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 유어 드림 -상
시드니 셀던 지음, 정성호 옮김 / 북앳북스 / 2000년 5월
평점 :
합본절판


'내 안에 나 아닌 또 다른 이가 존재한다...?'

어둑어둑한 밤, 좁은 골목길을 지날 때 누군가가 날 미행하는 느낌이 든다면, 외출했다가 돌아왔을 때, 누군가의 흔적이 방 안에 감돌고 있다면,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심지어는 잠들어서까지도 누군가가 나를 항상 주시하고 있는 느낌에 사로잡힌다면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소설은 마치 어느 스토커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그린, 심리적 추리 소설처럼 시작되어진다. 깨어진 거울 속에 비치는 한 여자의 여러 얼굴이 그려진 책 표지처럼, 갈갈이 깨어지고 찢어진 한 여성의 삶을 묘사해내려는 듯. 그런데 1권 중반 이후로 치닫으면서, 소설은 느닷없이 독자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강렬하게.

이제까지 소설에서 묘사되어온 세 여성은 모두 한 사람이라는!

소설의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전혀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내려간 책이었기에, 더더욱 그 느낌은 강렬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모든 긴장감이 일시에 쭉 해소되어버렸다. '그 다음부터 묘사되는 것은 주인공 여자의 '다중인격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일련의 일들 뿐이겠지? 별로 재미도 없겠군.'하면서 무심코 한 장 두 장 넘기는데....

이 소설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1권에 이어지는 2권은 1권을 능가하는 더한 재미와 스릴을 제공해주었다. 함께 단순히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문제들까지도 제시해주었다.

다중인격장애라는 병.

그건 단순히 여러 사람의 인격이 한 인물 속에 내재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애슐리의 모든 생애에 걸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했던 기억의 상처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인격이 바로 토니와 알레트였다.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성격의 토니와 조금은 조심스러우면서 자신의 할 말은 정확하게 주장할 줄 아는 여인 알레트. 그들의 성격은 애슐리의 무의식 속에 내재한 자기 자신은 밖으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본성적인 모습에 의거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애슐리 자신은 정작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항상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문제의 원인이 된 아버지에게조차도 그녀는 늘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항상 억제되어 온 본성적인 아픔이 표출되어 그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애슐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었을까.

그녀들은 오로지 애슐리 자신의 일부- 즉, 애슐리에게 있는 공격적이고 본능적인 면이 이끌어낸 인물군-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들의 존재는 오히려 더 애슐리를 병들게 하였고, 소설 속에서는 치명적이고 엽기적인 살인에까지 번지게 된 것이었다.

소설은 처음 잡았을 때부터 놓을 때까지 쉴틈없이 나를 그 속으로 잠겨들게 만들었다. 마치 내 자신이 애슐리가 되어버린 듯한. 소설을 다 읽고 난 꽤 오랫동안에도 난 정신없이 멍하게 앉아있었던 것 같다.(마치 내가 아닌 딴 사람이 잠시 되었던 것처럼 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느닷없이 닥쳐 온 오싹한 기운...

그 공포는 흔한 피가 낭자한 살인 사건이라든가, 무서운 귀신 이야기 등에서 오는 공포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 공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을 만한 공포.. 삶 자체에 대한 공포였다. 그 공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 그래서 내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피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더욱 아슬아슬하게 나를 옥죄어드는 것...

내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많은 부분의 잠재적인 내 영혼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
다중인격장애와 같은 질병은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 나를 잠식해들어가는 무의식의 힘.
그 속에 휘말려들어가는 듯한 공포.

이처럼 시드니 셀던 소설은 언제나 생생한 느낌이 든다. 마치 영화를 한 편 보고난 것처럼. 아니, 영화보다도 더 실사에 가까운. 마치 그 현장 속에 내가 직접 뛰고 달리다가 온 듯한. 사람의 감정과 이성, 그리고 온몸을 휘감고 드는 소설을 만드는 사람. 시드니 셀던의 문체와 글 구성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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