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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ㅣ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캐리커처
✍️ 차별과 혐오, 그 교묘한 괴롭힘의 세계에 대항하기
오래 전, 신규교사 시절에 청소년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책을
읽다가 충격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감정 읽기 능력‘이 충분하다면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일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일반적으로 감정 읽기 능력이 뛰어나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고
이에 공감하면서 반응하는 힘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감정 읽기 능력이 뛰어난 일진 학생들이
어떻게 괴롭혀야 상대방이 더
괴로운 감정을 느낄 지 잘 알고 있어서
더욱 악의적으로 괴롭힐 수 있다는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감정 읽기 능력과 공감 능력은 별개로,
지독하고 혹독한 방식으로
상대방을 ’밀어내는‘ 일이 가능할 수 있음을
써놓은 글이었다.
이를 읽으면서 감정 읽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감정을 잘 읽어내기 때문에
더 상대방을 괴롭히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정도가 크든 작든 그런 상황이 발생하거나
그런 상황임을 깨달았을 때,
교육 현장에서 교사인 나는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과 공감과 존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나는 다시 그런 일상의 장면을 마주한다.
“그런 말이 차별이고 혐오 발언이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세상일은 배운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돌봄이란 타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일이고
욕설은 그 반대라서,
다문화 교육을 열심히 들은 녀석일수록
어떤 식으로 타인의 상처를 건드려야
가장 효과적일지를 잘 알았다.“ (p.22)
“인터넷에는 기혼 여성, 미혼 여성,
유색 인종,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육체 노동자, 장애인, 배달부, 저학력자, 지방민,
무주택자, 기타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조롱이 마련돼 있었고,
조롱은 곧잘 유머의 탈을 뒤집어썼다.
비웃는 일과 웃는 일은 고작해야 한 음절 차이니까.”(p.48)
’똑똑‘하기 때문에 더 지능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이들,
’배움‘을 통해 더 교묘하게
선을 갈라놓을 수 있는 아이들.
힘의 우위를 점령한 아이들이 지배하는 교실 안에서
학생들은 유머의 탈을 뒤집어쓴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고
그 안의 누군가는 조용히 숨죽이고 소외된다.
’몰라서‘ 저지르는 잘못도
시정해야 할 잘못임에 틀림없지만,
’알고도‘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
대항하는 힘은 어떻게 길러야 할까.
어떻게 대응하고, 대항하고, 바꾸어 나가야 할까.
소설의 주인공은 남아시아 스리랑카 출신의 어머니를 둔
한국인 청소년(17세, 고등학생) 김주현이다.
소설에는 주인공 이외에도 필리핀 부모님을 둔
정노아와 요한이 등장한다.
납작하고 단순하게, ’이주배경학생‘이라는
표현 하나로 뭉뚱거려 버릴 수 없는
아이들의 삶이 송곳처럼 삐죽 삐죽 튀어나온다.
이들의 삶은 저마다 모두 다른 모양을 한 채,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른데, 우리 삶을 하나로
납작하게 눌러버려도 되는 건가요?“라고
항변하는 것만 같다.
줄곧 친구들이 부르는 멸칭의 별명에서부터
선생님께서 작성해 주신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세특까지
’자기 자신‘이 하나의 부품으로 쓰이는 상황에서
작가는 기존의 전형성을 탈피하여
서사의 ’당사자성‘을 강조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당사자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말에 대하여.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당사자들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청소년기의 내게 ”다들 그렇게 화나 있다.“라고,
혹은 ”정반대의 가면을 번갈아 쓰는 것 자체는
비열한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라는 개념을
과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 주는 이야기가 더 많았더라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p.164)
두려움과 정체성, 경계와 무경계
그 사이를 넘나들면서
이 이야기는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음을 생각한다.
그게 어떤 경험이든,
선 밖에서 선 안 너머를 바라본 경험이 있다면
이 말에 더 적극 동조하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 이 선을 발로 뭉개어 지워 버리고,
함께 손을 잡고 선이 지워진 땅 위에 선다.
이는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서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