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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선 5집 - Memory Lane
나윤선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재즈는 그 탄생부터 주변부 어딘가에 우두커니 자리잡고 있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중심에 서있어 본 적은 없던 음악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재즈를 매니아들만의 전유물이거나 대중성과는 담을 쌓고 있는 음악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재즈는 그 특유의 개방성으로 인해 록큰롤부터 월드뮤직 그리고 최근의 전자음악 (일렉트로니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팝음악도 물론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팝음악들이 재즈로 편곡되어, 재즈 보컬리스드들에 의해 불리워졌다. 흔히 '스탠다드'라고 불리는 이러한 노래들은 재즈와 팝음악의 경계에서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어 많은 대중들에게 불리워지고 사랑받아 왔었다.
그동안 한국의 재즈는 대다수의 대중들과 단절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중들에게 재즈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것처럼, 일부 재즈 매니아들에게 가요는 유치한 음악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가끔 재즈를 차용한 가요가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이 두 음악사이의 간극을 좁혀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영미권의 '스탠다드'같은 성공적인 결과물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누보송 (Nouveau Son), 누보두(Nouveau Deux) 같은 프로젝트 앨범들은 본격적으로 가요를 재즈로 편곡해 부름으로써 한국적인 스탠다드를 찾기위해 고민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나윤선의 팝프로젝트 앨범은 '사의 찬미'나 '세노야' 같은 초창기 가요로부터 시작해서, 앨범을 위해 특별히 작곡된 여러 장르의 노래들이 한국어 가사로 실려있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한국적 스탠다드 음악들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앨범은 이전의 정규앨범들과는 달리 최대한 기교와 힘을 빼고 담백하게 노래를 불러내려 애쓴 흔적들이 엿보인다. 때문에 이 앨범을 또 한 장의 재즈앨범이나 가요앨범으로만 치부해버리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오히려 재즈라는 영역을 뛰어넘은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국내외에서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른 시점에서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더욱 반갑고 자랑스럽다.
나윤선의 새 노래들은 비록 팝 프로젝트란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여느 가요들처럼 마냥 가볍고 친절한 음악들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노래들이 쉽게 만들어져 쉽게 불리워지고 쉽게 잊혀져가는 주류 음악 시장의 흐름속에서, 나윤선의 노래들은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바래지 않을 것 같은 매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언제나 자극적인 아름다움들은 강하게 끌리게 만들지만, 그만큼이나 쉽게 바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극적이지 않은 아름다움들은 쉽게 질리거나 물리지 않아서, 언제든 다시 만날 때마다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있다. 나윤선이 부른 스탠다드들은 그런 울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