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삽화책처럼, 단어에 이미지를 그리고 이미지에 단어를 접목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해 이미지와 단어 모두 끈질기게 새로이 만들어 냈다. 그림과 시를 짝짓고, 때로는 문학과 성서의 구절을 복제화에 바로 옮겨 써서 위로의 콜라주를 창조해 냈다.
이렇게 말과 이미지를 중첩하는 과정은 그의 광적인 상상력을 아주 만족시키고 큰 위로가 되어 장차 그가 세상을 보고 세상에 맞서는 주된 방식이 될 터였다.
- P194
핀센트의 외로움과 갈망이 곧 다시 종교적 형태를 띠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는 도르드레흐트에 도착하고 나서 한동안,
복음주의자의 열정을 부인하고 사람이 반드시 종교적 소명을 추구하지 않아도 종교적일 수 있다는 아버지의 주장을 받아들인 듯했다.
그러나 핀센트의 별난 습관과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향은 그런 어중간한 길을 오랫동안 견뎌 낼 수 없었다. 결국 도르드레흐트에서 같이 살았거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 말에 따르면,
핀센트는 영국에서 자신의 순례자 같은 행로의 특징이었던 종교적 열광으로 되돌아갔다.
괴를리츠는 "엄격한 신앙심은 그라는 존재의 핵심이었다." 라고 말했다. 데르크 브라트는
"그는 과도하게 종교에 관심이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