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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블랙 사바스, 잉베이 맘스틴 등 무려 60 여장의 록 앨범에 세션맨으로 참여했던 드러머 코지 파웰(1947년 12월 29일 ~ 1998년 4월 5일)은 피터 그린과의 녹음 작업을 위해 자신의 애마(?)였던 사브 9000(Saab 9000) 시리즈를 타고 브리스톨 근교 M4 고속도로를 과속 질주하다 때 아닌 악천후를 만나 서있던 나무에 충돌,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82년도에 론 맥고브니 후임으로 메탈리카에 가입한 베이시스트 클립 버튼(1962년 2월 10일 ~ 86년 9월 27일)은 유럽 투어 중 스웨덴에서 버스로 이동하다 음주 운전하던 기사의 실수로 추락, 차창 밖으로 튕겨져 나가 버스에 압사 당했다. 그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는데 당시 그 곳에선 메탈리카 3집 수록곡인 'Orion'이 흘러나왔고 4집 [...And Justice For All]에서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은 이유는 클립을 추모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음이 훗날 밝혀지기도 했다. 국내에서 교통사고로 운명한 뮤지션으론 유재하(1962년 5월 5일 ~ 1987년 11월 1일)와 원티드의 서재호(1981년 11월 16일 ~ 2004년 8월 11일)가 대표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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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비틀즈 출신의 존 레논(1940년 10월 9일 ~ 1980년 12월 8일). 그는 뉴욕에 있는 다코타 빌딩 입구에서 마크 데이빗 챔프맨이란 사내로부터 "혹시 존 레논이세요?"란 물음에 답해주기 위해 돌아서다 그로부터 5발의 총격을 받았는데 1발은 빗나갔으나 나머지 4발이 그의 어깨와 등에 명중되고 말았다. 특히 그 중 1발이 대동맥을 관통하는 바람에 존은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던 것. 전 판테라 기타리스트였던 다임백 대럴(1966년 8월 20일 ~ 2004년 12월 8일)도 로컬 클럽 공연 중 나단 게일이라는 판테라 골수팬으로부터 5발의 총격을 받고 즉사하였는데 얄궂게도 그 날은 존 레논이 사망한지 24주년 되던 날이었다. 한편 다임백 사망 이후 동료 및 후배 밴드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몇몇 추모 곡들을 발표하였는데 잭 와일드가 이끄는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In This River'(이 곡은 다임백이 죽기 전에 만들어졌던 곡.), 니켈백의 'Side Of A Bullet'(여기엔 판테라 [Far Beyond Driven]시절 다임백이 직접 친 기타솔로가 삽입되어 화제가 되었다.),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Betrayed', 샤인다운의 'Simple Man'(레너드 스키너드 커버곡), 그리고 컨트리 밴드 크로스 캐나디안 랙위드의 'Dimebag' 등이 그것이다. '멕시코의 마돈나' 셀레나(1971년 4월 16일 ~ 1995년 3월 31일)도 총격에 의해 사망된 비운의 뮤지션인데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의 매니저였던 욜란다 살디바르로부터 총을 맞고 병원으로 후송 도중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하고 말았다. 욜란다는 셀레나의 계좌에서 지속적인 횡령을 일삼았는데 사실을 알아챈 셀레나에게 들켜 해고당하자 앙심을 품고 방아쇠를 당긴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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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팀 버클리의 아들 제프 버클리(1966년 11월 17일 ~ 1997년 5월 29일)는 두 번째 앨범 [My Sweetheart The Drunk] 작업을 위해 밴드 멤버들과 멤피스에 와 미시시피강 지류인 울프 강에서 '야간 수영'을 하다 익사하였고 레드 제플린 드러머 존 보냄(1948년 5월 31일 ~ 1980년 9월 25일)은 밴드 가입 후 가족들과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며 우울증 증상에 노출돼 알콜 과다 섭취(미국 투어 리허설 당일 아침엔 보드카 16잔을 스트레이트로 들이킴.)를 한 끝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엑스 저팬의 히데(1964년 12월 13일 ~ 1998년 5월 2일)도 술에 취하면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증상이 있어 음주 후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 호흡 곤란을 일으켜 사망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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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3J(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중 한 명인 제니스 조플린(1943년 1월 19일 ~ 1970년 10월 4일)은 술과 헤로인을 동시에 과다 복용해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때 그의 죽음을 두고 CIA에서 '청부 살인' 의혹을 제기해 수사가 착수된 적이 있긴 하지만 결국 자살로 판명되었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1939년 9월 23일 ~ 1988년 8월 14일)은 술과 재산 문제로 아내와 심하게 다툰 후 아내의 신고로 철창신세를 지게 되는데 그는 결국 감방 안에서 목메어 자살하고 만다.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1957년 5월 10일 ~ 1979년 2월 2일)는 만성적인 약물 복용으로 여자친구 낸시까지 살해하고 22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는데 당시 시드는 "그녀를 죽였다. 왜냐면 난 더러운 개거든!"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그의 비극적인 일대기는 개리 올드만과 클로에 웹이 주연했던 86년작 '시드와 낸시'로 다시 확인해볼 수 있다.) 홍콩의 가수 겸 배우 장국영 (1956년 9월 12일 ~ 2003년 4월 1일)은 유서에 "한 명의 20대 청년을 알았다. 그와 '당당'(그의 다른 남자 애인)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될지 몰라서 아주 괴롭다."란 내용을 남기고 투신자살하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돼버리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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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내에도 자살한 뮤지션들이 적지 않은데 '내 눈물 모아'로 유명한 서지원(1976년 2월 19일 ~ 1996년 1월 1일)은 2집 발매를 앞두고 성공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을 못 이겨 수면제 과다 복용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헌데 일각에선 땅에 묻기 전 관 뚜껑을 (서지원의) 모친이 열었을 때 그가 관 속에 수면제를 토해놓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산소 부족'에 의한 사망 설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장덕(62년 4월 21일 ~ 90년 2월 4일) 역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하였고 포크 스타 김광석(64년 1월 22일 ~ 96년 1월 6일)은 자택에서 목매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서도 없고 딱히 자살할만한 사유가 없어 현재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상태다. 댄스 듀오 듀스의 김성재(1972년 4월 18일 ~ 1995년 11월 20일)의 죽음도 공식 사인인 "틸레타민 + 졸라제팜 + 마그네슘 중독"과는 별개로 당시 애인이었던 모 여인에게 살해당했다는 루머가 나돌며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놓고 여태껏 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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