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
테일러 젠킨스 리드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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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냐고요?

아, 네, 그럼요, 왜 아니겠어요.

그런데 다들 사랑 노래의 탈을 쓰고 세상만사를 이야기하지 않나요?

[한 줄씩 보는 후기]


📍 픽션인걸 알고 시작했는데도 구글에 데지 존스를 검색했다.. 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일지 궁금해서!!! 그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난 소설.


📍 '1970년대 록밴드의 이야기'의 탈을 쓰고 세상만사 모든 이야기다 나온다. 성차별, 밴드 비인기 멤버의 울분, 운명적 사랑, 지키는 사랑, 포용과 성장, 이별, 슬픔, 분노, 약물중독 등. 그리고 이 모든 주제를 '록밴드'에 결합해 부드럽게 섞었다. 70년대 록밴드를 다룬 소설에 이렇게 밑줄을 많이 칠 줄은 몰랐다.


📍 이 소설의 플롯은 전기 작가의 짧은 코멘터리와 함께 인물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 복제를 피하고픈 소설가로서는 여러 차례 선보일 수도 없는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리드는 이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완 전 동 의


📍 개인적으로 소설은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을만큼 잊히지 않으면 재독을 잘 하지 않는데, 이 책은 전체적인 줄거리(인기 절정의 밴드는 왜 최정상에 있을 때 해체했는가?)뿐만 아니라 



데이지 앤 더 존스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태어나기 전부터 물속에서 자라는 우리는 인생에서 맞닥뜨려 속절없이 끌리는 불 앞에 어떤 선택을 해 물을 지켜낼 것인가. 어떻게 불 앞에서 증발하지 않을 것인가.



"열정은...... 불 같은 거죠. 불. 참 좋죠, 네. 하지만 우린 물로 된 존재라고요. 물이기 때문에 살아나갈 수 있는 거예요.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거예요.

나의 가족은 나의 물이었어요. 난 물을 선택했어요. 백번 다시 고른다 해도 물을 고를 거예요. 그리고 데이지도 물을 찾길 바랐어요. 내가 그녀의 물이 될 수는 없으니까."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이란건 없다. 상황이, 자본이, 분위기가, 사회문화가 만들어놓은 어떤 생각들이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데이지와 빌리는 같이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틀림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상대가 나와 똑같은 반쪽임을 안다. 말 그대로 눈빛만 봐도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을 드디어 만났음을 안다.

하지만 빌리에게는 커밀라와 세 딸이 있고, 빌리는 자신을 포용해주는 커밀라와 딸들을 떠날 생각이 없다. 빌리는 데이지를 만나기 훨씬 전에, 커밀라와의 가정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선택'을 했고, 이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데이지는 그런 빌리의 생각을 알고 있고, 언제든 본인 내키는 대로 하던 데이지는 이제 다시는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커밀라의 조언에 따라 그 길로 밴드를 떠나 재활원에 들어간다(데이지는 심각한 약물 중독이다).


그들 뿐인가. 캐런은 그레이엄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피트는 애초에 락밴드의 일원으로 평생을 살 생각이 없었고, 인기 절정인 밴드가 해체하기 전부터 탈퇴하기로 선택했다. 시몬은 데이지를 지키기로 선택했고, 데이지는 그런 시몬에게 연락해 도움을 구하기를 선택했다.


혹시 당신은 당신만의 선택 치트키가 있는가? 이것과 저것 중 고민될 때 선택하는 방법 말이다. 단언컨대 그런 '선택 치트키'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의 연속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500쪽이 넘는 소설에서 여러 인물의 삶에 몰입해 그들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을 나는 추천한다. 커밀라의 선택이 당신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커밀라의 선택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캐런의 선택보다 그레이엄에게 더 동감할 수도 있고, 캐런의 선택에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누구의 어떤 선택에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해보자. 성격검사를 하고 결과지를 받는 것보다 본인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내가 어딘가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데 세상도 그걸 알아줄 때,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빛이 날 때예요. 가능성이야말로 불순물 제로의 존나 순수한 재미라고요.

"세상엔 꿈을 쫓아가는 사람들만큼 악몽을 쫓아가는 사람들도 있나 봐요."

데이지에겐 그런 자유가 필요했어요. 그러려면 엄청난 자신감이 필요했죠. 데이지에겐 그런 종류의 자신감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늘 잘했어요. 여기서 자신감은 망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잘하니까 괜찮은 게 아니라.

우리가 예술에서 바라는 것도 결국 그런 것 아닌가요? 누군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내어줄 때? 내 심장의 한 조각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는 것. 날 이끌어 나의 진실로 인도해주는 것.

팬에게 사인해줄 때마다 "버텨요. 데이지 J"라고 썼어요. 하지만 어린 여자 팬을 보면-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었어요-이렇게 써줬어요. "야망을 가져, 작은 새. 사랑을 담아,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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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한국사 - 5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이해되는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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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씩 보는 후기]


📍 "역사 이야기 앞에서 주늑이 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라"

고조선 건국부터 현대까지 딱 한 번 읽고 평생 써먹는 필수 한국사 수업!


📍 이 책은 학습서가 아니라 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


📍 한국사의 주요 사건을 '이야기'로 쉽고 재밌게 전달할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해 지금(현생)을 사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알려 준다. 그리고 그런 조언이 위로가 된다.


📍 아래 질문이 궁금하다면 책으로 확인해보세요📖

-개천절은 왜 10월 3일일까?

-심부름을 가서 오지 않는 사람을 왜 함흥차사라고 할까?

-불국사 삼층석탑과 다보탑은 모양도 다른데 왜 굳이 불국사 대웅전 앞에 나란히 배치한 것일까?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이겨낸 경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강한 상대와 맞서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일 것입니다. - P40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올바른 상상력을 심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자꾸 실수를 하게 되거든요. 내가 이런 선택을 해도 될까?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맞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역사입니다. 그래서 정의가 필요합니다. 일제에 빌붙은 사람은 결국 패가망신한다는 결과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 P325

5.18민주화운동이 광주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광주에서만 시위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시위는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었지요. 다만 다른 곳과 달리 광주에서는 시위가 멈추지 않았던 거지요. 이는 곧 부산이 광주가 될 수 있고, 서울이 광주가 될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광주에 빚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 P340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나요?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추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던 안중근처럼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의 교훈들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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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존 프럼 지음 / 래빗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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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럼. 그는 누구인가

작가의 필명인 '존 프럼'은 화물신앙에서 숭배하는 가상의 인물에게서 따온 것이다. 존 프럼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한국어로 검색하는 것보다 작가의 말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생존의 공간이 서양인들의 식민지로 전락한 원주민들이 서양인들의 침략을 쓸어버릴 빗자루(Broom) 같은 존재로 만들어 낸 신앙이 존 프럼이다.


'나에게 있어 존 프럼이란 이름은 세상에는 늘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면이 있다는 걸 상기하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존 프럼이 멋진 저항의 상징이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395쪽).'


'세상에는 늘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면이 있다'는 이 책을 관통하는 문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서평이나 작가의 말을 먼저 읽는 사람들은 '스포일러'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독특한 액션누아르하드SF"

SF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을 주로 소프트 SF, 명확한 과학 이론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을 주로 하드 SF라고 한다. 하드 SF는 매니아층이 탄탄하지만, 그만큼 매니악하고 독자의 판단이 냉철한 분야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드SF 팬이라면, 이런 소개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하드 SF 단편집'이 맞다. 일곱 개의 수록작 중 처음과 마지막 작품을 제외하면 명확한 과학 이론이나 가설이 작품의 바탕이다. 작품집의 문을 여는 <노아의 어머니들>은 소프트 SF라고 하기도 애매한, 발전한 기술 과학 기술이 조금 나오는데 작품의 메시지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작이 이 책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기에 탄탄한 팬층이 쌓이지 않은 작가의 SF 작품집으로는 탁월한 시작이다.

마지막 작품인 <콧수염 배관공을 위한 찬가>는 우주가 배경이기는 하나, 소프트 SF에 가까워 보인다. 재밌는 글에 적당히 희망적인 메시지와 결말까지. 전체적으로 열린 결말과 약간의 비극으로 끝나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가볍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우울한 책이었다'는 생각으로 책을 기억하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장 읽고 싶은 작품이 꼭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작품의 시작과 끝은 목차를 따라가길 추천한다.



일관성 있게 드러나는 작가 특유의 주제의식

"그 진실이 나를 구원하기를. 아니, 나를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 해도······(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167쪽)."


"일단 시나리오를 구매하면 그 시나리오가 진실이 될 거예요(나의 디지털 호스피스, 233쪽)."


지금 나의 세계는 진실이 맞는가? 진실은 무엇인가? 진실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진실은 단일한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의 발현이 맞는가? 책 속 단편들을 읽다 보면 끊임없이 드는 생각이다. 소설집은 주로 하나의 주제 또는 흐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만큼 주제가 좁고, 주제의식이 강한 책은 처음이었다. 존 프럼은 책 전체에 걸쳐 '진실이 무엇인가'하는 철학적인 주제를 여러 번 다른 상황에서 생각하게 하는데 탁월하다. 철학적인 질문을 참신한 소재를 가진 SF에 엮어 보여주는 것에서 재미 이상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다음 작품의 주제가 언뜻 예상 되면서도 새로운 길로 갈 것임을 알기에 계속 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동 방식이 비슷한 테마파크

아쉬운 점은, 몇몇 작품에서 '진실' 이라는 '반전'을 주로 다른 사람이 대사로 설명해 준다. 단편소설이라는 분량의 한계 때문일 수 있으나, 반전이 급하게 알려져 아쉬웠다. 그리고 기록을 남기는, 또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 소재의 참신함과 별개로 플롯이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SF로 보는 철학

이 소설집은 'SF로 보는 철학'이다. 읽는 재미와 작가의 상상력을 엿보며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읽을 수 있다. 필자가 서평에 적은 '진실'뿐만 아니라 '노동의 의미', '자유의지', '권태' 등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주제가 많기 때문에 철학, 인문학, SF 세 장르 중 하나 이상의 장르에 관심 있다면 모두 재미있게 읽을법한 소설집이다.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

끝으로, 새로운 소재가 많았던 하드SF소설집인데 비해 표지 디자인이 담백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나와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든다. 뫼비우스의 띠를 중앙에 배치하고 작품에서 하나씩 키워드를 뽑아 띠를 돌아가며 그리거나, 제목을 시계방향을 돌리며 인쇄하거나, 지금보다 원색을 더 많이 사용했으면 더 많은 독자에게 눈에 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발표 당시 <테세우스의 배>였던 표제작의 이름을 <영원의 모양으로 찻잔을 돌리면>으로 변경한 선택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필자 역시 강렬한 제목에 이끌렸고 쉽게 잊히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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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자살의 원인부터 예방까지, 25년의 연구를 집대성한 자살에 관한 모든 것
로리 오코너 지음, 정지호 옮김, 백종우 감수 / 심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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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스스로 자행한 죽음을 설명하는 데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당연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 책을 편 당신은 자살을 이해하고 예방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당신은 아마, 첫 문장에서부터 마음이 아플 것이다. 당연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자살이라는 표현을 한국은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한 티비 프로그램에 전문가가 출연해, '극단적 선택'은 사망자에게 선택이 있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에 틀린 표현이며 그런 표현이 남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자살에 대한 이해역시 떨어뜨린다고 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는 프로그램이고 화제도 자주 되기 때문에 이제 나는 언론에서 '극단적 선택' 사용을 지양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얼마 전 또 다른 유명인이 자살했음을 나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알았다.



이 책은 자신을 자살 연구로 이끈 지도 교수와 소중한 친구를 자살로 떠나보낸 사별자이기도 한 저자가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매일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바치는" 희망의 책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2003년부터 2021년까지 중 2017년도 한 해를 제외하고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살을 틀리게 표현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자살을 이해하고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이 책은 특히 더 의미있다.




단언컨대 자살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절박한 행동이고,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표출하는 것이다.


속박감과 자살은 불가분의 관계다. 사람들은 고통에 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그 고통에 갇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때 자살을 시도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통으로 정신이 소진된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살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 정반대의 조치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일을 베푸는 거라고 생각한다. (66~67쪽)


유독 긴 밤이 있다. 명백한 이유없이 불안하고, 증거가 없는 생각인걸 알면서도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는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특히 시간이 안 가는 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최대한 빨리 잠들어 아침을 만나려 노력한다. 이 불안은 대부분 달이 주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갇혔다는 느낌'은 자살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갇혔다는 느낌'을 읽었을 때 그런 밤이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는걸 아는데도 마치 이 밤이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데, 낮과 밤의 경계 없이 갇혔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에게 자살은 과연 출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은 단순한 질환과 병변의 징후가 아닌, 의식적인 행동이다.


자살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복합적이다. 자살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행위'이기 때문에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자살을 행위라고 인식하는 것이 자살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시작이다.


자살은 정신질환의 산물이 아니다.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 중 자살에 이르는 사람은 겨우 5퍼센트 미만이다(114쪽).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고자 할때, 자살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다양한 심리적 고통과 더불어 많은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 한 개인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면서까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거나 괴로움을 덜려고 한다면, 이들이 느끼는 고통이나 괴로움이 어떨지 상상해보자(85쪽). 모든 자살 자해 행위는 정도에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93쪽).




친구나 가족이 자살할까 봐 걱정된다면 제발 이들에게 직접 물어보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아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이 손길을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 (84쪽)

주변에 누군가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자. 때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도 괜찮다는 것을 이들이 인정하도록 도와만 주어도 충분하다. (249쪽)


책에는 한 번의 질문을 시작으로 친구를 구하거나, 동네 길모퉁이에서 만나 괜찮냐고 물어본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지인 덕분에 위기를 넘긴 사례가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한 번의 다정한 인사로 자살 위기를 넘기거나/넘기게 해준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다정할 필요까지도 없다. 걱정되는 친구가 있다면, '연락이 안된다'고 하지 말고 '연락을 남기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할까 두렵다면, 그 사람이 언제 나약해지는지 알아두고 확인하면 된다. 결국 한 번의 질문,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경청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많은 생각보다 많은 이를 구할 수 있다.




이 책을 감히 모두에게 추천한다.


40초마다 한 명씩,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살로 사망한다. 자살로 사망한 고인을 아는 지인의 수는 자살 사망자 한 명당 135명(32쪽)이다. 또, 자살은 정신질환의 결과가 아니다. 한마디로 누구도 자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 중에 자살 사망자가 없다면 자살에서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잊을만하면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들리는 지금, 우리는 모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자살 생존자나 사별자 분들께 이 한 권이 모든 위로와 도움을 줄 수는 없더라도, 이 책이 한 조각 이상의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스로가 자살 고위험군이 됐을 때는, 시야가 터널같아서 이 책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 자살 이해도가 높아지고, 위험 신호를 잘 알아채며, 적당한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책의 끝부분, 359쪽에는 도움이 될 만한 한국 기관 번호가 삽입되어 있다. 국제 기관 url도 있으니 꼭 참고하길 바란다. 더불어 참고문헌 다음 417쪽에 찾아보기도 있으니 책 이용에 활용하길 바란다.


이 책을 한국에 가져온 심심 출판사(푸른숲 출판사)와 정지호 번역가, 무엇보다 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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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사느냐 묻는다면
미나미 지키사이 지음, 백운숙 옮김 / 서사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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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씩 보는 후기]


📍 괴로움은 욕심과 집착이 불러오는 것임을 깨닫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 불교라는 도구를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지 알려주는 책.


📍 불교에 관련된 책이 그렇듯, 엄청난 해결책을 주는건 아니지만 이런 길도 있다고 잔잔히 알려줌. 한번 읽고 말기보다는 근처에 두고 그때그때 내키는 부분을 또 읽기 좋음.


📍 아침에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아침에 또는 자기 전에 침대에서 읽기 좋은 책!


📍 아담한 크기, 귀여운 표지 디자인에 내부 글자는 갈색 프린트! 편안하게 읽기 좋아요👍🏻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안간힘을 써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나야 할 때를 골라 세상에 태어났다면, 온 힘을 다해 사는 모습도 이해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날 때부터 수동적인 존재다. - P37

지금 자리에서 꽃피우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방법을 달리하면 드물게 꽃이 피기도 한다. 이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 충분하다. - P55

애당초 인생 자체에 이렇다 할 의미가 없으니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괜찮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구멍이 난 자신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삶을 견디는 방법을 깨쳐야 한다.

한번 실패를 맛보면 이리저리 따져보던 마음이 싹 가신다. 생각대로 되지 않거나 꿈이 산산이 조각나면, 이익을 따져가며 행동하기보다는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꿈과 희망이 오히려 인생의 걸림돌이 될 때도 있다. 꿈이든 희망이든 어지 보면 마약이나 다름없다. 이루어질 리 없는 꿈을 하염없이 붙들고 있는 건 ‘꿈‘이라는 환상이 걷혔을 때의 현실이 두렵기 때문이다. - P74

‘이해‘는 말하자면 ‘합의된 오해‘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다는 말은 서로를 오해해서 합의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서로를 저마다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 받아들였을 뿐이다. - P131

내가 상대를 용서한다는 사실 자체를 용서해야 진정한 용서다. ‘용서하기‘를 용서해야 한다. - P174

딱히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러니 죽음을 넘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뜻하지 않게 태어난 인생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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