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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한강을 읽는 한 해 (주제 2 : 인간 삶의 연약함) - 전3권 - 바람이 분다, 가라 +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내 여자의 열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한강을 읽는 한 해 2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0년 2월
평점 :
바람이 분다, 가라
한 사람이, 자살한 동시에 자살하지 않은 것일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버리는 동시에 버리지 않았을 수는 없다. 갓길 없는 미시령의 눈 쌓인 길에서, 벼랑의 안쪽과 바깥쪽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단 한순간, 둘 다를 택할 수는 없다. 주저할 수도, 얼버무릴 수도 없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이렇다. 나 이정희는 어느 날 친구 서인주의 죽음을 겪는다. 하지만 그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든 마당에 어느 날 나타난 미술평론가 강석원이라는 작자가 서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는 데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서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만들고 박제화 하려는 강석원에 대항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게 된다. 그렇게 나는 서인주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이다.
과속으로 달리는 택시 차창 밖으로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먹처럼 엎질러진 어둠. 그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가등들. 텅 빈 거리. 셔터를 내린 상점들. 얼어붙은 분수대. 거대한 납골당 같은 아파트 건물들. 소리 지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이 있다.
하지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외양을 택하고는 있되 한강 특유의 그 서늘하고 침침하면서도 바늘로 찌른 듯 명징한 통증을 간직한 문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마치 눈에 보이는 듯 풀어 놓는 묘사와 그 묘사 사이사이에 뿌려 놓은 날카로운 그 어떤 것들의 흔적 또한 여전하다. 그러니 독자들은 한강의 소설을 읽는 동안 발밑을 찔리지 않기 위하여 조심조심 할 수밖에 없다.
바람이 분다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허공을 할퀸다. 긴 코트 차림의 여자들이 길고 곧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종종걸음 친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 전단지가 택시 앞유리의 와이퍼에 걸려 세차게 퍼덕거리다 찢기며 다시 날아간다.
게다가 한강의 소설은 어딘지 묵직하다. 그러니까 같은 페이지 같은 분량의 소설을 읽었다고 해도 한강의 소설을 읽고 나면 훨씬 더 무거워진다. 한강의 소설은 훨씬 높은 밀도로 응축되어 있어서 같은 두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런 느낌은 도드라진 문체에서 뿜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을씨년스러운 캐릭터들의 말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맘때의 어둠엔 혈관이 있는 것 같아. 파랗게 피가 번지는 것 같아.
하지만 실상 한강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였을 때는 그 응집의 느낌이 조금 덜하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지나치다 싶게 숨겨지고 있고, 그래서 그만큼 드러나 있기도 한 비의의 무엇인가는 소설의 중반을 넘어간 어느 시점에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한 순간에 폭발되어야 할 것이 너무 일찍 폭발해버리니 그 순간 이후 소설은 주체할 수 없는 팽창으로 치닫는다.
고래는, 상처가 나면 피가 멈추지 않는대. 작살을 맞으면, 워낙 커서 바로 죽지 않는다 해도, 계속 계속 피를 흘리면서 다니다가 나중에 죽는대. 이 세상 고래들은 전부 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병에 걸렸대.
너무 일찍 작살에 맞은 고래가 남은 동안 피를 흘리며 대양을 떠돌듯이 한강의 소설 또한 그 묘사의 생명력을 잃고 설명의 단계로 접어든다. 미시령 고갯길의 미스터리는 후련하게 풀렸으되 그 후련함이 오히려 미진함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물론 여전히 동년배 작가들 중 가장 좋은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강은 미스터리를 어느정도 미스터리하게 남길 때 더욱 한강스럽게 보인다.
채식주의자
읽기엔 난해하고 어려웠던 책인 것 같다.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포함하고 말하고 싶은 걸까, 끝없이 되뇌었지만 불쾌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1부-
영혜와 주변 사람들. 영혜는 피해자이고 그 환경에서 순응하며 참아왔던 사람이다.
채식주의자 1부작에서 나온 남편의 행동은 눈살 찌푸리는 묘사들로 가득했다.
앞서 나온 영혜의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 모습을 보고도 폄하하는 대답이 어쩌면 우리 사회, 드라마에서조차 볼 수 있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누가 봐도 노골적이고 불쾌한 표현을 동조한다면, 남편과 동일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평범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원더’ 책에서도 고뇌였던 질문을 책의 남편은 분명하게 단정지었다. 자신과 함께할 사람에게 급을 매기고 기준에 맞춰 만만하고 낮잡아보았다. 그게 과연 평범일까.
이 책을 한 번만 본 독자인 나도 알 정도의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영혜의 시점이 아닌 남편의 시점으로 이뤄진 글이었지만 ‘꿈’이란 결혼생활에 대한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꿈으로 발현되고 현실에서도 양상을 나타내었다고 느껴졌다.
남편은 참 이기적다. 영혜의 언니를 보며 상상을 했지만 초반 설명처럼 평범한 자신으로 급을 나눠 가치를 매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바람을 피지 않은 것 같다. 이 점에서 2부작의 형부와 다른 점이 보였다. 두 남자는 각각의 아내를 원했지만 정반대의 값으로 영혜를 대했다.
-2부-
굉장히 아이러니했다. 진짜 가족인 사람들은 영혜의 행동의 원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방관하고 폭력을 휘두른다는게 이상했다. 가장 모순인 점은 음심하고 역겨운 상상을 하는 형부가 영혜의 돌발 상황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이미 성욕의 대상으로 보았으면서 예술이며 작품이라고 합리화시키는 점이 가장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사전의 협의 없이 이루어진 관계 지시. 결국에는 j에게 요구를 했지만 끝까지 영혜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사람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1부 영혜 전남편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2부의 느낌은 그저 가해자의 관점으로 써내려간 소설같았다. 실제 사건이 있다면 그걸 피해자의 이야기로 쓴 것이 아닌 ‘피해자도 받아들였다. 피해자도 느꼈다. 해달라고 했다’며 가해자가 말하는 내용같았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에게 행하는 행동만 봐도 그러지 않은가.
책은 해석과 관점으로 달라진다고, 2부작까지 읽은 내내 합리화 시키며 어떤 의도를 가지는지 찾아내었지만 내 상식과 이해도가 낮은 건지 이쯤되니 문장 자체가 불쾌하기만 하고 읽어야하나 주저했다. 노골적인 표현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상상되니 역하게 느껴졌다.
-3부-
영혜는 아직 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영혜는 원래부터 조용한 성격에 가부장 가족에서 폭력을 당하고 살았다. 이후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고 조용한 사람이니까 거부해도 강압적으로 막무가내로 저지른 것이 아닐까, 그 근거는 아내의 입을 막고 혼자 풀어낸 것만 봐도 성격이 보였다.
나무, 산속 이상한 평화를 인혜 또한 느낀다는 건, 결국 인혜 영혜 둘에게 조용함과 안락함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마무리 됐다고 생각 했다.
결국에는 그 고통속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의 흙, 이파리, 풀 내음이 느껴지는 계속 살아있는 숨 안으로 간다는 의미이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에서 잔인한 마지막은 몇년의 시간이 흘러도 더 고통속에 산다는 건 식물처럼 고통에 벗어나 살아있을 수 있게 욕망을 풀어 도망친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두 챕터의 음습한 이야기들 속에서 피해를 받았던 두 여성이 얼마나 트라우마를 심하게 받았는지 보여줬던 챕터다. 그들은 고통속에서 계속 헤맸고, 사과 없이 자식을 찾던 남편과 이혼 후 나오지 않았던 사람에게 이기적이고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남편의 이상적 이미지를 갖춰 아침이며, 밤이며 행동하고, 과거에는 가부장 가정에 자라 참고 온순하고 폭력 당하는 삶을 살아온 그가 꿈을 꾸고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원인이 이 모든 불합리함 속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
누군가 그랬다. 정신병원에 오는 것은 피해자들만 온다고 한다.
다 보고 해석도 본 이후, 이해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다고 느껴지긴했다. 나는 어떤 문학을 읽든 투정을 부릴 건지 편식을 할 건지 자격이 없어지는게 아닐까 싶었다.
내 여자의 열매
한강 작가님의 단편모음 집인 책이다.
단편들의 내용이 어렵고 난해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이 책중 흰 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4.3사건을 말하는 부분에서 생빈눌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죽고나서 매장의 좋은 택일을 받지 못한 이를 택일이 될때까지 매장하지 못하고, 땅 위에 두는 것을 말한다. 죽고서도 묻히지 못하는 기간은 어쩌면 살아있는 이의 욕심인 걸까. 왜 이 단어가 이 소설에서는 제주 4.3과 엮인 것일까. 한강작가님은 제주 4.3을 사삼이라는 단어로 말한다. 마치 책을 꼼꼼히 읽지 않는다면 그저 아들을 묻지 못한 어머니의 어떤 일이 되어버린 것 같이. 나에게 사삼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 생소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생빈눌 아들을 묻지 못한 어머니의 한. 아들의 죽음의 냄새를 맡고도 아들을 애도하지 못한 그 어머니의 감정을 어찌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또다른 단편인 어느날 그는는 이 단편들 중 가장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감정의 고조의 차이가 너무 크고 이 책의 단편들 중 감정의 흐름 폭이 가장 컸던 작품인거 같다. 다른 작품들은 어느 정도의 절제된 감정안에서 슬픔, 고통, 안도, 위로 등이 느껴졌다면, 어느날 그는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에 너무나도 솔직한 여자와 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나 심취해버린 남자가 그 끝을 향했을 때, 그리고 그 끝의 이휴까지를 한번에 후루루루룩 지나갔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이 한강작가님 소설 중 가장 낯선 느낌이였다.
표제작인 내여자의 열매와 아기 부처는 다소 수동적이였던 아내들이 자신을 자각하면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선반 위의 장식물 같은 느낌과 같은 주인공이 어느날 식물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남편은 강렬하게 아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내에게 최선을 다한다. 식물이란 가장 정적인 생물임에도 인간이였던 아내가 마치 장식품 같고, 가장 강렬한 사랑을 가장 정적인 생물이 되어버린 아내에게 쏟는 남편의 모습은 너무나 생경하다. 아내는 가장 능동적인 사랑을 하게된 것일까? 아니면 정 반대의 모습으로 드디어 자신을 찾게된 것일까. 정말 묘하다.
아기부처는 타인이 보기에 완벽한 남편의 내밀함을 알고 있는 여자는 그 내밀함으로 남편과 결혼했지만, 그 것으로 더 싫어졌다.
그렇기에 그녀는 타인의 매끈한 몸에 대한 갈망을 통해 그녀의 변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진짜 사랑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의 화상 자국은 자신 안에 아로새겨진 상처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헤어지고서야 아기부처의 꿈을 꾸지 않는 여자. 왜 아기부처 였을까. 가장 순수한 모습의 꿈이 그녀에겐 왜 악몽같았던 것일까. 늦은 후회여서였을까. 아니면 빠른 후회여서 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진짜 이 책의 단편들은 묘하다. 딱 나에겐 그랬다. 생각할수록 오묘했고, 생각할 수록 다양한 의문을 낳았다. 누군가의 감정을 읽고 있음에도 어떤 빈 공간이 느껴지고 그러면서도 어떤 문장은 뼈때리는 듯 훅을 날리는 느낌이였고, 또 다른 글은 아픈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어쩌겠니 라는 체념을 말하는듯 하면서도, 또다시 그렇기에 뚫고 나아가야 함을 나지막히 말하고 있는 듯도 했다.
흥미로운 책이고 각 단편이 결고 가볍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