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의 할머니 - 어머니란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 여성들의 이야기
이시문 지음 / 어른의시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 표지에서 감도는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한 책이었다. 누군가의 딸이었지만 어머니란 이름으로 살아온 여성들의 4대에 걸친 이야기라니 무척이나 빨리 읽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어디 성씨냐"라는 물음에 대답을 주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아버지 성을 그대로 따르니까. 아버지 성은 그렇게 물어보지만 어머니와 할머니의 성을 묻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런 점도 책을 읽으며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참 고마운 책이다.
몇 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도 연상되고,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도 떠올랐다. 또 리사 시 작가의 <해녀들의 섬>도 생각났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과 내 생각

p. 67

외삼촌이 태어날 때까지 외할머니는 '아들 잡아 먹은 년'이었고 큰이모는 '오빠 잡아먹고 태어난 계집애'였다.
.....
남동생 보라고 이름도 남자 이름인 나의 엄마는 남동생을 진짜로 봐서 엄마 할머니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 개개인과 집안마다 지금도 다른 모양이라 함부로 이야기할 순 없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것 같은데 그에 비해 지금은 덜한 분위기다.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 적도 꽤나 많다. 요즘에는 '여아 선호 사상'이 강하다고도 한다. 그런데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선호되는 사람이 존재하는 건데, 우린 참 성별에 큰 의미를 두고 편가르기 하려 든다. 어디 성별 뿐이랴. 지역이며, 혈액형에, 요즘은 심지어 MBTI까지... 누구를 위해 고정관념을 들먹이며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과 상황을 두고 미리 판단하려는지 모르겠다. 전하는 말과 보여주는 행동, 그 자체로만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p. 102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도 혹시 감히 전기를 써서 시원해지는 인위적인 행위를 못마땅해한 누군가가 지어낸 말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밤에 더우면 선풍기를 트는 대신 할머니는 자다 말고 자는 손주들 쪽으로 부채를 부쳐주시기도 했다. 잠이 들 때만 조금 부채 바람에 시원할 수 있으면 아침까지 내처 잘 수 있었는데, 사실은 할머니가 밤에 자다 말고 간간이 부채로 시원하게 바람을 내주신 거였다.

-> 여긴 너무 감동적이라 재차 읽었다. 한 번은 따뜻함이 느껴져서, 또 한 번은 부채질을 열심히 하는 이미지가 떠올라 자꾸 읽고 싶어지는 구문이었다. 부채로 시원한 바람을 내주는 경우 외에도 이런 비슷한 희생이 너무 많지 않을까? 우리네 엄마들과 할머니들은 어쩜 이렇게 자식과 손주들을 사랑하고 어째서 그만큼의 에너지와 마음을 쏟을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나도 자연스레 엄마가 변함없이 희생하시는 모습이 생각나고 또 돌아가신 할머니도 생각난다.


p. 263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집안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고모에게, 당숙모에게 들었다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넉넉히 최근 100년 정도만 잡아도 우리나라에는 사람마다 대하소설을 쓸 만큼의 경험치를 만들어주는 큰 사건이 많이 있었으니까.

->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하나씩 풀어내면 누군가에겐 그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된다.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이 생각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찾아보니 이 표현은 영화 감독인 마틴 스코세이지가 과거에 언급했던 표현을 인용한 것이라 한다.
지금도 우리의 필름 안엔 유일무이하고 창의적인 이야기가 끊임없이 담겨진다. 남들은 다 관람하는 영화를 나만 못 보고 넘어가면 억울하지 않을까? 나도 이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주조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