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희망 -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한 찬란한 생존의 기록
스테퍼니 랜드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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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찌들어 살아온 나는 이번 달, 이번 주, 가끔은 지금 이 시간 이후의 일을 내다보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모든 집의 모든 방을 청소할 때와 동일하게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와 같은 식으로 내 인생을 구분했다.
……
한 번에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면서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문제들을 해결해나갔다. 이렇게 근시안적으로 생활해온 덕분에 그간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 미래를 꿈꾸기란 불가능했다. ˝ <조용한 희망> 367p
28세 싱글맘의 고군분투기 <조용한 희망>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오래된 격언이 아직도 가능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

누구의 인생에도 폭풍우가 닥칠 수 있지만 우산과 비옷을 빌려서라도 버티면 언젠가는 비바람이 그치고 태양이 솟으리라는 믿음을 어떻게 키워갈 수 있을까. ​

이런 모든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뒷받침과 더불어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친철할 수 있을까.

​현재진행형인 스테파니의 분투를 읽으며 우리 주변의 스테파니들을 생각해본다.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노동을 빚지고 있는 우리가 서로의 노동에서 이름과 얼굴을 지우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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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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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생겨나는 일이다.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 때문에 오히려 북극곰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처럼 신데렐라를 만나고 나면 신데렐라의 수동적인 세계관에 물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리베카 솔닛이 다시 쓰는 신데렐라는 어떤 이야기일까.기대만큼이나 실망할 준비도 했다.
어린시절 매혹당한 동화에 뿌리내린 편견과 모순, 가부장제의 그림자 등을 깨닫고 실망이 컸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내걸고 다신 쓴 버전 역시 교조적인 ‘데칼코마니’인 경우가 많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솔닛은 역시 배신하지 않는다. 어떤 아이가 처음 만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해방자 신데렐라>라면 재투성이 아가씨의 역경과 변신, 반전의 매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발견되기를,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자기자신이 되는 용감하고도 아름다운 서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변신의 연금술은 재투성이 옷을 벗어던진 엘라 뿐 아니라 친구가 없던 왕자(왕자 이름은 네버마인드다)나 머리 손질과 옷 장식을 좋아하는 새언니들, 더 나아가 말구종이 된 도마뱀과 여자 마차꾼이 된 커다란 회색 쥐에게도 열려 있다.

그렇다고 상상속에나 있을 법한 허황된 유토피아는 아니다. 마법은, 가능하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모요정은 말한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지만 그러려면 일단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해야 해˝

<해방자 신데렐라>는 올바름을 이유로 이야기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대하여,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이유가 있는 존재들의 관계에 대하여,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방식으로, 어떤 설교나 빤한 의도도 없이 그려낸다.

˝가장 자기다운 모습이 될 수 있게 돕는 것이 진짜 마법˝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마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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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 세계를 바꾼 다섯 가지의 위대한 서사
바츨라프 스밀 지음, 솝희 옮김 / 처음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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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나는 새가 멀리 본다지만 어떤 일에나 대가는 따르는 법. 높게 날면 작게 볼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책 <대전환>은 높은 고도로 거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미시적인 정확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분투가 돋보이는 저작이다. 큰 질문의 그물을 던지는데 답을 찾기 위한 그물망은 촘촘하달까. 줌 인과 줌 아웃을 오가면서 통계학자로서의 강점을 앞세워 다섯 가지 대전환(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을 서술하는 저자의 솜씨는 노련하다.

‘세계가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이라는 가정을 시간 축에 응용한 듯한 방식의 통시적 통계를 통해 대전환의 양상을 꿰뚫는다. 덕분에 통계상의 복합 단위를 여럿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교통량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여객의 수송량을 뜻하는 인킬로(pkm: passenger-kilometer)가 등장한다. 1인킬로는 한 사람의 여객을 1km 운송한 것을 나타내는데 전세계 총인킬로는 1950년 280억pkm에서 2017년 약 7조5천억pkm으로 증가했으며, 2017년의 수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1000km를 비행하는 것과 맞먹는다.

천만 명 이상이 사는 메가시티는 1950년 전 세계에 뉴욕과 도쿄 등 단 2곳이었지만 2016년 현재 31곳으로 급증했다.

제곱킬로미터(㎢ )당 총인구로 표현되는 밀집도의 경우 파리는 2만명, 뭄바이는 3만명이다. 마닐라는 4만명인데 가장 밀집된 거주지를 기준으로는 5만명을 넘어간다. 이 정도의 밀집도는 제곱미터당 2kg이 넘는 인간 바이오매스(단위 면적당 생물체의 중량, 또는 단위 시간당 단위 면적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무게)라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포유동물보다 많다.

밀 1kg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농부의 노동력은 1800년 뉴잉글랜드에서 7분이었다면 2000년에는 6초 미만으로 줄었다.

이 같은 통계의 벽돌로 공들여 쌓아 올린 대전환의 양상은 단단하지만 앞으로의 미래와 관련해 저자는 아무것도 장담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유한한 행성에서, 무한한 성장을 믿는 사람은 미쳤거나 경제학자’(케네스 볼딩)라는 말을 인용하며 “2020년에 우리가 2100년의 세계를 예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우스운 생각”이라고 일갈한다.

대전환을 논하는 야심에 비추어 볼 때 다소 평이하지만 사실 야심이 클수록 불가피한 결론이기도 하다. 다만 큰 틀에서 비관적 낙관주의를 견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저자는 <팩트풀니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낙관주의가 생략하거나 간과한 ‘선별적 사실 무관심’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살짝 500페이지를 넘는 ‘얇은 벽돌책’ 이지만 농축적인 사실에 기반하고 있어 한 줄 한 줄 파악하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것보다는 큰 그림에 집중해서 일별하고, 주제별로 곱씹어보며 유사 주제의 다른 책과 병독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독법일 것이다.

음식들 간에도 서로 흡수율을 높이거나 영양상 보완이 되는 궁합이 있는 것처럼 <대전환> 역시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 등 각 분야별로 한국적 좌표에서 주제를 바라보는 책과 함께 읽으면 흡수력이 높아질 것이다.

최근작 가운데 <인구 미래 공존>(인구), <식량위기 대한민국>(식량), 에너지는 <2050에너지 제국주의>(에너지), 환경은 <지구는 괜찮아, 사람이 문제지> (환경) 등을 함께 읽어볼 만한 병독 목록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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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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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에 필요한 돈이 몇 억”이라는 뉴스가 단위를 갱신하며 단골 기사거리가 되는 ‘공포마케팅의 시대’에 평탄한 노후에 대한 기대가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 커진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후반전을 앞두고 읽은 <노마드랜드>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함께 가져온 전령사같다.

나쁜 소식은 나이 들어 한 번의 시행착오는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년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임금은 낮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대에 전통적인 주거지 밖으로 밀려나 최저임금을 벌려고 분투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나이트메어’ 는 노후에 대한 불안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대거 등장한 ‘하우스리스’ 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은 한 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악몽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은 모자이크 벽화다.

책이 전하는 좋은 소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타이어 떠돌이’, ‘가솔린 집시’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하우스리스’의 삶이지만 결코 스스로를 ‘홈리스’로 내팽개치지 않는다. 추방된 이들, 낙오자들, 우리 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라고 자조하는 대신 여행자로서의 삶을 일군다. 길 위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노동에 의지해 삶을 이어가지만 꿈과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무엇보다 바퀴위의 집이어서 가능한 우정과 친교의 세계를 보여준다. ‘덜 가지는 대신 더 경험하는 자유와 혁신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삶의 청구서를 메우기 위한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인생 사이 어딘가에 있다. 우리 모두는.

저자는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혹독하게 영혼을 시험하는 종류의 고난을 통과하면서 힘겹게 싸우는 동시에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며 노마드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놀라운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예산, 고경험’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덜 쓰고 삶을 더 즐기는” 삶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이들의 우정과 연대는 자신을 재창조하면서 새로운 자유를 일구는, 길 위의 새로운 희망을 증거한다. “희망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이 나라 전체만큼이나 넓은, 기회의 감각. 뼛속 깊이 새겨진,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신념. 그것은 바로 앞에, 다음 도시에, 다음번 일자리에, 다음번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마주침 속에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들 노마드 인생은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미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뉴노멀’의 정체를 알려줄 ‘지표종’인지도 모르겠다.내게는 삶의 방향과 속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정표가 되어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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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디자인
사와다 도모히로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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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시각장애라는 삶의 ‘레몬’으로 ‘소수자 시장’이라는 레모네이드를 만들어가는 멋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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