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 1
정서경 외 지음 / 돌고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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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동사(他動詞)는 행위의 대상인 객체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돌봄’이라는 단어는 ‘돌보다’라는 타동사의 명사형으로, 여기엔 자아가 아닌 타인이 존재한다. 이 책은 내게 책이라는 물성을 지닌 하나의 타동사로 다가왔다. 열한 명의 사람과 열한 가지 삶이 누군가를 목적어로 두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역동(力動)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돌봄이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감싸 안음’이라면, 작업이란 나를 찾기 위해 기꺼이 내 시간을 쓰는 ‘펼쳐냄’이 아닐까. 안으로 파고들고 자기를 내어주며 수렴하는 분주하고 고단한 시간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고, 나를 꺼내고, 나를 세상에 펼치는 시간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의 문양으로 마음에 들어와 물결을 퍼트린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 것. 무겁게 돌아가는 모순의 수레바퀴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려 애써 끌어 잡고 버티며 살아온 시간이 팔이 굵어지고 어깨를 굽어지게 하더라도 꼿꼿이 펴고 싶은 심지 하나.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세계가 합쳐지고, 끝없이 모순에 빠져드는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망각하고 싶지 않은 불씨 하나.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너무나도 먼 과거 그때 그 사람이 정말 세상에 존재했던 것인지, 그 사람이 과연 지금의 나의 정말 동일 인물이 맞는지 의문스러워지는 어떤 밤에 그래도 끝없이 자신의 ‘작업’을 하는 이들의 못질소리를 듣는다. 쿵, 쿵. 다시 또 심장을 뛰게 하는 말들.

이 책 한 권을 읽는 일은 내게 하나의 작업이었다. 돌봄의 순간들을 넘어온 나에 대한 재생적 상상의 시간에서 나를 짓고 만들고 창작하며 ‘펼침’을 열망하는 창조적 상상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하는 ‘작업’.

열한 명의 목소리가 담긴 타동사의 뱃길, 그 여정에 힘차게 함께 노를 저으며 나아간다. 돌봄이라는 단어가 감쌀 목적어의 자리에 ‘나’라는 깃발을 꽂으며. 어떤 타인이나 다른 목적보다 나를 돌보는 일 자체가 하나의 작업(作業)이 되길 열망하며 나를, 어느 날의 나를 닮은 여러 너들을 두 팔 벌려 감싸안는 밤.

*서평단 활동에 참여해 책을 받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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