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후에 필요한 돈이 몇 억”이라는 뉴스가 단위를 갱신하며 단골 기사거리가 되는 ‘공포마케팅의 시대’에 평탄한 노후에 대한 기대가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 커진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후반전을 앞두고 읽은 <노마드랜드>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함께 가져온 전령사같다.

나쁜 소식은 나이 들어 한 번의 시행착오는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년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임금은 낮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시대에 전통적인 주거지 밖으로 밀려나 최저임금을 벌려고 분투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나이트메어’ 는 노후에 대한 불안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대거 등장한 ‘하우스리스’ 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은 한 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악몽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엮은 모자이크 벽화다.

책이 전하는 좋은 소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타이어 떠돌이’, ‘가솔린 집시’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하우스리스’의 삶이지만 결코 스스로를 ‘홈리스’로 내팽개치지 않는다. 추방된 이들, 낙오자들, 우리 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라고 자조하는 대신 여행자로서의 삶을 일군다. 길 위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노동에 의지해 삶을 이어가지만 꿈과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무엇보다 바퀴위의 집이어서 가능한 우정과 친교의 세계를 보여준다. ‘덜 가지는 대신 더 경험하는 자유와 혁신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삶의 청구서를 메우기 위한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인생 사이 어딘가에 있다. 우리 모두는.

저자는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혹독하게 영혼을 시험하는 종류의 고난을 통과하면서 힘겹게 싸우는 동시에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며 노마드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놀라운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예산, 고경험’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덜 쓰고 삶을 더 즐기는” 삶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이들의 우정과 연대는 자신을 재창조하면서 새로운 자유를 일구는, 길 위의 새로운 희망을 증거한다. “희망은 앞으로 나아가는 힘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이 나라 전체만큼이나 넓은, 기회의 감각. 뼛속 깊이 새겨진,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신념. 그것은 바로 앞에, 다음 도시에, 다음번 일자리에, 다음번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마주침 속에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들 노마드 인생은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미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뉴노멀’의 정체를 알려줄 ‘지표종’인지도 모르겠다.내게는 삶의 방향과 속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정표가 되어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