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D] 고우영 Digital 三國志 - CD-ROM 2장
고우영 지음 / 딴지그룹 / 2001년 6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이 우선 많은 이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진부한 해설식 위주의 삼국지의 틀에서 벗어나서, 작가의 엄밀한 원작해석, 주관적 창조, 또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코믹하면서도 깊이가 있게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읽을 당시가 87년이었으니, 어느덧 15년이란 세월이 훌쩍 가버렸지만, 아직도 그 분의 삼국지처럼 얼핏보면 성인만화 대부분이 지닌 해학성과 함께 뛰어난 통찰력을 엿볼 수 있고, 그의 타인들을 능가하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고차원적인 대화 및 설명방식, 실제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분들은 감탄하셨으리라 생각하면서, 이런 작품이 여지껏 나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15년 전, 제가 처음 읽었을 때와 지금 읽을 때 분명 커다란 차이점이 있습니다. 당시 전 어린 소년이었고, 지금은 어엿한 성인으로서, 당시에는 이해가 어려웠던 각종 상식, 야담, 정치적 견해 등을 이젠 다 소화할 수가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 또한 없지 않습니다.
1) 우선, 제가 당시 읽었을 때 나왔던, 아직까지 기억했던 일부 장면이 이전 모 출판사에서 엄청난 가위질을 당해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CD-ROM이 과연 작가님의 작품을 100% 복원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갑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많은 장면 중에, 유비가 부용아씨를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 이 책을 읽었을 당시, 담배 중에 이름은 모르지만, 윗 부분은 흰색, 아래는 분홍색으로 되어 있고, 아마도 'SUN'이라고 하는 담배가 있었을 것입니다. 약탈을 당한 절에 있던 중이 유비의 범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부용아씨에게 '태양같은 분이십니다'라고 하자, 부용아씨는 'SUN' 담배를 떠올립니다. 그 후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도망을 가려하는데, 부용아씨가 유비의 허리를 감싸자 유비는 여기서 그 담배를 떠올리는 듯한 모션을 취하고, 여기에 작가의 해설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원작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었습니다. 또, 두 사람이 도망간 것을 본 노승은 절 위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부분 또한 생략되어있구요.
2) 고우영 삼국지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점이 바로 제갈량 사후에 대해 너무나도 비중을 낮게 잡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갈량 사후 강유의 북벌, 장완, 비위의 사망, 또 여개의 하층민 전락, 여개 얘기가 나와서 얘기지만, 제갈량의 남만평정시 각종 일담을 너무 짧게 잡은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촉나라의 멸망 이후 강유의 촉의 재건을 위한 노력 등등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3) 삼국지 자체가 어찌보면 위와 촉의 대결구도로 전개가 되지만, 오나라 역시 많은 인재들이 나오고, 삼국균형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오나라의 육손과 제갈각에 대한 후일담을 담지 않은 것은 너무나 안타깝더군요. 4) 제갈량의 미움을 받아 결국 촉나라를 배신까지 하고마는 위연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고, 단지 이 작품에서는 제갈량이 위연을 너무 멀리했다는 얘기만 나오고 있습니다. 위연이 사사건건 제갈량과 대립하고, 무시를 당했다면 그에 대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단지 이 작품은 위연을 한 영웅의 독선에 의한 희생양으로만 묘사하려는 의도만을 보였을 뿐, 그의 최후를 다루지 않음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보이지 않아 위연에 대한 재평가가 반감된 느낌이 있습니다.
아래 어떤 분이 다루신 이문열 삼국지와의 유사성도, 이미 4반세기 전에 작가가 제시한 삼국지의 견해가 상당히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미 시대를 뛰어 넘어 작가의 탁월한 통찰력이 깊숙이 베어있는 명작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또한 어두웠던 시절 이 정도의 필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고우영 화백님께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특히 제가 읽었던 당시 책 표지에 씌여있던 구절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미 삼국지를 읽은 분들을 위한, 아직도 삼국지를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한 삼국지'.