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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서린 말 ㅣ 사계절 1318 문고 82
마이테 카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사계절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 독이 서린 말 >
스페인 소설이 생소롭기는 했지만, 이 책이 아동폭행에 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 망설여졌다.
안타까움에 팩트를 가진 소설인 <도가니>도 읽지 못했는데,
이 책 역시 8여년 간 납치감금되었던 나타샤 캄푸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성년자 바르바라가 피해자인 소설이기에 더 가슴이 저렸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힘든 마음이였지만, 단숨에 읽히는 긴박함이 있다.
바르바라가 실종된 4년에 걸친 이야기이지만,
주변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시점과
군더더기 없이 사건에만 집중하는 일말의 에피소드들 덕분이다.
자유롭고 싶지만 깊은 비밀을 가진 사춘기 소녀 바르바라,
바르바라의 단짝이지만, 그녀를 질투하는 에바.
이 둘은 친구이면서 마르틴과 로페스 선생을 두고 경쟁하게 되면서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며 멀어지게 된다.
급기야 바르바라가 구원의 손길을 기대해야 하는 와중에서도
에바에게 연락하는 것을 갈등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어간다.
단 한명의 친구 에바를 향한 바르바라의 감정,
"그녀는 우리 아빠와 엄마의 친구지, 내 친구는 아니었다"
정년퇴임을 앞둔 채 후임 수레다에게 사건을 넘겨주는 로사노 형사,
엄마의 감으로 딸 바르바라의 문제를 알아채지만, 외면해버린 엄마 누리아.
퇴임사를 앞에 두고 로사노는 에바의 급박한 전화에 바르바라를 구하러 가고
역시 4년의 딸의 실종 속에 삶의 의지를 잃었던 누리아는
부옇게 흐려져있던 자신과 가족의 허물을 걷어내고 딸에게 달려간다.
이 4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는
타인들의 이야기보다 자신들의 처지와 변명이 우선되기에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나름의 처지와 사건의 조각들을 맞춰나가는 수사전개(가출에서 납치, 이후 사망으로 기록),
실제로 감금되어 살아있는 주인공 바르바라의 상황이 잘 표현되어 인상적이다.
바르바라의 비겁한 연인으로 용의자가 된 마르틴,
로리타적 성향이 강했던 또다른 용의자 로페스 선생,
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강력한 주장을 하는 아빠 페페
이들의 파렴치한 행동들은 결국 손가락질과 응징으로 그 끝을 맺음으로
이 책 나름의 깨알같은 권선징악을 보여줄 뿐이다.
(나름 반전이기도 하지만, 유심히 잘 읽는다면 납치감금이 누구인지 알아챈다)
또 존재감없이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바르바라의 쌍둥이 동생 샤비, 기예르모.
이들은 누구에게 자신들의 불운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목하게 된다.
진정한 또다른 피해자이기에.
우리와는 다른 분위기와 가치관의 유럽의 이야기이지만,
"더러운 빨래는 집안에서 빨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을 지혜롭다고 받아들이는
엄마의 태도가 "장님에 귀머거리였으며, 자기 앞에 있는 것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후회로 가슴을 칠 때는 엄마의 강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며,
우리의 딸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교육이 정말 중요하구나 싶어진다.
"아이들은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감동 받고, 마음이 약하지요.
몸은 어른이지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코마스 담임선생의 말에
왜 미성년인 그들을 지켜줘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청소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는 또는 유연하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들에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얼마전 성폭행범죄의 친고죄를 폐지한다고 떠들석했지만,
이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받을 피해자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이유없는 법정 최고형이 구형되기를.
세상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겠지만, 제발 인간다운 세상이였으면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