿐 아니라 부실 채권을 보유한 은행도 파산하기에 이른다.
물론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교과서적 설명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접근은 완만한 경기후퇴의 시기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버블이 붕괴된 경우라면 무조건적인 제로금리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저자들의 서술을 따라가노라면 이번 위기를 둘러싼 다양한 원인들의 흐름과 그것들의 교차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이 악당들이 한국은행을 터는 과정을 하나 하나 보여주듯이 이 책 <위기의 재구성> 역시 거의 일 백년 만에 한번 일어날까 날까 하는 이번 위기의 전모를 차근 차근 보여준다.
영국 캠브릿지의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은 언제가 왜 일반 시민들도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미덕은 책의 내용이 로빈슨의 대답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테일러와 버낸키 사이의 금리 논쟁에서 버낸키의 주장이 일견 더욱 더 그럴 듯 하다. 또한 버낸키의 최근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인플레 압력이 아직 낮으므로 여전히 양적 완화정책이 취해질 여력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버낸키 같은 경제학자의 말이 왜 현실을 호도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빈손의 이야기를 곱씹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