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자살의 원인부터 예방까지, 25년의 연구를 집대성한 자살에 관한 모든 것
로리 오코너 지음, 정지호 옮김, 백종우 감수 / 심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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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스스로 자행한 죽음을 설명하는 데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당연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 책을 편 당신은 자살을 이해하고 예방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당신은 아마, 첫 문장에서부터 마음이 아플 것이다. 당연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자살이라는 표현을 한국은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한 티비 프로그램에 전문가가 출연해, '극단적 선택'은 사망자에게 선택이 있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에 틀린 표현이며 그런 표현이 남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자살에 대한 이해역시 떨어뜨린다고 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보는 프로그램이고 화제도 자주 되기 때문에 이제 나는 언론에서 '극단적 선택' 사용을 지양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얼마 전 또 다른 유명인이 자살했음을 나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알았다.



이 책은 자신을 자살 연구로 이끈 지도 교수와 소중한 친구를 자살로 떠나보낸 사별자이기도 한 저자가 "자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매일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바치는" 희망의 책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가운데 2003년부터 2021년까지 중 2017년도 한 해를 제외하고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살을 틀리게 표현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자살을 이해하고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이 책은 특히 더 의미있다.




단언컨대 자살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절박한 행동이고,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표출하는 것이다.


속박감과 자살은 불가분의 관계다. 사람들은 고통에 끝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그 고통에 갇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때 자살을 시도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통으로 정신이 소진된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살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 정반대의 조치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일을 베푸는 거라고 생각한다. (66~67쪽)


유독 긴 밤이 있다. 명백한 이유없이 불안하고, 증거가 없는 생각인걸 알면서도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는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특히 시간이 안 가는 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최대한 빨리 잠들어 아침을 만나려 노력한다. 이 불안은 대부분 달이 주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갇혔다는 느낌'은 자살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갇혔다는 느낌'을 읽었을 때 그런 밤이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는걸 아는데도 마치 이 밤이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데, 낮과 밤의 경계 없이 갇혔다는 느낌을 받는 이들에게 자살은 과연 출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은 단순한 질환과 병변의 징후가 아닌, 의식적인 행동이다.


자살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복합적이다. 자살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행위'이기 때문에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자살을 행위라고 인식하는 것이 자살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시작이다.


자살은 정신질환의 산물이 아니다.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 중 자살에 이르는 사람은 겨우 5퍼센트 미만이다(114쪽).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고자 할때, 자살한 사람을 이해하고자 할 때에는 다양한 심리적 고통과 더불어 많은 요인을 살펴봐야 한다. 한 개인이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면서까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거나 괴로움을 덜려고 한다면, 이들이 느끼는 고통이나 괴로움이 어떨지 상상해보자(85쪽). 모든 자살 자해 행위는 정도에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93쪽).




친구나 가족이 자살할까 봐 걱정된다면 제발 이들에게 직접 물어보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아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이 손길을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 (84쪽)

주변에 누군가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자. 때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도 괜찮다는 것을 이들이 인정하도록 도와만 주어도 충분하다. (249쪽)


책에는 한 번의 질문을 시작으로 친구를 구하거나, 동네 길모퉁이에서 만나 괜찮냐고 물어본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지인 덕분에 위기를 넘긴 사례가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한 번의 다정한 인사로 자살 위기를 넘기거나/넘기게 해준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다정할 필요까지도 없다. 걱정되는 친구가 있다면, '연락이 안된다'고 하지 말고 '연락을 남기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할까 두렵다면, 그 사람이 언제 나약해지는지 알아두고 확인하면 된다. 결국 한 번의 질문,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경청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많은 생각보다 많은 이를 구할 수 있다.




이 책을 감히 모두에게 추천한다.


40초마다 한 명씩,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살로 사망한다. 자살로 사망한 고인을 아는 지인의 수는 자살 사망자 한 명당 135명(32쪽)이다. 또, 자살은 정신질환의 결과가 아니다. 한마디로 누구도 자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 중에 자살 사망자가 없다면 자살에서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잊을만하면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들리는 지금, 우리는 모두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자살 생존자나 사별자 분들께 이 한 권이 모든 위로와 도움을 줄 수는 없더라도, 이 책이 한 조각 이상의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스로가 자살 고위험군이 됐을 때는, 시야가 터널같아서 이 책이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 자살 이해도가 높아지고, 위험 신호를 잘 알아채며, 적당한 도움을 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책의 끝부분, 359쪽에는 도움이 될 만한 한국 기관 번호가 삽입되어 있다. 국제 기관 url도 있으니 꼭 참고하길 바란다. 더불어 참고문헌 다음 417쪽에 찾아보기도 있으니 책 이용에 활용하길 바란다.


이 책을 한국에 가져온 심심 출판사(푸른숲 출판사)와 정지호 번역가, 무엇보다 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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